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개조 그리고 공유: 오픈소스 농기구 제조

[세계 속 사회적경제]는 전 세계의 사회적경제 소식과 칼럼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외국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우리나라 사회적경제가 배울만한 것이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해외 사회적기업 및 협동조합 등의 사례나 사회적경제 트렌드,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해주는 경제이론 등 다양하고 통찰력 있는 기사들을 번역하여 소개할 예정입니다.(편집자 주)

제작, 개조 그리고 공유: 오픈소스 농기구 제조

 

모건 메이어, 알레코스 판타지스
P2P 재단 / 2018.07.06

이 이야기는 스스로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필요해서 그리고/혹은 의식적으로 토지나 가축을 위한 장비를 구매하지 않고, 그들의 특정한 목적(콩 수확, 기둥 박기, 트랙터 보조장치 등)에 맞게 기계를 제조하고 만들고 개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이야기에서 기계는 단지 한 부분일 뿐이다. 이 글은 사람, 도구, 지식 사이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우리는 프랑스 파리와 르나쥬(Renage), 그리스 피르고스(Pyrgos)와 칼렌치(Kalentzi), 에스토니아 탈린 등 여러 장소를 돌아볼 것이다.

그리스에서 여행을 시작해보자. 크레타 섬 남부에 위치한 피르고스에는 종자 주권과 농업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멜리탁스(Melitakes, 크레타어로 개미를 뜻함)라는 소규모 집단이 있다. 유기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소규모 협동조합 형성을 시도한 단체다. 이 집단이 하려는 일 중 하나는 올리브 나무나 포도나무 사이에 콩을 심는 것이다. 그리스에는 올리브 나무가 풍부하지만, 각 나무 사이의 토지가 보통 경작되지 않는다. 그늘을 피하고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데 필요한 거리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꽤 간단했다. 이용되지 않는 땅을 이용하는 것. 하지만 이들은 구체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손으로 콩을 수확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올리브 나무 사이의 좁은 틈으로 이 고된 일을 하기 위한 장비가 없었다. 시장에는 너무 큰 트랙터 부속품만 있고, 대형 작물 경작에 적합한 장비만 있었다. 그래서 이웃 마을 친구인 기계공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이를 도전으로 삼고 장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사진1을 보라.) 그때는 장비를 ‘오픈소스’하거나 ‘DIY(Do It Yourself)’ 하는 관행에 대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이야기가 없었다. 상황이 오히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필요로 했다.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기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걸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 사람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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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니코 스테파나키스(Nikos Stefanakis)와 멜리탁스가 만든 DIY 콩 수확 기계 (출처: 알레코스 판타지스)

몇 주 후에 이 글의 필자 둘은 파리에서 만났다. 콩 수확 장비를 만드는 친구를 둔 알레코스는 르네쥬에서 농기구 자동화(auto-construction)에 전문적인 프랑스 협동조합 ‘아뜰리에 페이장’에 대해 알고 있는 모건을 만났다. 알레코스는 그의 계획을 설명했다. 탈린 공업대학교에서 ‘역성장적합기술(convivial techn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아뜰리에 페이장(l’Atelier Paysan)’을 조사하고, 몇몇 아이디어를 그리스에 적용하려는 계획이었다. EU가 지원하는 프로그램 ‘피지털(Physital)’의 틀 안에서 농업 장비를 만드는 메이커 공간을 열어서 말이다. 모건은 그가 아뜰리에 페이장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연구의 궤적을 설명했다. 그는 2015년부터 사용자 혁신에 대한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오픈소스 기술의 정치학과 중요성을 통해 아뜰리에 페이장을 분석했다. 이론적 접근 및 방법론, 개념, 현장연구 등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알레코스는 아뜰리에 페이장을 ‘현장에서’ 만날 차례가 됐다. 유기농 포도 농사를 위한 장비 두 개를 만드는 5일 간의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에서 알레코스는 여러 종류의 지식을 배웠다. 금속 작업, 절단, 용접 등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그리고 아뜰리에 페이장에서 이론적 지식 또한 배웠다. 조직 구조, 문제점(과 그들의 해결 방법), 재정적 준비 및 워크숍 운영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림2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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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샤리마래(charimaraîch, 시장 가드닝을 위해 개작한 수레) 제작 (출처: 아뜰리에 페이장)

