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그포르스 ,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홍기빈 지음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404쪽 | 1만9000원 | 2011년 10월 20일 출간

 

 

“우리는 몇십 년, 몇백 년 후에나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낙원이란 인류 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다.”

― 비그포르스

 

“비그포르스가 평등에 대해, 여성의 평등에 대해, 민주주의적 과정에 대해,

또 노동자들과 화이트칼라들도 기업 내의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사회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비그포르스의 여러 아이디어들과 비전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 있고

우리는 그 위에서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비그포르스 추모식에서 스웨덴 전 총리 엘란데르

 

 

스웨덴 복지 국가의 설계자 비그포르스, 현실에 기초한 ‘잠정적 유토피아’의 비전을 제시하다

1930년대 대공황의 어둠이 세계를 덮쳤을 때, 세계 자본주의 변방의 빈국이었던 스웨덴은 복지 국가 모델을 실현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황금시대로 이어진 경제·사회적 기획과 정치연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그 중심에 독창적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1881~1977)가 있다. 비그포르스는 스웨덴의 재무부 장관이자 사회민주당 최고 이론가로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을 설계한 핵심 인물이다.

칼 폴라니의 사상을 비롯해 대안적 정치경제학의 전망을 제시해온 홍기빈(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신간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는 비그포르스의 이론과 실천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잠정적 유토피아’를 중심으로 그가 일생 동안 전개한 활동과 사상을 재구성하며,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이 어떻게 형성되어 무엇을 실천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지금 여기에 필요한 대안적 담론과 복지 국가의 정치경제학을 모색한다. 더불어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가 장악하고 있던 세계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곤경과 대안적 흐름, 1930년대 대공황 상태에서 기존 정치 이념과 노선이 빠져 있었던 마비 상태, 세계 금융위기를 비롯한 21세기 초입의 현실이라는 세계사적 맥락을 덧붙임으로써 비그포르스의 중요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비그포르스는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통해 스웨덴 사회와 민중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을 개선해나가고자 했다. 즉 구성원들이 지향해야 할 미래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제시하되, 혁명의 이상에 사로잡히거나 개량의 한계에 봉착하는 대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절실한 쟁점을 포착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의 이상은 현실에서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경제사상과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룬 복지 국가 모델로 구현되었다. 실현 가능한 꿈이지만 개혁 과정에서 본질적인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해줄 만큼 급진적인, ‘길잡이’로서의 잠정적 유토피아. 그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진행형의 작업가설이며, 따라서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 또한 그것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가야 할 또 하나의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경제의 독주로 인한 삶의 황폐화, 총체적 해법을 담은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정당 정치의 무능력, 그리고 금융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파국이라는 지구적 구조 변화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책은 비그포르스의 사유와 실천, 그리고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의 역사를 통해 2011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려낼 수 있고 또 그려내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

 

현실적 이상향 ‘잠정적 유토피아’와 스웨덴 정치 경제 모델

비그포르스는 1932년부터 17년 동안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스웨덴의 정치․경제 모델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이론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대공황기에 세계 최초로 케인스주의적인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해 1932년 총선거에서 사민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적극적인 수요창출 정책을 통해 공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묄레르 등과 더불어 복지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은퇴한 후에는 더욱 급진적인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꿈꾸며 1970년대에 시도될 ‘임노동자 기금’ 정책에 대한 영감을 제시하기도 했다.

