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운의 금융 톺아보기> 유럽중앙은행은 실체가 존재하는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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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지난 번 <오트 피낭스의 계급투쟁>편의 중심주제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유로달러선물시장과 미 연준간에 벌어졌던 갈등이었다. 이를 통해 현대의 오트 피낭스들이 13, 14세기 피렌체에서 최초로 “발명”(조반니 아리기) 되었던 당시와 유사하게 여전히 세계의 정치경제의 지배력을 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우리는 연준 의장 옐런이 오디세우스 방식의 포워드 가이던스(실업률 6.5%, 인플레이션율 2%)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왜 자신이 지금 당장 금리를 올리지 않는가를 알리기 위해 잭슨홀 미팅에 월스트리트의 이코노미스트를 초청하는 대신 전미노조의 수석경제학자를 초청하는 일단의 사건을 기획했다고도 했다.

또 유로달러 선물시장은 선물금리를 올려 미국의 연방기금시장의 달러가 유럽으로 빠져나가게 만들어 옐런의 정책기조가 사실상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까지 했다고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단순히 두 세력 간의 에피소드가 아니며, 복잡한 사태라고 했는데, 그 이유로 연준이 의회로부터 부여 받은 고용의 극대화라는 설립이념을 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대의 오트 피낭스의 갈등 관계가 단순히 금융자본의 지배력을 강화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는 금융세력 간의 다툼 이면에 존재하는 국민경제의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 연준이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고용의 극대화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1979년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4년 연속 금리를 올리자, 농민들과 자동차 딜러들이 연준 앞으로 관(!)을 배달시키는 사태가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식으로 풀면, 농민단체와 회사택시 기사들이 한국은행 앞에 가서 잘못된 금리 정책을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들어 졌다고 농성을 벌이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경기침체의 원인을 한국은행장의 실패로 보고 따져 묻는 정치문화는 없다. 지난 글은 이런 문제의식 하에 쓰여진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미국의 연방기금시장의 달러들이 대거 유럽시장으로 빠져 나가게 되면서, 달러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연준이 이를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앞서 이번에는 잠시 쉬어가는 기분으로 #인터미션을 마련하기로 했다. 뜬금없이 웬 인터미션인가 할 수 있는데, 오트 피낭스 간 다툼을 계속이어가기 위해서는 현대의 중앙은행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우리의 관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터미션에서는 과연 중앙은행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것이다. 주로 유럽중앙은행에 대한 것과 1913년 연준의 두 설립이념 중 소위 진성어음주의라고 불리는 “리플러-버지스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중앙은행의 설립에 관한 이야기는 통상적인 접근과 약간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앙은행은 “화폐를 찍어내고 유통시키는 존재” 정도로 치부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약간 다른 혹은 그것 이상의 존재이다, 즉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국가의 발전정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존재하고 역할 한다는 생각이다.

ECB, 여전히 필라델피아 단계?
아니면 이미 해밀턴 모멘텀을 거친 상태?

애덤 투즈는 『붕괴: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에서, 현재 유럽중앙은행이 필라델피아 단계인가 아니면 이미 해밀턴 모멘텀을 거친 상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질문은 1) 현 유럽중앙은행이 과연 ‘중앙은행다운 위상’을 지니고 있는가, 다른 한편으로 2) ‘중앙은행으로서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지적한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헌법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지역으로 지금도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다. 이런 맥락에서 투즈가 유럽중앙은행을 여전히 필라델피아 단계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유럽중앙은행이 미국 건국초기 즉 어떤 중앙은행제도도 마련되지 않은 초기상태인가라고 질문한 것이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의 재정제도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미국의 첫 번째 중앙은행인 제1차미합중국은행이 20년의 차터(charter)를 얻어 설립될 수 있도록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투즈의 해밀턴 모멘텀을 거쳤는가라는 질문은 유럽중앙은행이 제도적 기초를 완성한 상태인가라고 물은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이 질문을 1) 유로존의 지속가능성과 유로존 위기의 대응에 현 유럽중앙은행 제도가 과연 적절한가, 2) 현재 유럽의 상태가 과연 그대로 두어도 되는지? 라는 문제로 이해했다. 이 문제는 유럽의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유럽의 공동통화제도가 도입된 후 줄곧 제기되어온 논란이 위기를 계기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아직 모호한 상태이며 온전하게 토론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에 대한 투즈의 질문이 유로존의 존망의 문제와 관련 있다는 것은 유로존의 산파라고 할 수 있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1999년) 로버트 먼델과 미국 연준 역사에 대한 기념비적인 2,000페이지 책을 집필한 고 앨런 멜처 간의 대화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로버트 먼델은 유로 탄생의 산파였던 최적통화지역(optimal currency area) 이론을 제시한 공로로 199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최적통화지역 이론의 논리는 생각보다 심플하다. 즉 경제적 규모와 상황이 비슷한 나라는 거시경제정책 수행과 그것의 영향도 비슷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 공통통화를 사용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가입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멘델의 최적통화지역이론은 사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들면서 부터 이어진 유럽통합 역사 중 한 계기로 볼 수 있다. 또한 벨라 발라사의 유럽통합 5단계 중 4번째 단계인 공동통화 도입의 이론적 근거라고도 볼 수 있다. 유럽공동통화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유럽은 한 나라가 아니다. 4단계까지 왔으니 마지막 미션만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긴 한데, 현재 유로화가 그런 낙관적인 전망의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이 1694년 설립한 잉글랜드 은행에게 1844년 독점적 발권을 주는 대가로 대출받을 당시 독점적 발권의 범위는 잉글랜드 지역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잉글랜드 은행의 파운드 스털링은 스코트랜드에서 사용될 수 없었다. 스코트랜드에서 물건을 사려면 스코티쉬 파운드를 내야 된다. 유럽 중앙은행이 처한 상황은 이처럼 한 나라가 아닌 상황에서 마치 한 나라의 중앙은행인 것처럼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서 오는 곤란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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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먼델과 멜처간의 대화는 2012년 8월 <포춘>지를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한 우리나라 신문을 봐도 무방하다. 멜처가 먼델에게 했던 말의 핵심은 유럽은 미국처럼 나라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은 마치 미국이 필라델피아에서 미합중국 헌법을 받아들인 그때와 유사하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 멜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현재 유럽/유로존이 먼델이 구상하고 제안했던 최적통화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로존에 들어간 그리스와 독일은 최저통화지역이론에서 전제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말하자면 유로존은 잘못 만들어진 역사라는 것이다. 현대의 유럽중앙은행이 아무리 세련된 통화신용정책의 기준과 제도 그리고 운용능력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유럽이라는 자본주의 발전 정도와 유로존의 서로 다는 회원국들의 상태가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유로존이 계속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은 누구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국가와 국민을 전제하지 않은, 말 그대로 극단적인 자유를 누리는데 말이다. Laissez faire, laissez passer!.