아뜰리에 페이장은 그러한 활동에 특화된 몇 안 되는 집단 중에 하나다. (이외에 잘 알려진 집단은 팜핵 FarmHack과 오픈소스에콜로지 Open Source Ecology이다.) 아뜰리에 페이장은 웹사이트, 워크숍, 책, 동영상 설명, 오픈소스 기획 등 농업 장비를 개방하기 위한 실천과 도구를 개발했다. 그들의 최근 기사에서 찬스와 메이어(2017)는 아뜰리에 페이장의 역사와 조직 형성 추적, 오픈소스 원칙을 농업에 재현시킨 방법 연구, 경제적·정치적 환경 내에서 그들의 장비 설명 등을 통해 아뜰리에 페이장을 분석했다.

알레코스는 그리스로 돌아와 멜리탁스를 다시 만났다. 그는 아뜰리에 운영 방식(실천, 철학, 윤리 등)과 다양한 장비가 설계되고 제작되는 방식을 설명해줬다. 앞으로의 멜리탁스 장비 개발과 아뜰리에 페이장이 개발한 여러 기준을 통해 가능한 보급을 생각해보다가 멜리탁스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그들 중 기술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 아무도 실제 콩 수확 장비 구성요소의 설계도를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설계를 디지털화하고 온라인에서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기계 각 부분을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설계자의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장비를 해체해서 각 구성요소의 사진을 정각(90도)에서 찍었다. 모두 합쳐 300장이 넘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각 사진마다 수치를 재서 볼 수 있게 붙였다. 몇몇 복잡한 부분들의 윤곽을 따라 그리기 위해 큰 종이를 사용했다. (사진3을 보라.) 그리고 사진과 인쇄를 바탕으로 장비의 기계 설계도를 (디지털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계획은 장비의 도면을 그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유형의 라이선스에 따라 인터넷에 오픈소스로 공개한 후에 사람들에게 장비 제작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콩 수확 장비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몇몇 특징들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 할 수 있다. 실제 문제들이 기술 장비로 제작되었다. 이 장비는 ‘그릴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분해를 시켜 사진을 찍었고,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용 가능하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장소에서 이 장비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발전시켜서 한층 나아진 설계를 지구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장비 외에 다른 것들도 이러한 여정을 통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농업생태학의 원칙과 오픈소스 관행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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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니코스 스테파나키스와 멜리탁스가 만든 DIY 콩 수확 기계의 복잡한 부분 인쇄 (출처: 알레코스 판타지스)

두 번째 이야기는 추메르카(Tzoumerka) 북부 칼렌치(Kalentzi)라는 마을에서 시작된다. 농부들의 지역 공동체(추메이커스 Tzoumakers)는 또 다른 실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땅에 울타리 기둥을 박을 수 있는 적절한 장비를 찾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 작업을 위해 여러 장비를 썼지만, 어렵고 위험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가 기둥을 박는 농부들도 있고, 어떤 농부들은 통 위에 올라타야 했다. 하지만 사다리/통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땅에 기둥을 박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몇몇 지역 농부들과 메이커가 함께 모여, 한 사람이 기둥을 박으면서도 땅에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해서 묘기를 부리지 않고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 수 있는 해결책을 찾고, 설계도를 준비하는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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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추메이커스가 새롭게 제작한 울타리 기둥 박는 장비 테스트 (출처: 알레코스 판타지스)

최근 장비를 시제품화했고, 다음 단계는 도구의 유용성, 필요한 장비와 재료 목록, 장비 제작 설명(과 그것의 위험성), 그림과 사진 등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는 책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프랑스로 돌아가 아뜰리에 페이장에 대해 더 상세하게 설명할 시간이다. 첫 장비 제작 워크숍은 2009년에 혁신적인 유기농 농부들이 열었다. 이들은 2014년에 협동조합 아뜰리에 페이장을 형성하고 조직하는 데 이르렀다. 동시에 아뜰리에 페이장은 여러 저자와 학자(앙드레 고즈 André Gorz, 장 피에르 다르 Jean-Pierre Darré 등)와 함께 다양한 단어와 개념(농업경제학, 오픈소스, 사회적/순환 경제, 공유재, 적정 기술 등)을 이용해 그들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정리했다. 몇몇 사회과학 학자들과의 활발한 협업은 2015년부터 추진되었다.

