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지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태인(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는 협동조합입니다. 협동조합은 기본법에도 나와 있듯이, 사회적 목표와 경제적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합니다. 특히 조합원 여러분의 이익도 보장해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연구소가 생산하는 책이나 보고서, 그리고 이런 칼럼은, 경제학에서 ‘공공재’로 분류하는 재화입니다. 모두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출자금과 조합비를 낸 조합원 여러분만 혜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어쩌면 손해라고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협에서 우리 아이들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를 사는 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기실 조합원 여러분이 내는 돈은 이 사회 모든 이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연구소에 돈을 내는 건 ‘이기적 인간’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죠. 돈 안 내고 연구소에서 나오는 글을 보면 그만이니까요. 그래도 우리 연구소는 우리 능력이 닿는 한 모든 이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 돈을 대고 있는 거지요. 앞으로 홍기빈, 김연아연구원과 더불어 일주일에 한 편씩의 짧은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 글이 첫 번째입니다.)

문제는 경제
사진 출처 = 더불어민주당 제공

총선을 앞두고 여러 공약이 벚꽃 흩날리듯 어지러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경제야”라고 제1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일갈하자, 거대 여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이 “한국적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를 들고 나왔습니다. 양적완화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우리의 한국은행에 해당합니다)가 줄곧 쓰던 비전통적 금융정책이죠.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방식(보통 정부의 단기채권을 구입해서 돈을 풀거나 사들여서 돈을 죄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공개시장조작’이라고 합니다)을 쓰는데,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지면 이 방법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겠죠. 마이너스로 금리를 떨어뜨릴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고육책으로 등장한 것이 정부의 장기채권이나 아예 민간의 (부실)채권(흔히 ABS라고 불리는 자산담보부채권)을 사들여서 돈을 푼 것을 말합니다. 양적완화는 일차적으로 주택과 증권 가격이 폭락을 해서 경제위기를 맞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입니다. 강봉균위원장과 새누리당은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 그리고 주택금융채권(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기초로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자는 겁니다. 이들의 속내는 이렇습니다. 앞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니 한은에서 그 자금을 대자는 것이고, 주택가격 급락에 따라 가계부채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주택금융채권(MBS)를 발행해서 가계의 대출을 장기 대출로 전환해 주자는 겁니다.

다소 느닷없는 주장에 청와대에서 근무했거나(김종인위원장), 경제부총리를 역임한(강봉균위원장) 70넘은 노인들 사이에서 가시돋힌 말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연초에 재정균형을 역설하던 기획재정부는 당황했습니다.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반대하다가 그예 재정확대 쪽으로 말을 바꿨죠. 정치적으로 떠들썩해 지니까 언론과 경제학자들이 나서서 ‘한국적 양적완화’에 대한 얘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걸로 보입니다. 예컨대 현재 한은법은 한은이 매입할 수 있는 채권을 제한하고 있는 데 그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불법이라든가, 아직 이자율을 내릴 여력이 있으니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그 동안 제 글을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칙적으로 이 정책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폭발하면서 경제가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면 보통 사람들이 가장 고통을 겪을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정부가 재정을 늘려서 경기를 자극해야 한다는 주장엔 적극 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말 방향이 옳다면 한은법을 한시적으로 고칠 수도 있고, 금리를 낮추는 것과 ‘한국적 양적완화’정책을 동시에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 정책의 효과입니다. 강위원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이 정책은 아무런 부작용도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째, 기대했던 경기부양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현재의 심각한 부채를 줄이는 데도 기여하지 못했다, 셋째, 풀린 돈이 증시와 부동산으로 몰려가서 다시 거품이 형성되었다, 넷째 사실상 각국 간의 자국 통화 가치 절하경쟁(수출에 도움이 되겠죠), 즉 ‘이웃 가난하게 만들기 정책’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해서 미국의 연준도 양적완화 정책을 거둬들이려고 하고, 심지어 IMF도 양적완화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부실기업에 들어가는 돈을 한은이 풀어서 지원한다는 발상은 위험합니다. ‘일반 해고’를 가능하게 하느라 총력을 기울였는데, 여기에 돈까지 풀어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얘기니까요. 그렇게 되면 이른바 ‘좀비기업’의 연명과 대량해고의 문제가 발생할 테고 단기적으로 경제가 더욱 나빠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또 결국 한은의 돈이 투입된 부실기업은 재벌이 인수하게 되겠죠.

가계부채의 문제도 금융채권을 사들여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최경환의 기획재정부가 “빚내서 집사고, 빚내서 전세값 올려주라”는 바람에 잔뜩 늘어난 가계부채가 폭발할까 두려워 미봉책을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서 빚을 줄이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그러려면 가계소득의 주 원천인 임금이 올라가는 수 밖에 없겠죠. 또 집값 폭락에 따른 경제위기를 막는다면 부채의 매입, 주식전환, 부채 탕감 세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자세한 내용은 다음 번에 쓰겠습니다).

결국 정부가 당장 쓸 수 있는 정책은 재정지출을 늘리는 겁니다. 문제는 “돈을 어디서 거둬서,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입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증세가 정답입니다. “증세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 이 길을 막고 있고, 동시에 여야의 거대 정당도 표 때문에 증세를 입에 올리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두 번 째 문제에 대해서는 생태인프라투자와 건강과 교육에 대한 장기투자가 올바른 길입니다. 강위원장이 거론하고 있는 투자세액공제, 연구개발 지출 세액공제, 고용장려금 조세 감면 등은 모두 재벌 지원입니다. 지금 재벌들이 돈이 모자라서 투자나 연구개발을 하지 않고 고용을 줄이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런 데 돈을 쓰는 건 그저 재벌지원에 다름 없습니다.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임금이 올라야 합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나 최고임금의 신설 등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이런 ‘소득주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이 강화되고 중소기업의 단체협상이 가능해져야 합니다. 즉 노동자나 하청기업,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겁니다(이를 ‘세력화’, empowerment라고 말합니다). 뉴딜을 비롯한 전후의 복지국가도 이런 정책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정당이 이런 공약을 내 놓았을까요? 잠시만 훑어 보면 어디에 나의 한 표를 던져야 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다음 번에는 ‘구조개혁’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저런 단기정책이 다 별 효과를 보지 못하니까 정부와 국제기구, 경제학자들이 툭하면 들고 나오는 얘기가 바로 구조개혁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애매합니다. 과거의 구조개혁(또는 구조조정)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한국에서 구조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또 구체적인 가계부채 대책은 어때야 하는지도 논의해 보겠습니다. 투표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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