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아모레퍼시픽 면접관님에게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정말 궁금해서 여쭈어 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셨는지요? 면접 시험장에서 지원자에게 “국정교과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지요. 그 지원자는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도 되느냐고 먼저 물은 뒤, 국정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정부가 책임있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고 답했다고 하죠. 그랬더니 이렇게 다시 캐물으셨다지요. 그래서 국정화 지지냐, 반대냐고요.

잘 아시겠지만 면접이라는 건 질문자들이 일종의 게임과 같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장입니다. 최근에는 이게 또 문제가 되어서 그 전략적 행동의 요구사항 중에 “진지하고 솔직해 보여야 한다”는 사양이 또 들어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면접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았으며, 면접을 자신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온 세상에 선언하는 장으로 삼는 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민한 정치적 사안을 물어보면서 무슨 답을 기대하신 걸까요? 이 게임을 잘 아는 그리고 꼭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지원자라면,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건 겉으로는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그래서 기업인들의 가치관에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질 답을 지어낼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게 정말 진심에서 나온 소리인지, 입에 발린 소리인지 그 자리에서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실 터인데 이런 질문을 애초에 무슨 목적에서 꺼내셨는지요?

그런데 그 지원자가 사뭇 비판적인 관점에서 답하면서 예상이 어그러졌던 것일까요? 그래서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분명히 하라고 다그치셨던 걸까요? 이런 저의 궁금함은 정치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질문과 대답이 한국 기업 특유의 조직문화 그리고 노동생산성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 암울한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기업의 조직 원리는 군대 용어인 ‘밤송이를 까라면 까’였다고 합니다. ‘죽었다고 복창’이라고도 하죠. 몽둥이를 든 자가 휘두르면 그게 얼마나 아프든 심지어 때리지도 않았다고 해도 아이고 죽겠네라는 시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알아서 긴다’는 다른 숙어를 낳기도 했습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생각이 타당한지 아닌지 또 그걸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전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윗선의 생각과 판단이 무엇인지를 눈치코치로 파악하고 그에 맞게 처신하고 말하고 심지어 생각하며 느끼는 게 조직원의 도리라는 게 전통이었습니다.

혹시 그걸 확인하고 관철하려고 다시 캐물으셨던 것인지요?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만이 훌륭한 조직원이며 ‘인재’라는 판단 기준을 두셨던 것인지요?

이렇게 나름 짐작을 하면서도 이렇게 여쭙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21세기의 경제 환경에서 통용되는 ‘인재’의 기준일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업 조직들은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공구리’를 치는 생산 현장과 거래선 뚫으러 다니는 영업활동이 전부였던 옛날의 기업 활동에서는 요긴하게 쓰였던 ‘인재’라고 해도, 이렇게 정신없는 속도로 끝없이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서 새로운 활로와 방안을 찾아내려는 조직에 필요한 ‘인재’일 수는 없습니다. 아마존이나 구글에서는 회의 시간에 아무 말도 않는 이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죠. 가만히 숨죽이고 엎드려서 눈치 보아 알아서 기는 인물을 그것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이러한 21세기의 경제 환경에서는 실로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에 현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비웃으실 수 있겠습니다. 한국 기업 문화와 경제 현실을 전혀 모르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소리를 읊어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더욱 궁금해지는 질문이 또 있습니다.

기업 활동 및 경제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정치적·이념적·사상적 질문들이 어째서 그토록 많이 나오는 것일까요? 큰 탈 일으키지 않고 부려먹기에 좋은 ‘마름’형 인물들을 가려내기에 그런 질문들이 효과적이기 때문인가요? 그런데 그러면서 또 왜 한국 기업들은 모든 직원들에게 혁신이니 창의성이니 하는 말들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퍼부어대는 걸까요? “창의적, 혁신적이면서도 윗선의 뜻을 알아서 잘 받드는” 인재를 찾는 것인가요? 그런 사람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할까요?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장

원글은 경향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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