그때 아뜰리에 페이장은 TRIPs(‘농부 혁신 자산 제작을 위한 여정’, Tournées de Recensement d’Innovations Paysannes / Tours to Make an Inventory of Peasant Innovations)을 통해 이미 그들의 일반 방법론을 완성시켰다. 테스트를 통해 장비를 개발, 개선했으며 작업장을 설치했다. 또한 상세한 도면과 설명서를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집단적으로 검증된 장비를 ‘개방’했다. 가장 뛰어난 장비 중 하나는 트랙터와 장비 사이의 일반적인 3점 연결을 대체해 뒤에 고정시킬 수 있는 간편 삼각형 걸쇠(quick hitch triangle)이다. 아뜰리에 페이장은 10분짜리 동영상을 제작하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 47페이지의 책자를 발행했으며, 여러 설계도를 그렸다. 모두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사진5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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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아뜰리에 페이장의 신속 걸쇠 삼각형 설계, 제작, 테스트(출처: 아뜰리에 페이장)

주요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새로운 장비를 개발한 것은 아뜰리에 페이장이 아니다. 대신 그들은 농부 개개인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 후 집단 제작을 통해 현장에서 검증과 묘사(설계도, 사진, 동영상)의 다양한 과정을 마친 후, 장비를 출시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사용자 혁신은 이미 거기 ‘현장에’ 있고, 아뜰리에 페이장의 역할은 이 혁신들을 수집해서 형식을 갖춰 배포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상황은 어딘가 비슷하다. 지역 농민들이 이미 마음 속에 실현시키고 싶은 장비에 대한 아이디어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지금 아이디어는 지역사회와 함께 주로 긍정적이고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경험되는 관행으로 장비를 계속 제작하는 것이다. 씨앗처럼, 아이디어는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뜰리에 페이장 같은 모델은 다른 국가나 환경에 아무 수정 없이 단순히 따 붙이기 할 수 없다. 두 쪽의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요구된다. 예를 들자면, 그리스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위해 지원되는 공공자금이 없다. 그리고 한 국가의 특정 식물, 토양, 형태는 구체적으로 지역에 적응된 장비를 요구한다. 정치적이고 자연적인 특징 말고도 사회문화적 특징 또한 다르다. 예를 들어 그리스 농부들이 가진 기술은 프랑스 농부와 다르다. 사람들이 협동할 수 있는 조건은 습관에서 비롯되는 지역의 ‘취향’과 인식, 사회적인 상상력을 지닌다. 따라서 아뜰리에 페이장 모델은 시작하는 시점에서 영감을 줄 수는 있지만, 지역의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은 우리가 각자의 학교(파리와 탈린)로 돌아와 키보드 앞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작업한 것을 이론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이디어, 기계, 관행, 지식을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과 때로는 어려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간단한 이동이 아니다. 생각을 복사-붙여넣기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관행과 기술이 이동하는 것이다. 생각, 관행, 기술은 불변의 사물이 아니지만, 어떤 점에서는 ‘준사물(quasi-object)’이다. 생각과 기술을 옮기기 위해서는 변형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 해석하고, 설명해서 적용해야 한다. 상상, 검증, 사진, 그리기, 이론화, 공유, 재구축 등 사물이 여행하고 증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호 연관된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 장비들을 개방적이고, ‘역성장 적합형’ 편한 기술이 되게 하려면, 여러 방법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우리의 주장은 이러한 개방이 기술적인 관행이자 사회적인 노력이라는 것이다. 우리 이야기는 따라서 농업 장비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관행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 관행의 지정학, 윤리, 미학, 집단 차원에 대한 것이다.

* 본 기사의 원문은 P2P 재단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 읽기를 클릭하시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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