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지금, 다시 폴라니를 읽을 시간

 

한겨레 2015년 4월 23일 이유진 기자

칼 폴라니는 인간과 자연을 모조리 상품화하는 오늘날 의 신자유주의와 같은 ‘자기조정적 시장’의 신화를 논박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한겨레> 자료사진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설립
자본주의 비판서 2권 새로 발간,  ‘협동적 경제’ 다원모델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착한책가게·2만4000원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어느 고대적 경제에 대한 분석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길·2만5000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철학자 칼 폴라니(1886~1964)를 재소환했다. 2012년 내로라하는 세계의 경제 엘리트들이 모인 다보스 포럼에서는 회의 내내 폴라니의 사상이 조명되었고, 이에 ‘폴라니의 유령이 떠돌았다’고 할 정도였다.

폴라니는 시장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전통적인 경제학을 비판하며 역사적 고찰을 통해 19~20세기 전체주의, 전쟁, 기아, 폭력 같은 ‘인류 잔혹사’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철학, 경제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을 넘나들며 고심한 끝에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자연·토지의 상품화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시장이 알아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한다는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관념이 유토피아,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망상적 시장경제에 맞선 ‘사회’가 저항이나 반동으로 ‘이중적 운동’을 불러일으킨다는 폴라니의 이론은 ‘포스트 신자유주의’를 고대하는 이들에게는 대안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왔다. 생전 칼 폴라니가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 책은 <거대한 전환>(1944)을 포함한 두권뿐이었다. 이번에 발간된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도 그의 사후 1988년 캐나다 몬트리올 컨커디어 대학에 설립한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의 문서고에 있던 1919년부터 1958년까지의 글들을 모아 묶은 것이다. 폴라니가 망명지인 영국에서 작성한 강의노트, 학술회의 발표문, 미국 대학 강연 원고 등을 선별한 이 책은 서구 문명의 문제점, 공공여론과 통치술, 평화주의와 전쟁, 지식사회학에 대한 생각을 담아 폴라니의 사상적 배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에서 폴라니는 인류를 도탄에 빠지게 한 오만한 서구 문명의 문제점을 열거하며 산업혁명으로 기술, 경제 조직, 과학이라는 트라이앵글이 형성돼 사회적 대혼란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동의어가 되고, 경제조직은 생산의 효율성만을 끌어올렸으며, 인간과 자연을 상품화하는 경제중심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사회’를 망가뜨리는 체제를 만든 서양과 자기 세대에 책임이 있다고 성찰했다.

그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 ‘사회’가 ‘경제’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오류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경제가 인간의 살림살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사회과정과 인간 관계에 오히려 ‘묻어들어’(embedded)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노동을 하게 만드는 유인이 ‘경제적’ 동기 하나뿐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인류가 이룩한 ‘실체적 경제’를 규명하려면 역사적·인류학적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고, 직접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1966)이었다. 본인의 손으로 직접 완성한 두번째 책인 이 저작에서 폴라니는 ‘고대적 경제’를 복권한다.

아프리카 신생국가 다호메이는 18세기 독특한 국가경영술과 행정술 아래 중앙경제, 시장경제, 노예무역 같은 다양한 경제질서를 두었다. 원시공동체에서 나타난 ‘상호성’(호혜성)과 ‘재분배’를 중심으로 대안적 ‘다원 모델’의 힌트를 발견한 것이다. 옮긴이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은 “책을 쓴 1950년대 세계는 냉전 체제 아래 양 진영으로 나뉘어져있었고, 폴라니는 공산주의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어디에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호메이 왕국을 통해 다양한 경제질서의 공존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폴라니는 ‘협동적 경제’라는 방안을 제안했다. 노동, 소비, 생산 영역에서 각각 스스로를 대변할 대표자를 뽑아 그를 통해 조화롭게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유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 민주주의를 보장하면서 ‘사회’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번에 발간된 두권의 책은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소장 정태인)가 아시아지부로서 서울에서 문을 여는 시점에 발맞춰 나왔다. 연구소의 제안으로 국내 여러 출판사의 칼 폴라니 저서들도 ‘칼 폴라니 총서’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이고 있다. <거대한 전환>(길)이 폴라니 총서 1권이며, 가을께 출판 예정인 <사람의 살림살이>(후마니타스, 이병천 옮김)가 2권,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은 3권,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가 4권이다.

국제심포지엄을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폴라니의 딸 캐리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의 뜻을 전하는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정태인 소장은 “연구소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며 칼폴라니 연구소 아시아 지부로서 한국과 아시아의 사회적 경제 모델을 심화, 발전시켜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www.kpia.re.kr 참조)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한국 온 폴라니 딸 레빗 교수 “아버지도 기본소득 지지했을 것”

캐리 폴라니 레빗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놀랍지만, 경제권력이 집중되면 필연적으로 불평등이 생깁니다. 서울의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가 해법을 찾아주길 기대합니다.”

칼 폴라니의 딸인 캐리 폴라니 레빗(92) 캐나다 맥길대 명예교수가 24일 한국의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개소식을 맞아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23일 오전 서울 정동 성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만난 그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무척 열정적이었다. 경제학자인 그는 조건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주자는 기본소득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다. “보편적인 기본소득은 수혜자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고, 자산조사가 필요한 ‘선별 복지’보다 노동 동기도 덜 훼손한다”며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기본소득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기사 중에서

기사 전문은 [한겨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