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몬드라곤’이 헬조선에 보내는 메시지

‘몬드라곤’이 헬조선에 보내는 메시지

[서평]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바이블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몬드라곤’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 약 260개 회사가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는 거대한 기업 연합체다. 얼핏 봐서는 ‘재벌’과 비슷해 보이지만 재벌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인 반면, 몬드라곤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몬드라곤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소유하고 경영 전반을 관리한다.

2010년 한 해 매출액은 22조원, 자산 규모는 53조원, 8만4천여명의 노동자 중 출자금을 낸 조합원은 3만 5천여명이다. 몬드라곤은 해외에 80여개 가량의 생산공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며 제조업 매출의 60%는 해외 수출을 통해 달성하고 있다.

몬드라곤 내 ‘소비자협동조합’인 ‘에로스키’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210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금융부문의 ‘노동인민금고’는 스페인 전역에 420여 개 지점망을 갖춘 5위권에 속하는 대형은행이다. 이외에도 몬드라곤은 대학교와 기술연구소도 소유하고 있다.

몬드라곤을 이끈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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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표지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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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협동조합을 선도하는 협동조합인 몬드라곤도 시작은 미약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와 다섯 제자가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인 ‘울고’를 만든 것이 오늘날 몬드라곤의 시작이다. 1959년 ‘노동인민금고’, 1969년 소비자협동조합 ‘에로스키’, 1973년 기술연구소 ‘이켈란’ 등 20여 년 동안 몬드라곤은 제조업, 금융, 유통, 지식의 4대 분야에서 핵심 기업들을 설립했다.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이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이 설계자이자 사상적 지주로 불리는 호세 마리아 신부다. 그는 오늘날 몬드라곤을 움직이는 ‘몬드라곤 10원칙’의 사상적 토대를 만들었다. 1976년 그의 운명 이후에도 2세대 몬드라곤은 호세 마리아 신부의 정신을 계승하여 몬드라곤을 확대 발전시켜 왔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펴낸 책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은 협동조합운동을 이끄는 과정에서 신부가 남긴 548편의 말과 글을 엮은 것이다. 협동조합운동 과정의 생각과 고뇌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책은 협동조합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 영감과 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운동을 ‘유기체적인 체험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는 “협동조합주의가 목표로 삼는 질서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형태를 향해 꾸준히 진화해 가는 질서다. 그것은 운동 속의 균형”이라며 “협동조합운동은 행동과 체험에서 태어난 것이지 이론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형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면서 우리가 알아가고 욕망해 가야 할 것”(122쪽)이라고 했다.

‘인간애’는 그의 사상적 바탕이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의 이상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며 “사람이 먼저, 협동조합은 나중”(35쪽)이라고 했다. 그가 보기에 협동조합주의란 도덕적 가치에 대한 복종이자 모든 과정과 경제 활동에서 도구주의적인 모든 여과 요소에 대해 인간을 우위에 놓은 것이다. 그는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인적 활동과 사회경제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인간 가치의 우월함이라는 통찰과 규제를 받아들이게 된다”(258쪽)고 했다.

인간의 정직성을 제도화하는 것, 나아가 인간의 위대성을 제도화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상이다. (31쪽)

협동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성하게 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에 인간을 진정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협동조합주의자들은 노동의 세계에서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과 단결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함께 모여 일해야 한다. (212쪽)

몬드라곤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붐이 일었지만 곧바로 위기에 봉착했다. ‘5명 이상만 모이면 가능하다’며 장밋빛 ‘낙관론’이 득세하더니 어느새 ‘비관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유례없이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유례없이 빠른 위기를 맞이한 한국 협동조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경제적 목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함께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특성에 맞는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몬드라곤이 한국의 협동조합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단순히 ‘잘 나가는’ 조직을 벤치마킹 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늘날의 몬드라곤을 가능케 한 원천인 협동조합운동의 사상과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몬드라곤의 10원칙>
1. 자유로운 가입 (Open Admission)
2. 민주적 조직 (Democratic Organization)
3. 노동자 주권 (The Sovereignty of Labour)
4. 자본의 도구적, 종속적 성격 (Insturmental and Subordinate Nature of Capital)
5. 참여형 경영 (Participatory Management)
6. 급여 연대 (Payment Solidarity)
7. 상호 협력 (Inter-cooperation)
8. 사회변혁 (Social Transformation)
9. 보편성 (Universality)
10. 교육 (Education)

협동조합과 일반 기업의 근본적인 차이인 ‘조합원 자치’를 달성할 수 있느냐에 한국 협동조합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가 강조했듯이 협동조합원은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경영자다.

그는 “협동조합기업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그것은 한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개인들이 연합체”라며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연대이고, 바로 이 연대 의식이 우리가 신뢰해야 할 추진력”(222쪽)이라고 했다. 또한 “경영자들과 노동자들이 현재의 사고방식과 경영방식을 철저하게 수정하지 않고서는 광범위한 협력기반을 구축하는데 기여할 적절한 경영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222쪽)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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