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중국 탓이 아니다

 

박근혜의 ‘남 탓’이 경제 위기 방아쇠

 

남 탓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남 탓이 나날이 확대되고, 또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누리과정은) 2012년 도입 당시부터 관련 법령과 여야 합의에 따라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으로 지원해 오고 있는 지방 교육청의 법적 의무 사항”이라며 “무조건 정부 탓을 하는 시·도교육감들의 행동은 매우 무책임하다”고 교육감들을 비난했습니다.

올해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으로 지난해보다 1조8000억 원 증가한 41조 원이 시·도교육청에 지원됐는데 “서울시와 경기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단 1원도 편성하지 않고 있다. 받을 돈은 다 받고 써야 할 돈은 쓰지 않고 있는 셈”이라고 비난했죠.

하지만 정부가 누리과정에 추가로 지원한 돈은 3000억 원(지난해 5064억 원)으로, 누리과정 예산 4조 원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대통령을 3년 했으면서도 예산을 함부로 전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 남 탓을 하고 있는 걸까요?

박 대통령은 해고 지침 등에 대한 노동계 반발에 대해서도 “불법 집회와 선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규모 해고에 대항하는 노동계의 투쟁을 엄단하겠다는 거죠.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우리 아들딸들 장래를 외면하고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정치권의 일부 기득권 세력과 노동계의 일부 기득권 세력의 개혁 저항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국민까지 끌어들였습니다. 아이들의 미래까지 망치는 세력이라는 거죠.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대규모 해고를 동반하는 구조 조정을 하면 우리 경제는 말 그대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이런 엉터리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세력에게 기득권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개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에선 노동자들이 기득권 세력이고 대기업과 대통령이 피해자인 모양입니다.

대통령의 남 탓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 중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슬그머니 사드(THAAD) 미사일 배치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지난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 또는 미사일 위협을 감안해 우리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죠.

그 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 측 배치 요청도, 한미 간 협의도, 우리의 결정도 없다’는 전략적 모호성(3NO)을 견지했는데 대통령이 중국 압박용으로 이 원칙을 깨뜨린 겁니다. 그 대통령에, 그 장관입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25일 방송 인터뷰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군사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북한을 뺀 5자 회담을 하자는 제안에 중국 정부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또 한 번 천명했습니다. 대통령은 중국도 ‘반개혁 세력’으로 몰고 싶을 겁니다. 이를 빌미 삼아 사드 배치를 선언하거나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가입을 서두를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의 황당한 남 탓이 우리를 경제적, 외교 안보적으로도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세계 금융 시장의 혼란이 중국 탓인가?

박 대통령만 남 탓에 열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올해 들어 세계의 주식 시장이 폭락을 거듭하자 국내외 언론은 암울한 경제 전망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을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이 세계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방아쇠가 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 탓을 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국이 어떤 정책을 쓰면 세계 경제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그들 말대로 중국의 자본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면 세계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격심한 혼란에 빠질 게 뻔하니까요.

이런 분위기에 대해 두 명의 학자가 칼럼을 썼습니다. 한 사람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장하준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일 대학교의 스티븐 로치 교수입니다. 각각의 제목은 “최근의 글로벌 경제 공포를 중국 탓으로 돌리지 말라(Don’t blame China for these global economic jitters)”(<가디언> 2016년 1월 21일)와 “중국에 대한 엉터리 주의보(False Alarm on China)”(<신디케이트> 2016년 1월 26일)입니다. (☞관련 기사 : Don’t blame China for these global economic jitters, False Alarm on China)

장하준 교수는 최근 경제학자들과 언론이 유포하고 있는 지배적인 경제 이야기(dominant economic narrative)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 7년 동안 재정 긴축과 친기업 정책, 노동 시장 개혁, 기업 규제 완화를 통해 2008년의 금융 위기를 훌륭하게 벗어났다(박 대통령이 목을 매달고 있는 ‘경제 혁신’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경제를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생긴 위안화의 평가 절하와 유가 하락이 ‘새로운 위협의 위험한 칵테일(dangerous cocktail of new threats)'(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장하준 교수는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 회복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지적합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20개 나라 가운데 11개 나라의 실질 국민 소득은 위기 이전 소득을 회복하지 못했고, 오로지 독일, 캐나다, 미국, 스웨덴만 이전 소득을 뛰어 넘었는데 그마저 독일은 매년 0.8%, 미국은 0.4% 성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거둔 1% 성장에도 못 미칩니다.

더구나 이 회복마저 미국의 주식 시장 거품, 영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 등 자산 시장 거품에 기댄 것이고, 따라서 현재의 경제 혼란의 원인은 부자 나라들의 경제 문제에 있다는 겁니다. 장 교수는 이들 나라가 파산한 경제 모델을 되살리려고 지난 7년을 허비했다고 진단합니다. 덜 복잡하고 더 인내심 있는 금융 부문, 재정과 기술 유인에 의한 실물 경제의 투자 그리고 부채 없이 총수요 증가를 유도하는 불평등 축소야말로 지금 필요한 것들입니다.

한편 로치 교수는 중국의 현재 혼란은 중국이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2015년 중국의 서비스 부문은 8.3% 증가해서 제조업과 건설 부문의 성장을 앞질렀습니다. 기실 2009년 이후 세계 경제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은 것은 중국의 확대 금융/재정 덕이라고 해야 옳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식 거품이 생겼고, 외환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에 따라 외국 자본의 유출이 벌어졌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외환 보유고나 중국 고위층의 정책 의지에 비춰 볼 때 이런 문제는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로치 교수의 결론입니다.

저도 이 두 교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도 지난 7년 동안 엉터리 모델을 굳게 믿고 온갖 정책을 다 썼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살아나기는커녕 장기 침체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은 장 교수의 제안대로, 불평등의 축소를 통한 가계 부채 문제의 해결, 생태 투자와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한 인프라 투자, 자금 중개라는 원래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는 금융 개혁입니다. 엉터리 모델을 실천하는 게 개혁이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기득권 세력이라니, 날씨만큼이나 삭막한 시절입니다.

 

원글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