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동물 국회, 메아리 방, 의회 정치

[세상읽기] 동물 국회, 메아리 방, 의회 정치(경향신문 2019.5.3.)

 

오늘은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4월30일 행한 여론조사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국회의 패스트트랙 처리를 긍정적으로 보는 여론은 51.9%,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은 37.2%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후자가 무려 37.2%나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동물 국회’의 저 끔찍하고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 국민들은 한마음 한뜻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후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엄격한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은 45.9%에 그친 반면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정치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은 오히려 47.2%로 오차범위 안에서나마 더 높게 나타났다. 사회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 청원이 100만을 돌파하여 200만을 향하여 가고 있건만, 사회 전체 여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랫목은 펄펄 끓어 이불이 탈 지경이지만 윗목은 냉골이라 고드름이 열리는 옛날 한옥집 사랑방의 형국이다.

‘동물 국회’의 참상을 보면서 자유한국당의 작태에 분노하는 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37.2%요, 47.2%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야말로 SNS 시대의 이른바 ‘거품’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과의 관계망으로 연결된 SNS상으로 보면 온 세상, 아니 하늘과 사람과 땅이 모두 분노하고 있는 듯하다. 청와대 청원에 서명한 백몇십만명의 상당수가 이러한 착각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러한 분노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의 숫자가 무려 3분의 1 심지어 2분의 1에 육박하는 듯하다는 게 여론조사 결과이다. 결국 분노하는 이들의 감정은 스스로가 만든 ‘거품’ 속에 갇혀서 혹은 자기와 똑같은 목소리만 되돌아오게 되어 있는 ‘메아리 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분노가 정당하고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분명히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천인공노의 천심 및 민심’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갑갑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비분강개하여 술병째 알코올을 식도에 퍼부어가며 그 3분의 1 혹은 2분의 1의 사람들을 성토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그러한 날선 비판과 공격은 반감과 적개심만 불러일으켜 그들의 단합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그들도 SNS에서의 ‘거품’과 ‘메아리 방’ 속에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쪽 다 선거 때 보자며 이를 갈며 대립하게 된다. 그 결과 한때 10%의 지지율로 소수 정당으로 전락하는 듯 보였던 자유한국당은 어엿하게 3분의 1에서 2분의 1의 표를 끌어낼 잠재력을 가진 거대 정당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비분강개파는 더욱 급한 기울기로 술병을 식도로 연결하며 불을 뿜을 것이다. 그 뒤에는 무한반복의 도돌이표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부조리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국민국가의 의회 정치란 바로 그러한 부조리를 감수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도 또 상대편이 절대악이라고 확신한다고 해도 이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겠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조선시대의 당파 싸움이지 현대 의회 정치가 아니다. 청와대 게시판에 자유한국당 해산을 청원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성해야 할 행위이다. 첫째, 그게 청와대에 청원할 성격의 일이 아니며 가능성도 없다. 둘째, 그저 분노의 표현일 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행정부와 사법부를 동원하여 공당을 해체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박근혜 정권에서나 벌어질 황당한 행태이다. 결국 퇴행적인 정치 행태를 답습하고 말았으며, 앞에서 말했듯이 그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자유한국당이 되고 말았다.

의회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퇴행적인 방식이 아니라 건설적이고 전진적인 방식으로 일을 풀어나가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먼저 자유한국당의 폭거로 누더기가 되어 버린 ‘국회선진화법’을 존치하여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상당수를 엄히 법으로 다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비토크라시’를 제도화하여 ‘식물 국회’를 만드는 주범으로 지목된 그 법을 차제에 그냥 폐기해 버릴 것인가? 또한 패스트트랙 자체가 숙의 과정을 오히려 심도 있게 진행하는 것이니, 자유한국당으로 하여금 객쩍은 삭발식과 팔뚝질 대신 할 말 시원하게 다 할 수 있도록 공론장을 더 크게 열어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자유한국당으로 기울고 있는 3분의 1 혹은 2분의 1의 사람들 중 상당수는 퇴행적인 진영논리에 갇히는 대신 그 넓게 열린 공론장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다른 이들을 그들의 ‘거품’과 ‘메아리 방’에서 꺼내 줄 수 있으려면, 자기 스스로의 ‘거품’과 ‘메아리 방’에서 과감히 나올 줄 알아야 한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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