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며…

 

벌써 1년 반 정도가 흘렀습니다. 캐나다의 마가렛 멘델 교수(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 소장)와 폴라니연구소 아시아지부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한 건 제1회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 폐막 다음 날이었으니까요.

그 사이 세계경제는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생태위기를 해결할 뾰족한 수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가히 ‘인류세’라는 말이 등장할 만합니다. 한국을 돌아보면 더욱 답답합니다. 부끄러워서라도 정부가 앞장서야 할 세월호 사태의 원인 규명 해결은 바로 그 정부 때문에 지지부진합니다. 더 이상 가슴 치는 유가족을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초지일관 가계부채를 늘리는 정책은 심중 팔구 현재의 침체를 위기 상황으로 바꾸고 말 겁니다.

인류는 1930-1940년대에 비슷한 경험을 했죠. 당시에 “자기조정적시장”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사회를 붕괴시킨다고 갈파한 폴라니의 사상이 각광을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폴라니는 케인즈처럼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인류학과 역사 연구를 통해 훨씬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폴라니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연구소 문을 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폴라니 사상의 연구와 전파, 현재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한국 사회적 경제의 역사를 기록하고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일, 나아가서 폴라니의 다원적 발전 사상에 기초한 구체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까지 우리 연구소가 해야 할 일은 태산 같습니다.

물론 소수의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폴라니 연구자들과 함께, 사회적 경제의 실천가, 이론가, 행정가들과 함께, 그리고 시장만능사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문 밖의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겁니다.

생태면에서, 사회면에서, 그리고 경제면에서 우리 아이들의 삶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거대한 세월호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는 속수무책 안타까워만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겠죠. 우리 연구소는 아이들의 활로를 찾는 데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조합원들의 신뢰야말로 이런 난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여러분이 밝힌 신뢰의 등불만 믿고 우리는 어둠 속으로 길을 찾으러 들어갑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2015년 4월 24일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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