비그포르스로 대표되는 스웨덴 사민당의 이론과 정책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성장을 이루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취해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는 산업사회의 모범적 사례를 일구었다. 오랫동안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한 사민당 내각은 때로 다른 계급 정당들과의 유연한 연대를 시도하기도 하면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및 선별적 경제 정책, 보편주의적 복지 정책을 통해 자유와 존엄의 이상이 실현되는 복지 국가의 모델을 실현해왔다. 스웨덴 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세로축에 정치와 경제를 놓고 가로축에 자유(혹은 성장 및 역동성)와 평등(혹은 분배 및 안정성)의 가치를 놓아 네 칸짜리 평가표를 만들었을 때 현재 지구상에서 스웨덴만큼 네 칸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자”로 불리는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 provisoriska utopier / provisional utopia’라는 개념이다. 그는 20세기 초엽의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파산’이라는 상황에 직면해,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변증법적 과학’에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던 ‘윤리적 당위’와 ‘과학적 진리’를 재정립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도그마를 극복하고자 했다. 윤리와 과학의 분리, 즉 사회과학은 가치판단을 떠나 객관적 과학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사람들의 집단적 정치 기획은 이들이 현실에서 어떤 세상을 열망하는가라는 윤리적 판단에 기초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는 철저히 현실에 발 딛고 선 개념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혁명의 당위성’을 반복하면서 실천 프로그램을 내놓는 일에 무력한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현실의 객관적 상황이나 사람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열망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언젠가 도래할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이를 혁신적인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그에 따르면 이념과 현실을 바탕으로 유효한 정책을 만들고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실현되었을 때의 사회의 모습, 즉 잠정적 유토피아의 비전을 제시해 대중의 마음속에 잠재된 열망을 정치운동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정당의 임무이이다.

비그포르스가 강조하듯 좌우파의 도그마와 달리 언제든 새롭게 수정될 수 있는 작업가설인 잠정적 유토피아는 정당이 야합과 타협을 거듭하는 기회주의 정당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개별 정책들을 해결하다 보면 결국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달리, 비그포르 스는 미래에 대한 총체적 사회상을 마련하지 않으면 혼란을 거듭하게 된다고 보았다. 대중의 열망과 구체적 쟁점에서 출발해 현실적 해법을 모색하되 사회 전체의 정치 경제 시스템을 개혁할 일관되고 총체적인 기획을 마련하는, 즉 가장 현실적인 이상향이 바로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이다. 그리고 그가 이것을 현실에서 이루어낸 경제사상의 핵심 개념이 ‘나라 살림의 계획’이다.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경제를 꿈꾸다 – ‘나라 살림의 계획’

전 세계 가 대공황으로 고통받던 1930년대에 비그포르스와 스웨덴 사민주의 내각은 체계적인 적극적 경기 순환 통제 정책을 통해 경제 회복을 넘어 호황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둔다. 당시 스웨덴의 성공담은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로, 비그포르스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최초로 구상하고 실현한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그포르스가 경제사상가이자 정치경제학자로서 이룬 정책적 혁신은 케인스주의 정책을 뛰어넘는 것으로, 그 햄심은 ‘나라 살림의 계획’에 있다.

비그포르스는 자유주의 경제사상에 담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맹신을 거부했으며,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사상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는 민간자본이 주도하는 ‘자유시장경제’가 실업과 낭비와 비효율을 낳는 결함투성이임을 지적하는 한편, 생산수단의 전면적 사회화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마르크스주의식 ‘중앙계획경제’ 역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보았다. 나라 전체의 경제가 사적 민간자본의 비생산적 행태를 최대한 견제·배제하면서 최대의 효율성을 달성하며 작동할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 공공 영역과 민간 경제의 다양한 경제조직들이 모두 국민의 행복이라는 나라 살림살이의 목표에 유기적으로 잘 결합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안배하는 경제 계획이 그가 주창한 ‘나라 살림의 계획’이다. 국민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적 토대 확보를 내걸고 생산성 향상과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비그포르스의 ‘나라 살림의 계획’은 1940년대 후반 이후 렌-메이드네르 모델로 계승되어 스웨덴 모델 특유의 선별적 경제 정책,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포괄적인 보편적 복지 정책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비그포르스의 정치경제학 개념은 그의 ‘잠정적 유토피아’의 개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그포르스가 추구했던 나라 살림의 계획의 굵직한 목표로 ‘산업의 합리적 조직을 통한 생산성 향상, 사회 복지의 강화, 작업장에서의 산업민주주의’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셋은 모두 함께 존재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강화해주는 관계이지만, 현실에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에서 시작해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비그포르스가 1919년에 작성한〈예테보리 강령〉은 사회 복지 정책을 중심에 두었고, 1920년대에 그는 산업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했으며, 1930년대에는 공황에 맞서는 안정화 정책에 집중해 경제회생을 도모하면서 보편적 복지 정책이 함께 진행되도록 노력했다. 1940년대에는 더 구체적이고 큰 규모에서 산업의 생산성, 사회 복지의 확충, 산업 민주주의의 확장을 함께 주장하는〈전후 강령〉을 내놓았으며, 이것이 자리를 잡아가자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복지 국가라는 ‘정거장’을 떠나 진행해야 할 다음 목표로서 다시 산업 민주주의와 ‘소유주 없는 사회적 기업’을 제기했다. 이렇게 나라 살림의 계획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정해진 청사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는 역동적인 모습을 띠며, 각각의 요구 또한 구체적 상황에 맞춘 모습으로 제기되고 또 끊임없이 수정된다. 자본주의의 현실은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며, 비그포르스가 제시한 나라 살림의 계획은 이렇게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구체적인 틀과 내용이 변해가게 되어 있는 잠정적 유토피아인 것이다.

