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촛불이 곧 대통령 인수위원회다

다음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도 없이 바로 정부를 출범시켜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꼭 실천해야 할 정책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매년 이맘때면 내년도 경제성장률 예측이 쏟아진다. 정부 3.0%, 한국은행 2.8%, 국회 예산정책처 2.7%, 한국개발연구원(KDI) 2.4%다. 민간의 전망은 더 비관적이어서 2.6%(금융연구원)에서 2.2%(LG경제연구원) 사이에 있다. 국제기관의 전망 역시 ‘잔뜩 흐림’이다. 국제통화기금(IMF)만 3.0%로 예측했을 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6%, 모건스탠리는 2.3%, 노무라 증권은 더 낮은 1.5%를 제시했다.

2015년 12월 정부의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1%였는데 지금까지 추세로 봐선 2.6% 언저리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즉 연례행사처럼 이번에도 0.5%포인트 정도 틀렸는데 그나마 성장도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 설비투자가 -3.7%인 가운데 10.1%의 성장률을 보인 건설투자가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겨 주택경기를 일으킨 결과,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이르렀다. 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의 세 배 가까이 치솟았다는 사실은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한다.

KDI의 내년 경제 전망을 뜯어보면 2.4%라는 수치마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민간소비 증가율 2.0%에도 상당한 낙관이 스며들어 있고, 설비투자가 2.9% 증가세로 돌아선다는 데도, 건설투자 증가율이 4.4% 정도를 유지한다는 것도 희망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제한해서 가격을 유지하려는 초유의 정책까지 들고 나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눈을 바깥으로 돌려봐도 암초가 숱하게 널려 있다. 올해 봄 전 세계를 뒤흔든 브렉시트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의 홍수에 빠져 있는 것도 유럽연합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2017년의 각종 선거에서 극우파 정당이 기승을 부린다면 그 또한 사회 갈등을 부추길 전망이다.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보호주의로 나설 것이라는 사실만 불을 보듯 명확해 보인다. 선거 공약처럼 중국 상품에 평균 35%의 관세를 매기는 것은 비현실적이겠지만 환율 조작 시비는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곧바로 중국을 상대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이미 반덤핑 규제 2위, 환율 조작 감시 대상국에 올라 있는 한국을 본보기로 삼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안에도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이제 헌법재판소에 달려 있다. 헌법재판소가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뚜렷한 경제사령탑 없이 구조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칫 경제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관료들은 한껏 몸을 사릴 것이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위험이다. 헌재가 신속하게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 두 달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고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도 없이 바로 정부를 출범시켜야 한다.

하여 또다시 희망은 촛불이다. 전국에 무려 232만 촛불이 피어올랐고 국회는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제 촛불은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한편, 차기 정권이 해야 할 최소한의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꼭 실천해야 할 정책은 어떤 것일까?

ⓒ시사IN 이명익

12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고 있다.

‘미완의 혁명’ 완성시킬 마지막 기회

12월9일 나는 페이스북에 촛불이 원하는 정책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딱 이틀 만에 100가지가 넘는 제안이 올라왔다. 먼저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 강화에 관한 요구가 많았다. 종합부동산세 부활 등 부동산 정책도 1, 2위를 다툴 만큼 많았다. 정치 시스템 개혁에 관한 요구도 컸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 연령 낮추기 등이 절실하다. 노동과 관련한 정책도 많이 제시되었다. 각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최저임금 인상 및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요구가 줄을 이었다. 재벌 개혁 관련 정책도 쏟아져 나왔고 검찰 및 사법 개혁도 빠질 리 없다. 물론 평화협정 체결 등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에 관한 요구도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오른 수백만 촛불은 한마디로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제안을 부문별로 모으고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광장 곳곳에서 토론을 해야 한다. 1960년과 1987년의 ‘미완의 혁명’을 드디어 완성시킬 마지막 기회가 열렸다. 촛불이 곧 인수위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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