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의 GCC 아이디어> 다시 늘고 있는 최신의 제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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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정책이 필요했다.

20대 청년들의 정부 지지율이 심각하게 낮다는 사실이 새삼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부터 다시 불기 시작한 청년정책 관심 탓으로, 추가적인 아이디어들이 수없이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가지 수만 많지 대중적인 처방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지자체 수준에서 나올만한 청년정책 메뉴는 다 나왔다. 청년 뉴딜 등 일자리 정책, 청년 창업지원정책, 취업청년 자산형성지원 정책, 주거지원 정책, 그리고 청년수당에 이르기까지 정책 유형은 충분히 다양해졌다는 말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까지 정책들은 대체로 청년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반전시키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청년문제는 단순히 특정 계층의 복지개선의 이슈가 아니라 사회구조 틀을 바꿔야 하는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호미로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세대를 이어서 확대되는 불평등 구조를 흔들어서 기회의 평등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적 상속이라는 차원이 다른 대안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던 시절에는 언제나 제기되었던 대안이 바로 사회적 상속이었다. 특히 재산과 교육, 인맥 등 모든 자원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서 사회적 지위를 확정짓는 사회에서는 중요한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특히 사회적 상속 제안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산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에서 부모의 상속이 다음세대의 기회의 불평등을 시작부터 확대시키게 된다면, 이제 ‘부모가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상속을 해주자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나서 성년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그 아이들에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종잣돈을 주자. 부모가 상속을 할 때 자식들에게 노동의 조건을 걸지 않듯이 사회도 상속하면서 노동의 조건을 걸지 말자”는 제안이다.(김만권 2018)

사회적 상속의 완전한 모델 – 18세기의 토마스 페인

잘 알려진 것처럼, 사회적 상속제안의 원조는 18세기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시민혁명 현장을 누볐던 원조 국제 혁명가이자 이론가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이었다. 청년에게 사회적 상속을 나눠주자는 그의 제안은 1796년에 쓴 짧은 팜플식 <토지분배의 정의(Agrarian Justice)>에 선명히 실려 있고, 그 내용은 현대 제안자들의 그것과 전혀 뒤질 것 없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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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토지자원을 핵심으로 한 사회의 공유자원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조세 징수의 근거에 대해 페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개인 재산의 축적은 사회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또한 개인은 정의, 감사, 문명의 원칙에서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축적의 일부분을 부의 원천인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모든 청년들이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사회적 상속 지분 명목으로 각각 15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2,000만원)씩 나눠주자는 것이다. 그는 청년에게 사회적 상속을 해주는 이유를 이렇게 덧붙인다. “빈곤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이 이른바 문명이라는 이름을 부당하게 획득한 체제의 관행이다. 그 보다는 경제적 측면에서라도 가난해지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방법은 스물한 살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을 출발하기 위한 밑천을 지원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속이 예방적 차원의 정책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확인한 언급이다.

21세기 벽두의 사회적 상속 제안

198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신자유주의 정책 전환에 따라 불평등이 확대되고 사회적 통합에 문제가 생기는 가운데, 세기의 분기점인 2000년을 전후하여 미국과 영국에서 사회적 상속 제안이 부활한다. 미국에서는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서 모든 청년에게 8만 달러라는 ‘사회적 지분’을 주자는 제안을 담은 책이 출간된다. 영국에서는 노동당을 지원하는 두 정책연구소 페비언 소사이어티와 공공정책연구소(IPPR)에서 ‘사회출발자본(Start-Up Grant)’ 또는 ‘출생급여’를 모든 청년들에게 제공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들 역시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질병’이 퍼진 뒤에야 그 병을 고치거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적 정책이 아니라, 불평등과 빈곤, 사회적 배제를 처음부터 막도록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상속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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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국에서는 2005년부터 집권 노동당이 주도하여 ‘아동신탁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상속제도가 시행에 들어갔다. 그 내용은 “태어난 모든 아기에게 정부가 초기 투자기금으로 250파운드를 계좌를 만들어 넣어주고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250파운드를 더 넣어준다.” “아이가 7세에 이르면 한 번 더 250파운드를 적립해 준다.” “아이들이 부모와 친척들이 아이 계좌에 1,200파운드까지 적립해줄 수 있다.” 그리고 아이가 18세에 이를 때까지 기금을 운용한 후 그 이익금 전체를 18세 이후 인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11년 카메론 보수당 정부는 긴축을 핑계로 이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하고 중단된다.(김만권 2018)

최근의 사회적 상속 제안들

한국에서는 지방정부인 서울시와 성남시가 각각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대상의 사회수당을 시행함으로써 사회적 상속 논의를 위한 실질적인 길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형적인 사회적 상속 정책 제안은 2017년 대선 시기에 정의당 후보로 나선 심상정 의원에게서 나왔다. 그는 “세습으로 인한 불평등, 수저론을 과감하게 타파하기 위해 청년 사회상속제를 도입”하겠다면서 상속 증여세 세입 예산 약 5조원을 활용하여 매년 20세가 되는 청년에게 1인당 1,000만원 가량을 배당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 상속·증여자는 배당금을 환수하고, 대신 아동양육시설 퇴소자 자립정착금은 2,000만원으로 인상하도록 보완했다.

연구자 그룹 가운데에는 우선 정치철학자 김만권씨가 2018년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책의 출판을 통해서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사회적 상속)을 모두 소개하면서도 당장의 실행가능성이라는 차원에서 기초자본제도를 선호한다고 밝힌다. 또한 최근에 국책 연구원인 노동연구원에서도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맞게 사회보험제도의 확장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사회적 상속)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기본자산을 한 단계 더 변형한 ‘생애대출(life loan)’과 ‘사회적 인출권(social drawing right)’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 흥미롭다. 생애대출이란 개인이 생애기간동안 자유로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불규칙적인 고용단절에 대응하여 생활을 지속시켜주며, 가정생활이나 휴식 등 개인을 위한 시간을 융통성 있게 사용하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돕기 위한 제도라고 한다. 각자가 개인신용계정을 만들어 생애기간 동안 필요한 사용을 하면 국가가 정기적으로 지급을 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사회적 인출권도 유사한 방식인데, “육아나 직업교육, 노동조합 활동 등 을 위해 시간사용권이 확보되어야 하고, 이와 함께 소득보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장지연 2019) 또한 독일 노동사회부가 최근 제안한 ‘개인활동계좌’도 유사한 취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공공정책 연구소는 노동당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책대안 보고서 “Prosperity and Justice”를 2018년에 공개하면서, 부의 불평등을 줄일 하나의 방안으로서 ‘시민자산펀드(Citizen’s Wealth Fund)’를 개설하고 청년들이 25세가 되었을 때 펀드의 운영수익금을 배당으로 분배해주자고 제안하고 있어 관심을 모았다. 방식은 알래스카 석유펀드와 유사한데, 단지 알래스카에서는 이를 기본소득 형식의 시민배당으로 지급하지만 그럴 경우 배당금이 적어 효과가 떨어지므로, 차라리 청년들에게 지급하여 교육비나 주거비, 그리고 창업자금으로 활용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 역시 정확히 사회적 상속 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의 불평등이 특히 청년들에게 인생출발의 기회자체를 박탈하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가 하면, 사회전체의 미래전망을 어둡게 하자 사회적 상속이 다양한 차원에서 이를 예방할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김병권 / 서울시 협치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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