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1920년대 기시감

[세상읽기]1920년대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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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브렉시트’ 사태 가운데에서 내게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풍경이 있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 있는 주류 매체들 다수가 유럽연합 탈퇴에 찬성표를 던진 세력들에게 보냈던 거의 매도에 가까운 비난과 공격이었다. 신문 기사의 보도 논조도 그러했지만, 특히 게재된 칼럼과 기고문들은 압도적으로 유럽 잔류의 입장을 강하게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였고, 심지어 ‘연금에 배부른 노인들이 영국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았다’는 식의 선정적인 논조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정당 활동이든 사회운동이든 직접 마이크 앰프 등을 들고 길거리로 나가 선전과 조직 활동을 벌여본 적이 있는 이라면, 여론의 10%를 조직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50%가 넘는 여론을 몇몇 기회주의적이고 사악하고 무책임한 정치가들의 선동에 각종 사회적 불만과 비합리적인 선정성에 휘둘린 대중들의 무지가 결합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결과가 설령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비이성적이고 망측하게 보인다고 해도, 당 기관지도 아닌 이 무게 있는 정론지가 이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이 매체들이 스스로의 당파적 입장을 선명하게 보이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대표 선거에서 제러미 코빈 의원이 돌풍을 일으켰을 때 가디언은 노골적인 냉소와 의구심의 태도를 보였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시작 무렵 무명이었던 버니 샌더스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을 때 미국의 거의 모든 매체들이 보였던 태도도 비슷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는 점잖은 주류 매체들에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지만, 그 와중에서도 결국 공화당 후보 자리를 따냈고 지금 누구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비약이라고 해도 좋다. 1920년대가 떠오른다. 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각국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주류의 정치가들, 지식인들, 언론인들 사이에는 굳건하게 자리 잡은 확신이 있었다. 경제적 번영의 길은 자유무역이며, 자유무역은 금본위제를 통해서 가능하며, 금본위제를 위해서는 긴축정책과 물가 및 임금 하락이 필수적이라는 것이었다.

또 평화의 회복은 국제연맹과 주요한 군축회담을 모든 국가가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각국에는 보호무역과 관리통화체제와 워싱턴 회담의 무시와 재무장 및 현상 타파를 외치는 세력이 도처에서 출현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안목으로 돌아보자면, 당시의 정치·경제 현실과 사회적·문화적 흐름으로 볼 때 다 생겨날 만한 근거가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자유무역과 금본위제와 국제연맹을 종교적 신앙을 넘어서 거의 자명한 과학적 진리로 여겼던 당시의 주류 담론과 매체들은 이러한 흐름들을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난동꾼들의 선동으로 매도하는 식이었다. 1930년대의 파국과 급격한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 변동은 바로 이러한 1920년대의 빠르게 변화하던 현실과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기존의 ‘상식’에 붙들려 있었던 주류 담론의 괴리 속에서 배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공황이 터지고 금본위제와 국제연맹이 모두 무력화된 1930년대 초, 이러한 신앙을 신봉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930년대 초 급격한 현실의 변화가 바로 어제까지 과학적 진리로 여겨지던 것들을 해묵은 낡은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현실에 천착하는 이들이라면 1920년대에도 그런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떤 미래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젊은 케인스는 이미 베르사유 조약과 금본위제 복귀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알고 있었고, 노년의 토스타인 베블런은 대공황이 머지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폭포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의 보트에 앉아 있는 게 아닐까. 낭떠러지에 와 빨라지는 물살을 우리는 여전히 옛날 생각만 하면서 큰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최고의 현명함을 뽐내는 세계 굴지의 매체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1920년대의 무성영화를 다시 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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