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_희망의 경제학] 브렉시트, 그리고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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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그리고 사드

 

정태인/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폭염 속에서 등골이 서늘할 일들이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린 브렉시트, 그리고 도대체 누가, 어디서 결정했는지도 아리송한 사드의 한국배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유럽과 극동아시아에서 벌어진 두 사건은 별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변화를 보여 주는 빙산의 두 봉우리입니다.

브렉시트는 영국(Britain)이 유럽연합(EU)을 탈퇴(exit)하는 걸 줄여서 하는 말입니다. 사드는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직역하면 “종말 고고도 지역방어”일 텐데 흔히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라고 번역합니다.

 

브렉시트-세계의 중심지에서도 세계화에 반기를 들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나가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요. 사실 우리나라에 직접 미칠 영향은 별로 없습니다. 영국의 교역 비중은 우리 전체 무역의 2퍼센트 정도니까요. 더구나 탈퇴 협상에 2년쯤 걸릴테니 그동안은 변화가 없겠죠. 그래도 우리 주가지수가 곧바로 100포인트나 빠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뭔가 불안하면 사람들은 행동을 중지하기 마련이고 금융시장에선 일단 현금을 쥐고 있으려 하니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애초부터 영국은 유럽 대륙의 경제 통합에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대륙에서 “라인강의 기적”(독일), “영광의 30년”(프랑스)이 일어나면서 영국과 유럽연합 간의 경제적 격차(1950년대에는 영국의 1인당 GDP가 30퍼센트 가냥 높았습니다.)는 점점 줄어들고 급기야 역전되게 됩니다.

1967년 영국이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에게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학생운동으로 드골이 사임하고, 영연방이 쇠락하고 난 후인 1973년에 비로소 영국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게 되죠.

하지만 영국은 유럽 통합의 정점인 유로존(유로를 단일 통화로 쓰는 지역)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다 아다시피 2010년부터 유로존의 남쪽 나라들(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경제 위기를 겪습니다. 이제 영국의 경제성장율이 유로존 국가들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더구나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들면서 유럽 각국은 이민 문제로 몸살을 앓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문제투성이 유럽 대륙으로부터 다시 떨어져 나오자는 얘기가 나왔죠. 이번 브렉시트를 보면 영국 중북부의 전통적 산업지대, 육체노동자, 노인층이 브렉시트에 찬성했습니다. 대체로 세계화의 패배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브렉시트 찬성파의 선동(연합에 내는 분담금을 복지로 돌릴 수 있다거나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다.)은 거짓투성이였습니다만 어쨌든 투표자의 절반 이상이 유럽통합, 즉 세계화에 반기를 든 겁니다. 세계 5위, 유럽 2위의 대국, 제1차 세계화를 주도했던 대영제국의 후예들이 세계화에 반대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사드-본격 대결의 신호탄

사람들은 지금을 G2(미국과 중국)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1945년 직후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의 GDP는 이제 5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중국이 추월의 기미를 보이자, 미국은 “아시아로의 재균형”, 즉 이제 유럽이나 중동보다는 아시아 쪽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실 브렉시트는 미국의 이런 전략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미국이 아시아 쪽으로 움직이려면 유럽은 스스로의 안보를 책임져야 합니다. 즉 유럽 스스로 군사비를 대폭 늘려야 하는데(러시아가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뜻을 대륙에 전달하던 영국이 유럽에서 떨어져 나온 겁니다.

바로 이때, 한미 양국은 북의 핵도발을 빌미로 사드 배치를 선언했습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건 미국의 아시아 미사일 방어체제(MD)를 한결 튼튼하게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 스스로 경제적으로는 FTA, 군사적으로는 MD로 중국을 포위해야 한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사드는 방어용 요격 미사일 체계지만 중국의 핵억지력(미국의 핵공격을 막는 힘)을 현저하게 약화시킵니다. 만일 사드가 완벽하다면 중국의 핵무기는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요. 따라서 중국은 공격용 핵무기든 미사일 체계를 더 강화할 수 밖에 없고, 미국은 한반도에 더 많은 방어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되겠죠. 바로 ‘안보 딜레마’ 상황에 들어가는 겁니다(단언컨대 현재의 사드는 북핵과는 거의 과계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경제 보복을 걱정하자 이장수 주중대사,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정치와 경제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꽤 많은 경제학자들이나 외교전문가도, 중국도 손해를 보는 경제 보복은 없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달라이라마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죠. 푹스와 클란이라는 학자들은 어떤 나라의 정치지도자(대통령급)가 달라이라마를 만났을 때, 그 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조사했습니다. 2003년에서 2008년까지 159개 나라에서 대중 수출은 평균 16.9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했다고(즉 티벳의 독립을 부추긴다고) 주장했고, 결국 각국 외무부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하고 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일부라고 확언하고 나서야 수출은 원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사드 배치와 달라이라마 접견, 어느 쪽이 더 큰일일까요? 더구나 사드는 한번 배치하면 중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을 영구히 침해합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도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군비 경쟁을 부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을 왜 지금 해야 하는 걸까요?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대통령 탓에 나라 전체가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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