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경제위기와 파시즘의 망령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3분기 경제성장률(2분기 대비 1.2%)에 “서프라이즈”라고 환호하는 경제부총리가 있는 한, 앞으로 경제가 호전될 가능성은 제로다. 지난해 3분기 대비 2.6%의 성장은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지 경탄의 대상이 아니다. 주요 20개국(G20)에 2015년 경제성장률이 4%에 이를 것이라는 엉터리 자료를 내놓고는, 국제기구들이 하지도 않은 평가를 근거로 세계 1, 2위라고 호들갑을 떠는 대통령이나 그런 숫자를 퀴즈로 내는 외교부는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진짜 문제는 그들이 굳건한 믿음으로 이미 파산한 경제정책 기조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데 있다. 10개월째 수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급기야 10월엔 -15.8%를 기록했다. 2011년 80%를 넘나들던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현재 74% 수준으로 떨어졌고, 상품 재고율은 급증하고 있다. 단기 경기를 직접 보여주는 지표를 보더라도 수출 증대가 설비투자의 증가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소비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깎아 먹은 것은 가계부채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기정책은 부동산 투기를 일으키는 것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경기를 일으키려는, 즉 주택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는 정책은 수요가 공급보다 빨리 증가할 때만(수요곡선이 빠르게 오른쪽으로 이동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금융규제를 풀고 금리까지 내리면서 “빚내서 집 사고 전세금을 올려주라”고 부추긴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관료들도 경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97년, 2009년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은 이들이 들고나온 정책이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10월에 대기업의 구조조정 방침을 밝힌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소기업의 구조조정 대상을 발표했다. 외환위기 때에 비해서 기업의 안정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최근 국제금융협회(IIF)는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금융기업부채 비율이 106%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선진국 평균은 90%). 바야흐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모두 위험해졌다.

수출 급감에서 시작된 기업 위기가 신용경색을 가져오면 가계부채마저 터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구국의 묘수라도 되는 듯 강조하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일반 정리해고의 자유이다. 언제든 노동자를 대량해고할 수 있어야 ‘선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힘으로 밀어붙이고 ‘민중총궐기’에 대한 살인적 탄압은 앞으로 일어날 사태의 전주곡일 뿐이다.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파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박근혜의 ‘국민행복시대’ 역시 파시즘이다. 혁명과 쿠데타 모두 불가능해진 시대의 ‘법대로’ 파시즘이라고나 할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파시즘의 필수요소인 국가주의의 발흥이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될 테다.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정책기조를 정반대로 바꿔야 한다. 일반 정리해고의 합법화는 내수를 옥죄어 위기를 부추길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용유지 및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 인상과 생산성 향상을 교환하는 내수 확대형 사회적 대타협이다. 가난한 이들의 부채 탕감과 복지 확대를 과감하게 실행해야 할 때, 지방자치체의 올바른 청년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들이 파시스트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식당마다 하루종일 켜져 있는 종편 프로그램은 괴벨스의 언론 조작을 이미 넘어섰다. 야당의 지리멸렬 또한 파시즘의 조건 중 하나니 이를 어찌하랴.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글은 한겨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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