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의 GCC 아이디어>,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글로벌 디지털 통화 ‘리브라(Libra)’① :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지난 6월 18일 글로벌 SNS 거인 페이스북이 ‘리브라(Libra)’라는 이름의 블록체인 기술 기반 ‘글로벌 디지털 통화(Global Digital Currency)’를 2020년 상반기 중에 세상에 내놓겠다고 선언하고 그 대략의 윤곽이 담긴 백서(https://libra.org/en-US/white-paper)를 발표하여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저커버거는“전 세계 수십억 명을 위해 간편한(simple)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리브라의 목표임을 자신의 페이북 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이해관계자들의 일차적인 반응

일단 페이스북이 공개한 백서내용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암호화 화폐 관련 업계는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2017년 말 이후 추락을 거듭하던 비트코인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1만 달러를 넘어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블록체인 관련 기술 분야의 이해관계자들도 드디어 블록체인 기술이 대대적인 상용화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이해하고 환영하면서 기술적 요소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는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기업이 총대를 메고 나서면 정부 관계자들과 소비자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산업 전반에 활력이 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한국의 많은 정보기술 기업들의 심정도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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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디지털 통화에 가장 관심이 있을 법한, 그래서 리브라 탄생에 가장 경계의 눈초리를 보낼 법한 세계최대 온라인 상거래 거인 아마존은 일단 관망인 듯하다. 아마존 페이를 담당하는 패트릭 구티에 부사장은 “그것은 신선하고 투기적이다(It’s fresh, it’s speculative)”라고 리브라의 양면성을 지적하면서도, “많은 데이터를 다루고 있는 아마존으로서는 2, 3년 후쯤 그러한 논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긴 시야에서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중국 안에서 위챗 SNS와 금융이 결합한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여 리브라의 현실적인 버전을 상용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기업이 텐센트다. 텐센트의 마화텅 CEO는 리브라에 대해 “기술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리감독 허가 여부가 관련“이라면서 텐센트는 여기에 아직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무엇보다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상업은행들과 각 정부 금융관계자들이다. 영국 중앙은행장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되 무작정 문을 열어주지는 않을 것(“with an open mind” but not “an open door”)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는데 대부분의 은행관계자들의 공식 태도를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 의회는 초기부터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의회는 “페이스북이 위험한 암호 화폐를 아무런 감시 없이 운영하도록 두면 안 된다”면서 암호 화폐 계획을 중지하고 청문회를 통해 이를 더 연구할 것을 페이스북에 요구하며 7월 16일 청문회를 예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기성 제도권이 리브라를 어떻게 판단할지의 첫 기준점은 7월 16일 청문회를 보면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그러면 과연 2009년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세상에 선보인 이래 만 10년이 되는 2019년, 그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 왔던 암호화 화폐가 드디어 SNS업계의 거인 페이스북의 등을 타고 본격적인 상용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인가?

‘리브라’는 기술혁신과 금융혁신 이상의 이슈가 있다.

이제 백서수준이 발간된 것을 가지고 좀 더 지켜보면서 판단해도 될 것을 벌써 그렇게 호들갑을 떨 것까지 있겠는가 하는 비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특히 과거 ‘비트코인 투기 논쟁’에서 확인 된 것처럼,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리브라’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을, (국가를 포함한) 기득권 세력들이 서민 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술혁신과정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주장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라는 혁신기술의 도입은 막을 수 없는 대세이고, 이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더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될 수 있다면 환영해야 마땅하지 딴지를 걸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브라는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첫째, ‘리브라’ 프로젝트는 단지 기술혁신으로 인한 소비자 편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금융 시스템’이 연관된 문제이므로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금융시스템도 단지 송금이나 결제, 이체 편의성 수준을 넘어 통화 불안정성이나 금융보안 문제가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리브라가 막대한 양으로 시중에 풀려 나오는 과정에서 그 규모만큼 달러를 포함하는 주요 통화를 리브라 협회라고 하는 조직이 보유하고 운영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금융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간단히 예측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기존 암호화 화폐는 사실상 교환수단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증권처럼 투기(투자?)수단으로만 활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불안정성 논란이 컸는데, 리브라는 그런 위험 수준을 훨씬 넘어갈 것이다.(사실 리브라는 비트코인처럼 실물 통화와 아무런 관계없이 발행되고 유통되는 암호화 화폐 보다는, 차라리 실물 통화에 깊이 연관된 신용카드나 온라인 뱅킹과 유사하다. 따라서 리브라가 활성화 된다고 기존 암호화 화폐가 활성화될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최근 비트코인 시장의 재활성화는 다소 엉뚱한 또 한 번의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크게 위기에 빠뜨린 세 번의 시기가 있다면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2000년대 중반과 최근의 부동산 거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의 두 번이 금융위기다. 그리고 부동산 거품도 사실상 과도한 금융대출 탓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보면 대체로 금융 불안정성이 사회경제위기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금융을 중앙정부가 통제하거나 관치 금융처럼 권한을 남용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금융규제를 풀어서 카드회사, 상업은행, 캐피탈이나 여전업계 등이 규제 풀린 금융영업 경쟁을 과도하게 하고 위험한 금융상품을 마구 뿌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이런 행위들은 모두 ‘금융혁신’이름으로 포장되었다. 다시 말해 중앙정부가 금융혁신을 막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 아니라 규제기관이 금융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약탈적인 금융행동 남발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 규제를 철저히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리브라 발행에 대해서도 마치 기술혁신과 금융혁신을 국가나 정부기관이 통제해서 혁신을 가로막는 행위를 하려는 것처럼 포장되어 설명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기업들의 ‘마타도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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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가 표방하는 사회적 가치, 우버가 표방했던 사회적 가치