 

한국 사회와 비그포르스 ― 우리에게 필요한 ‘복지 국가의 정치경제학’을 위하여

19세기 이래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주의적 정치 경제 제도가 이론적·사상적으로, 또 현실의 제도와 사회적 관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전환하던 1930년대에 스웨덴은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민주적인 정치 경제 모델의 하나를 창조하고 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될 지구적 구조 변화의 방향을 선도했다. 이러한 성과는 스웨덴 사민당과 비그포르스가 이루어낸 이론적 혁신과 그 이론에 기초한 실천 계획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구조 변화가 시작된 2011년의 시점에 1930년대 스웨덴의 변화 및 그것을 이끌었던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실천을 살펴보는 것은, 지구적 구조 및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비그포르스는 정치 운동과 경제 제도 및 정책 모두에 걸쳐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대안적 틀의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이다. 20여 년 전에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격하고 지금 다시 지구적 금융 자본주의의 위기를 목격하고 있는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맹신을 극복하고 사회를 실제로 개선해나갈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정치 경제 사상 및 이론과 실천을 창출하는 것은 여전히 중대한 과제이다. 이것이 21세기에 비그포르스와 그의 ‘잠정적 유토피아의 정치경제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비그포르스는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정치적, 사회 경제적 쟁점으로 떠오른 ‘복지’는 경제 정책이나 사회 정책의 문제이기 이전에 정치사상의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어떤 성격의 정치 공동체인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복지 국가라는 새로운 전망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곧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성격, 그리고 국가와 시민의 관계 또한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복지 국가라는 전망은 한국 경제의 작동 모델과 관련해서도 함의를 갖는다. 지속 가능하면서도 사회적 효율성 및 생산성과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는 복지 정책의 구조를 짜기 위해서는 노동·산업 정책에서 시작해 여러 다양한 사회 경제 제도의 틀을 함께 개혁해나가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복지 국가 스웨덴의 정치 경제 모델과 그것의 형성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의 정치경제학은 우리의 복지 논의를 확장․심화하고 현 시점에서 필요한 ‘복지 국가의 정치경제학’을 마련하는 데 유효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지은이 홍기빈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석사 학위를, 토론토 요크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여러 매체에서 지구정치경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폴라니, 베블런, 캅 등의 ‘제도주의 전통’에 근거하여 대안적인 정치경제학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정치경제 체제의 변화 과정을 포착하는 것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지은 책으로《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출간 예정),《자본주의》,《투자자 국가 직접 소송제 ― 한미 FTA의 지구정치경제학》,《소유는 춤춘다》,《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가 있으며, 폴라니의《거대한 전환》과 베블런의《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외》등 여러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분류 : 사회과학/ 지구정치경제학․정치사상․경제사상
ISBN : 978-89-7013-802-2 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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