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칼 폴라니 딸이 방한한 까닭?

 

[현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기지개 켜다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15년 4월 27일


 
칼 폴라니. 아직은 낯설어 하는 이들이 더 많은 이름이다. 그의 딸이 한국을 찾았고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라는 뉴스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가장 흔히 인용하는 저자라고 하면, 관심 끄는데 도움이 될까.

고민이 가시지 않은 채, 지난 24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센터를 찾았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가 있는 자리다. 이날 개소식을 앞두고, 칼 폴라니의 외동딸 캐리 폴라니 레빗 케나다 맥길대 명예교수가 한국 땅을 밟았다. 이보다 앞선 지난 17일에는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칼 폴라니와 21세기 경제”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행사다. 레빗 교수는 이 행사에서도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시장 원리가 기계처럼 구현되는 세상, 머릿속에만 있다”

최근 잇따른 행사에서 레빗 교수가 전한 메시지는 한결 같았다. 사회가 경제에 종속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신호를 시장 경제 논리로 해석하도록 훈련 받는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언론 보도를 통해, 이뤄지는 훈련이다. 예컨대 우리가 하는 일의 대가는 ‘몸값’으로 규정된다. 유명 스포츠 스타의 천문학적인 몸값에 의문을 품을 틈이 없다. 그가 하는 노동의 가치가 과연 청소부가 하는 일보다 수천 배 이상 가치를 지니는 걸까.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꼭 필요한 일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의 가치를 ‘몸값’으로 계산하면, ‘그런 일 할 시간에 다른 일 하는 게 낫다’라는 결론이 나올 때가 있다. 다들 이런 결론을 따른다면,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리 없다. 그나마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이런 결론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시장 경제 논리에 충실하면 할수록, 사회는 더 망가지는 걸까. 여기에 ‘생태’라는 변수까지 고려하면, 메시지는 더 명료해진다. 경제는 사회공동체, 그리고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사회 공동체의 살림살이가 우선이다. 그걸 챙기는 과정에서 경제 논리도 고민하게 되는 게 순리다. 거꾸로 되면 안 된다.

▲캐리 폴라니 레빗 케나다 맥길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성현석)

이런 메시지는 레빗 교수의 아버지인 칼 폴라니가 남긴 사상에서 비롯된다. 칼 폴라니는 1944년 출판한 <거대한 전환>에서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 시장 논리가 정말 경제학 교과서대로 관철되는 사회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게다. 예컨대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상품으로 거래되고, 가격이 매겨진다. 가격은 실시간으로 바뀌는데, 이는 자연과학의 법칙과도 같아서 사회 구성원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머릿속에선 가능하지만, 현실에선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세상이다.

요컨대 시장 논리가 기계처럼 구현되는 세상은, 단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

칼 폴라니가 우리 귀에 익숙한 다른 경제학자들과 구별되는 건 이 대목이다. 칼 폴라니는 인류학의 방법론을 동원해 ‘자기 조정 시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한다.

반면, 동시대를 살았던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물리학이나 공학을 흉내 내는 길을 택했다. ‘수학으로 무장한 신학’이라고 해야 할까. 논리 전개는 매끄럽다. 그러나 논리의 출발점은 여전히 믿음의 영역일 뿐이다. 이윤 동기로 인간의 행동을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나. 시장 논리가 온전히 사회를 지배하려면, 모든 게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경계는 어디인가. 이런 기초적인 질문에 대해 주류 경제학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의 전제에 대한 의문

‘칼 폴라니’라는 키워드를 놓고, 최근 잇따라 열린 행사에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들이 꽤 참가했다.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칼 폴라니 전도사’로 통하는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역시 학부에선 경제학을 전공했다. 홍 위원장은 지난 17일 포럼에서 대학 신입생 시절의 일화를 소개했다. 경제학 첫 수업에서 교수가 말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얼마 뒤에 교수가 말했다. “한계 효용은 체감한다. 빵을 배부르게 먹고 나면, 빵을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신입생 홍기빈이 말했다. “얼마 전에는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면서요. 그런데 왜 한계 효용이 줄어드는 거죠?” 교수에게 야단맞았단다.

‘칼 폴라니’ 관련 행사에 모인 전·현직 경제학도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경제학을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느낀 회의감과 의문. 지난 17일 포럼에 참가한 이정우 경북대학교 교수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그 역시 학부 시절에는 경제학 수업에 흥미를 못 느꼈다.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동기와 실제 경제학 수업 내용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경세제민(經世濟民)’하는 학문인 줄 알았는데, 강의실에선 전혀 엉뚱한 이야기만 들었다는 것.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역시 경제학 전공자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한미 FTA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주류 경제학 논리대로라면, 자유무역은 무조건 옳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수혜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왜 꼭 재벌이 이익을 보고, 농민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에 대해 경제학 교과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학, 이른바 주류 경제학이 정작 우리 사회 공동체의 살림살이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 경제학의 출발점이 되는 아이디어가 몹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가 오래 전부터 ‘칼 폴라니’에 주목해 왔다. 그리고 2008년에 불거진 세계 금융위기는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울러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선 협동조합이 속속 생겨났다. 칼 폴라니가 꿈꾼 협동의 경제에 가까운 모델이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경제, 농촌에 젊은 활기 불어넣는다

칼 폴라니 사상에 대한 폭넓은 관심은 이런 흐름의 결과물이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개소식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등이 지난 24일 개소식을 찾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칼 폴라니 사상을 젖줄로 삼은 협동하는 경제는,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핵심 화두가 됐다.

지난 17일 포럼에는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정치인이 참가했다. 외국 손님도 왔다. 지난 2002년 독립한 신생국가 동티모르의 일리디우 시메네스 다 코스타 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점령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인 게릴라 전사 출신이다. 투쟁이 끝난 뒤엔, 신생 독립국이 안정적으로 먹고 살 길을 찾는 숙제를 안게 됐다. 동티모르 역시 한국처럼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문제가 심각하다. 농촌 공동체 안에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한국 협동조합 운동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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