[경향신문]“환경 재앙·전방위적인 자유무역협정…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 끝 다다랐다”

“환경 재앙·전방위적인 자유무역협정…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 끝 다다랐다”

ㆍ서울서 ‘칼폴라니국제학회’

ㆍ딸 레빗 교수 기조 강연

ㆍ“유럽 극우 득세도 경제 탓”

캐리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교수

20세기 초 시장자본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한 칼 폴라니(1886~1964)를 기념하는 국제 학술행사가 12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개최됐다.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인 폴라니는 대표작인 <거대한 전환>(1944)을 통해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시장의 폭력에 맞서기 위한 사회의 역할을 강조한 폴라니의 사상은 사회학·인류학·정치학 분야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폴라니는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심해지면서 다시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날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개막한 제14회 칼폴라니국제학회에 기조강연자로 나선 캐리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명예교수(94)는 “우리는 실존적 위기에 봉착했다”며 “효과적인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는 끝에 다다랐다”고 밝혔다. 칼 폴라니의 딸인 레빗 교수는 자연의 ‘복수’에 필적하는 환경 재앙, 개별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전방위적인 자유무역협정, 극단적인 세계화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어 “지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폴라니의 사상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레빗은 미국과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현상의 원인으로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지목했다. “서구 선진국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진단한 그는 지난해 한국의 촛불시위를 언급하기도 했다. 서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폴라니 사후에 아버지의 지적 작업을 발굴, 소개해 온 레빗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폴라니가 널리 회자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폴라니가 현실과 자유, 경험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 공동체와 사회, 과학과 종교, 효율성과 인도주의, 기술 발전과 사회 발전, 제도와 개인 등 양극에 놓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고도 전했다. 


칼 폴라니

이번 학회를 주관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협동조합의 정태인 소장은 “국가나 시장에만 맡겨서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폴라니의 사상은 지금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아시아 최초 개최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현실에 가까이 닿아 있는 이슈들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칼 폴라니와 소득주도 성장’ 세션에서 발제를 맡은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협소한 측면이 있다”며 “진정한 소득주도 성장은 임금만이 아니라 조세, 재정, 소비, 생산물 규제 등을 모두 아우르고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는 물론이고 자본 간, 노동 간 분배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14회 칼폴라니국제학회는 12~14일 국내외 학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득주도 성장, 경제위기, 생태위기, 이중운동, 포퓰리즘, 기본소득, 이론,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13개의 주제별 세션으로 진행된다. 14일 오전에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마거릿 멘델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 소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여하는 ‘한국의 사회혁신’ 세션도 열린다.

 

2017. 10 .12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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