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버니 샌더스와 제러미 코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북유럽형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뉴햄프셔주 여론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7%포인트 앞지르는 이변을 낳았다. 또 영국 노동당이 치르고 있는 당수 선출 과정에서 전통적인 강경 좌파 제러미 코빈이 2위를 멀찍이 따돌린 압도적 1위로 승리를 굳혀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곧바로 영국 및 미국 정치의 좌선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샌더스 후보의 승리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또 코빈이 실제로 당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노동당의 각료들 및 온건파 의원들의 반발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명무실의 당수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시간의 지평선을 좀 더 늘려서 현 상황을 본다면, 당면한 선거의 승패보다 더 의미심장한 흐름 하나가 보인다. 3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떠받쳤던 영·미 등 서구의 ‘중도 정치 합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구조 변화이다.

2차 대전 이후 서구에 나타난 수정 자본주의 체제가 극좌 극우를 배제한 중도좌파 및 우파의 정치적 합의 위에 성립하였듯이, 신자유주의적 질서 또한 1990년대 이후의 중도좌파 및 우파의 정치적 합의를 기둥으로 삼아 작동할 수 있었다. 그 가장 중요한 계기는 중도좌파 진영의 패권이 시장주의와 지구화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세력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이들은 노동조합과 공공 부문에 주로 의존하는 전통적 좌파와 깨끗이 단절하고, 시장 개혁과 지구화의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면적 사회개혁을 약속하였다. 이를 통해 시장주의와 지구화는 좌우를 아우르는 제도 정치의 합의가 되었고, 이를 부인하고 반대하는 세력이나 담론은 극좌 극우로 몰려 비주류의 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좌파 정당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우파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합의를 (혹은 합의의 외양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던 이가 바로 ‘신노동당’을 창건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였고, 비슷한 시기 미국 민주당 정권을 이끌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노선도 이러한 흐름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영국의 진보 정당 내에서 샌더스와 코빈이 대표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은 바로 그러한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염증과 피로의 폭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흐름이 타깃으로 삼은 것도 블레어의 자손들이라고 할 세 명의 온건파 후보들, 그리고 성과 이름만 다른 또 다른 클린턴 후보이다. 물론 이러한 염증과 피로는 그 동안에도 항상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좌익 반대파는 항상 ‘낡은 구닥다리 좌파들’이라고 치부되어 소수파의 위치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크게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샌더스나 코빈이나 옛날 좌파들의 낡은 구호를 내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현실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의 경제침체 속에서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이며, 이들의 주된 메시지는 시장주의와 지구화의 수사학 속에서 행해져온 부자감세 및 복지 삭감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기에 좀 더 평등한 사회·경제 질서 수립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이 지난 30년간 축적해온 바로 2015년 지금의 병폐와 모순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나이가 든 옛날 좌파들이 아닌 각계각층의 젊은 세대에게서 더욱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이나 이념의 문제에 대해 큰 선입견이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청년실업, 학자금대출, 주거 및 생활안정 등 2008년 이후의 암울한 경제 현실에서 자신들이 얻은 경험을 근거로 그러한 호응을 보이고 있다.

제비 몇 마리가 봄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1970년대에 신자유주의 담론이 지구적으로 확산되던 과정과 또 하나의 닮은 점을 본다. 1970년대에도 신자유주의 실험의 시작은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이었고 그것이 이후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으로 이어졌었다. 얼마 전에는 그리스에서 시장주의를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시리자 정권이 들어섰다. 이제 그 흐름이 영국과 미국의 진보 및 중도 좌파 정당으로 옮겨가는 것일까. 시장주의와 지구화라는 중도정치의 합의가 이제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일까. 두 나라에서 진행 중인 선거를 숨죽이고 지켜볼 뿐이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장

원글은 경향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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