둘째, 리브라 발행을 내걸면서 페이스북이 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는데, 시민들은 거대 독점기업들이 약자와 사회적 편의를 일부러 애써 강조할때마다 주의 깊게 내면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세계의 17억 명의 성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데, 이들 중 10억 명은 휴대폰이 있고, 5억 명은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은행 등 기존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브라는 아프리카 등에 산재한 이들의 금융소외를 해결하겠다는 거창한 사회적 미션을 내걸고 있다. 암호화 화폐 투자자 맥도너는 이를 “리브라가 금융 소외층에게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는 것은 포장이며, 데이터 바다에 빨대를 꽂는 것”이라며 비난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액면 그대로 페이스북의 공언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 우버나 에어비엔비가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내걸고 저사용 자원의 활용이나 여가시간에 부가 수입 창출이라는 그럴듯한 사회적 명분을 걸고 플랫폼 기업을 시작했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진행된 현실은 사실상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임금 노동자의 양산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따라서 리브라로 인해 페이스북을 포함한 이들 컨소시엄에 참여한 사기업들의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 상업적 비즈니스로 인해 시민들은 정확히 어떤 편익과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인지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기득권 독점 세력과 미래 혁신세력의 싸움?

세 번째로, 리브라가 무너뜨리려는 기득권이 기존의 고비용의 독점적인 금융시스템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리브라를 추진하는 주체 역시 페이스북이라는 SNS 최대 독점기업이고 심지어 기존 금융시스템의 독과점 이익을 누리고 있는 ‘비자카드사’도 리브라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약 3만 8천명의 적은 수의 직원을 두고 있지만, 월 활동 사용자가 23억 8천만 명(2019년 3월 기준), 일일 사용자가 15억 6천만 명, 1분마다 웹 페이지에 30만개의 뉴스피드가 올라오고 14만개의 사진이 올라오며 50만개의 코멘트가 붙여진다. 그 결과 페이스북은 전체 모바일 소셜 트래픽의 80퍼센트를 차지하며 구글과 페이스북이 합쳐서 온라인 광고시장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리브라 추진 주체가 이처럼 과도하게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술거대기업이라는 것인데, 현재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 애플, 구글을 포함하여 페이스북을 대상으로 반독점법 위반혐의를 조사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페이스북은 2018년에 8,700만 명의 가입자 개인정보를 유출시키고도 제대로 책임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한 전력이 있어 이들 기업들이 사적으로 발행한 디지털 통화를 책임 있게 운용할 수 있는지 기초적인 신뢰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리브라의 발행을 둘러싼 견제와 경쟁은, 일부 사람들이 묘사하듯,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과 혁신적인 미래 집단의 싸움이 아니라 그냥 양쪽 다 기득권 집단들 간의 세력 경쟁이라고 보는 것이 더 냉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리브라의 발행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린 반응과 세력 경쟁은 겉보기 보다 꽤 복잡하다. 종합적으로 리브라 발행결과가 ‘소비자’로서 시민들에게 이익이 되고, 전 세계 금융소외자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아직 더 따져볼 대목이 너무 많다. 다음 회차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이슈들을 더 검토해 보기로 하자.

김병권 / 서울시 협치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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