자본주의나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중앙은행의 상태가 결정된다.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멜처가 강조하는 것은 1913년 연준의 탄생 이념이다. 멜처는 1913년 연준의 설립이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당시 연준의 설립이념은 지금과 같은 물가안정, 고용의 극대화, 장기국채 금리의 완만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진성어음주의와 은행인수어음의 활성화가 그것이었다. 멜처는 이 중 진성어음주의를 특히 강조했는데, “리플러-버지스주의”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 연준의 진성어음주의는 상업활동에 기인한 어음은 화폐처럼 미국 전역의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유통시켜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반영된 것이다. 진성어음은 유통어음과 달리 실물경제활동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진성어음주의는 은행학파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어음주의를 채택한 당시 연준의 통화신용정책 기조는 경기 순응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순응적 통화신용정책 기조의 대표적인 수단은 재할인정책이다. 이와 달리 공개시장조작은 경기 대응적인 정책이다(현대 중앙은행 맥락에서 공개시장조작의 기원은 1929년 대공황 직전 사망한 벤저민 스트롱 뉴욕연준 총재가 아니라 1953년 단기국채매입주의를 정착시킨 맥 체니 마틴 연준 의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현대 중앙은행의 독립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대목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은 자신에게 알맞은 신용시스템을 요구하며,
그것은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한다.

1913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대통령이 서명한 연방준비제도법은 그 이듬해 7월 출범한 연준의 법적 근거다. 1910년대와 1920년대는 미국 자본주의가 초기 단계를 벗고 도약하던 시기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국가 수준에서 화폐 및 신용제도가 정착되지 못해 상업활동을 밀어주고 끌어 줄 수 있는 신용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가운데 진성어음주의/“리플러-버지스주의”가 기여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필요했던 혹은 걸 맞는 국가수준의 신용시스템의 작동이었다. 1910년대 토론되다가 1920년대 체계적인 주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기는 1924년 발간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제10차 연례보고서”를 통해서다. 1920년대는 “리플러-버지스주의”의 시대인 것이다. 물론 아이켄그린 같은 사람은 1930년대도 “리플러-버지스주의”가 지배적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시 애덤 투즈의 질문을 떠 올려보자. 우리는 지난 유럽의 위기 시 유럽중앙은행이 했던 비표준적 조치(양적완화의 유럽식 이름)를 통해 유럽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공식처럼 여기고 있다. 물론 유럽중앙은행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위기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유럽중앙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그 존재이유를 입증하지 못했다. 즉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여럿의 국가 중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 지에 대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독일과 프랑스 가운데서 표류했다. 혹은 자신에게만 봉사했다.

중앙은행의 존재와 역할은 그것의 근거인 해당 국가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정도와 이에 부응하는 신용시스템의 마련인데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회원국들이 각양각색이어서 도대체 누구의 경제상황과 신용시스템의 요구에 봉사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의 존재이유와 그것에 근거한 신용시스템의 마련과 작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존재이다. 따라서 유럽중앙은행은 실체가 존재하는 유령이다.

송종운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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