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대통령은 또 누구를 탓하고 있을까?

대통령은 또 누구를 탓하고 있을까?

잘하면 이번 선거 결과가 한국 경제의 회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기 부추기기·규제 완화밖에 모르고 해고의 자유를 보장해야 경제가 산다는 대통령의 아집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5874_50959_5932상투적인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아마도 선거 얘기를 써야 하는 정치 쪽 필자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으리라. 그분들이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하겠지만 가장 확실한 사실 하나는 이번 선거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박 대통령은 말마다 ‘국회 탓’이요, ‘야당 탓’이었다. 경제에 대한 진단도 그때그때 달랐다. 국회 탓에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했다가, 외국에 나가거나 자신의 취임 3주년 때는 정부의 올바른 정책 덕에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총선 하루 전인 4월12일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 한다”라며 노골적으로 새누리당 지지의 뜻을 표명했다. 국민은 수도권에서 벚꽃잎처럼 붉은색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림으로 답했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수출은 1년 넘게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두 자릿수로 줄어들던 수출이 ‘신차 효과’로 3월에는 8% 감소에 그쳤다는 게 자랑일 정도다. 한국 수출의 절반가량을 소화하던 아시아 시장이 단기간에 되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각 경제주체 역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전세금 올려주라’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경제정책은 가계부채를 한껏 부풀렸다. 지난해 말에 1200조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증가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를 늘릴 간 큰 사람은 없다. 기업 부채 역시 상당히 심각하다. 한국 기업의 총부채(은행 대출+비은행 대출+회사채+기타 채무)는 2015년 1분기 말에 2347조원을 기록했다. GDP 대비 150%에 이르는 기업 부채를 지닌 나라는 신흥국 중에는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구조조정’ 대상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수출과 소비가 모두 최악이고 기업의 재정 상황마저 좋지 않다면 설비투자가 늘어날 리 없다. 작년에는 5%대의 기업 투자가 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 올해에는 마이너스가 아니면 다행일 것이다. 이제 최후의 소비자·투자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가 남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정권 8년 만에 국가 채무도 걱정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2009년 300조원을 돌파한 국가 채무는 지난해 590조5000억원으로 부풀어 올랐다. 올해에는 정부 예측으로도 GDP의 40%를 돌파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한국 경제를 기사회생시킬 수도 있다. 경제정책이라곤 투기 부추기기와 규제 완화밖에 모르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해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야, 즉 해고의 자유를 보장해야 경제가 산다는 대통령의 아집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가 주목해야 할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새로운 정책 기조로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웠다. 두 당을 합쳐야 과반이 안 되지만 국민의당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최경환 전 부총리도 취임할 때는 임금이 올라야 한다고 공언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치가 시장의 1차 분배에 직접 개입할 방법은 별로 없다. 하여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은 주체의 세력화와 사회적 합의다.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이나 하청기업, 영세 자영업자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노동조합에게는 산업별 또는 지역별 단체교섭권, 하청기업에게는 하청단가의 단체협상권, 자영업자들에게는 단결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뉴딜의 핵심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확대한 와그너법이었다. 스웨덴의 노동조합총연맹(LO)과 사회민주당은 소득주도성장론의 1960년대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득정책(또는 임금정책)을 성공시켰다. 연대임금이라는 전무후무한 정책(렌-마이드너 플랜)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와 비교하면 지금 한국은 훨씬 유리하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했기에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자제했지만 지금은 임금(노동분배율)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다만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폭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상승보다 훨씬 낮아야 할 것이다. 임금과 고용, 그리고 생산성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는 빈사 상태에 몰린 한국의 대기업이 살아날 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은 시장 분배에 정치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마침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시도 중인 최고임금제 도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새롭게 구성된 20대 국회가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이보다 더 궁금한 질문으로 글을 맺는다. “지금 대통령은 또 누구를 탓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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