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희망의 경제학_뭣이 중헌디?

북한 붕괴론이라는 허상

“나라 꼴이 엉망”입니다. 연전에 작은책에 “협동의 경제학”을 연재했던 때를 떠올려, 이번엔 “희망의 경제학”을 연재하겠다고 호언했지만 과연 이 땅에서 희망을 한 오라기라도 건질 수 있을지마저 의문입니다.

최순실이라는 옛 인연과 근접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갖가지 특권을 누리고, 세계적 기업이라는 재벌들이 미르니 K스포츠니 하는 정체불명의 재단에 수백억 원을 갖다 바치고, 이 모든 비리를 청와대 민정수석이 감추는데, 검찰은 그저 그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선 다 큰 아이들이 우리 눈 앞에서 목숨을 잃고, 산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의 묵인 아래 팔린 가습기가 갓난아이와 어르신을 죽이고, 국가 폭력 앞에 한 어르신이 쓰러져도 정부는 오히려 남 탓을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청년들의 정부 신뢰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도 당연합니다.

최근 발표된 OECD의 “한눈에 보는 2016년 사회”를 보면 한국은 청년 고용율 OECD 최하위(OECD 평균보다 10퍼센트 낮습니다), 합계출산율 세계 최저(1.21, OECD 평균은 1.7),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OECD 끝에서 2위(멕시코가 최하위), 노인빈곤율과 자살율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폴라니의 말대로 사회가 찢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불행하게도 없습니다. 4년 내내 “규제완화가 경제혁신”이라는 구호, 그리고 아직도 뭔지 모를 “창조경제”만 외치고 있습니다. 노동관련 입법이 안 되어서 경제가 망한다고 국회에 분통을 터뜨리는 게 대통령이 잠도 안 자고 하는 일입니다.

대통령의 분노는 북으로도 향했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통일대박”을 터뜨리자던 구호는 이제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견인하겠다”며 북한 주민의 탈북 선동으로 변했습니다. 나아가서 새누리당에선 독자 핵무장, 선제타격론이 나오고 국방장관은 김정은 제거용 특수부대 창설을 외칩니다. 가히 전쟁 분위기입니다.

과연 이런 주장들이 현재의 국제법(특히 핵 비확산조약)상 가능하다고 믿는 걸까요? UN이 현재의 대북제재에 준하는 경제제재를 우리한테 부과하면 대외의존율이 90퍼센트를 넘나드는 우리 경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을 합리화해 줄 테고, 이어서 중국도 핵무장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텐데 이런 핵 도미노가 과연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다줄까요?

지금도 미국과 한국 정부 일각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북한붕괴론”은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현실도 아니고, 더더구나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엘리트 집단 중 몇 명이 망명한다 해서 나라가 무너지는 건 아닙니다. 북한은 1990년대에 몇십만 명(연구자에 따라 30만에서 200만까지 아주 폭이 넓습니다)이 굶어 죽었어도 무너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동안 획기적으로 진행된 시장화로 경제성장율도 플러스로 돌아섰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불행하게도) 북한의 내부 단결을 촉진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인공위성 발사 생중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실망만 남겼지만, 당시엔 꼭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으셨나요?

어떤 외부적 충격 때문에 북한이 붕괴 위험에 처한다면 그보다 공포스러운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떤 핵 전문가도 동의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이 붕괴할 때라는 겁니다.

북한의 핵개발 목적은 생존, 좁혀 말하면 김정은 정권의 생존입니다. 북한이 선제 핵공격을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북한이 정교한 핵공격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동아시아와 미국 본토에 있는 핵무기를 모두 제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미국의 핵보복을 받을 테고 그건 정권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북한의 선제공격은 자신의 대전제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요즘 지식인들, 심지어 10년간 민주정부에 참여했던 분들도 “햇볕정책은 실패한 게 아닌가?” “그러므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햇볕정책의 목적이 북한 핵개발의 저지였다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북의 핵개발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김정은 정권이 무려 세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한 것은 북이 핵 보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섭니다. 즉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하더라도, 살아남은 핵무기로 미국의 군사기지나 심지어 본토(“워싱턴 불바다”)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한 겁니다. 그래서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SLBM이 주목 받은 거죠. 바닷속에 있는 잠수함을 정밀 타격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쟁이론에서 “상호확증파괴”라고 부르는 단계에 거의 도달한 겁니다.

게임이론이 알려 주는 복잡한 경우의 수는 생략하고(수학을 써야 합니다ㅠㅠ),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잃을 게 많아지면 재래전 · 제한전을 벌일 유인도 줄어들 겁니다.

안보 쪽에서는 미국이 서명에 참여하는 평화협정이 북한정권의 생존을 보장합니다. 물론 우리가 빠져서는 안 되고 중국이나 일본도 이 협정을 보증하면 금상첨화겠죠. 이 목표를 향한 첫 단계는 북한의 핵동결과 교환할 무엇인가를 우리가 제시하는 겁니다. 한미군사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가 첫 발걸음일지 모릅니다.

현재 북한의 GDP는 남한의 30분의 1에서 40분의 1정도로 추정됩니다. 1인당 GDP로는 15분의 1이나 20분의 1쯤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선 통일이 불가능합니다. 동독의 1인당 GDP는 서독의 3분의 1쯤이었는데도 통일 후 동독지역의 경제는 붕괴해 버렸습니다. 환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성이 현저히 낮은 지역은 상호 교역에서 매우 불리하니까요.

북한 정권이 자신의 생존에 자신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제 궤도에 올라야 합니다. 지금 북한 경제는 무질서한 중국식 개혁을 겪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중국처럼 개방 · 개혁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단순한 자원의 수탈에 그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적절한 제도와 정책을 갖춘다면 중국처럼 20년 이상 두 자릿수 성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국은 이런 상황이 오도록 북한을 도와야 합니다. 북한을 압박해서 굴복시키거나, 심지어 붕괴시키겠다는 발상은 환상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합니다. 북한 핵무기의 단계적 폐기, 경제의 비약적 발전이 일어나도록 하는 게 제2의 햇볕정책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를 모두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의 일관된 행동만이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뢰 프로세스”란 이런 거겠죠. 불행하게도 민주정부 10년 동안 쌓은 신뢰는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 모두 아시다시피 신뢰를 쌓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지만 무너질 때는 순식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의 매파와 연계해서 핵전쟁의 위험을 고조시키는 건, 정말 미친 짓이죠.

(혹시 김정은 정권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할까, 의문을 지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핵 문제와 관련한 공방에선 게임이론이 가리키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도 북한 정권을 “미친 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이 게임에서 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게임(치킨게임, 또는 벼랑 끝 전술)은 “미친 놈처럼 보이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니까요. 미국 대통령 닉슨이 한 말입니다.)

원글은 작은책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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