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사

[경향비즈] 문 정부, 자주외교로 FTA 재협상 '당당하게' 간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10 15:31
조회
316
 

문 정부, 자주외교로 FTA 재협상 '당당하게' 간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29일 미 백악관 만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진짜 ‘스트롱맨’인 게 맞는 모양이다. 지난 6월 30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모두발언에 나선 트럼프가 “우리는 지금 한국과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고 있다”고 발언한 이후 그 배경과 파장 등을 놓고 한국이 들썩이고 있다. 트럼프가 역시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당장 8월부터 당사자 간 협의에 착수한다. 트럼프의 발언을 그냥 불쑥 던진 말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원칙적 재협상은 기존 협정 폐기해야 


사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손봐야 한다고 말한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랬다. 2009년 1월 취임하자마자 그는 “한·미 FTA는 한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정”이라고 지적했고, 그 길로 양국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협정문을 손봤다. 미국은 눈덩이 같은 무역적자 문제의 원인을 늘 밖에서 찾았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 대선이 치러지기 전부터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미 FTA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해 왔다. 그리고 ‘올 것이 온’ 이상 이 문제를 놓고 내부에서 자중지란하는 것보다는 재협상 국면을 계기로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트럼프의 발언 후 한·미 FTA는 ‘재협상(negotiation)’에 무게가 쏠리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양국 협정문에 ‘재협상’이라는 단어는 없다. 재협상은 협정문이 발효되기 전에나 가능한 개념이지 이미 발효된 협정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실제 <한·미 FTA 협정문> 제24장 ‘최종규정’에 명시된 제24.2조를 보면 ‘양 당사국은 이 협정의 개정(amendment)에 서면으로 합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트럼프가 말한대로 한·미 FTA를 정말로 재협상하려면 기존에 있는 협정을 종료(폐기)하고 새로 체결하는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말하는 재협상의 의미가 협정문에 있는 ‘개정’의 개념을 뜻하는 건지, 아니면 기존 협정을 없애고 다시 협정 체결을 하자는 뜻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청와대는 트럼프의 발언이 개정의 의미에 가깝다고 해석하고 있다.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간 실무회담 시 경제분야 담당자로 참석했던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7월 1일 열린 백브리핑에서 “미국 측이 무역불균형 문제 등을 거론한 건 맞지만 재협상을 언급한 적은 없다. 분위기상 재협상까지는 안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올 4월 취임 100일 기념 외신 인터뷰에서도 한·미 FTA에 대해 “끔찍한 협정이며 종료하거나 재협상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전과’가 있다. 그럼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 중 트럼프의 돌출발언을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그렇진 않다는 게 실무자들의 이야기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만 해도 밤샘작업을 해가며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여한구 산업부 FTA정책관은 “한·미 FTA가 양국에 모두 유익했다는 내용을 입증할 근거자료를 많이 준비했고, 수행단 내부에서도 준비가 잘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제사절단으로 문 대통령을 따라간 대기업들도 최대 40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계획을 트럼프에게 안겼다.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총수들이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였던 데다, FTA 재협상 논란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며 “기존에 준비하던 것 외에도 대통령 방미에 맞춰 추가로 넣은 투자계획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재협상 요구는 ‘적반하장’ 


하지만 논리적인 자료와 40조원의 ‘선물 보따리’로도 트럼프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트럼프는 기어이 재협상 문제를 끄집어냈고, 전문가들은 “어차피 만족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 배경을 정치논리에서 찾는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한·미 FTA의 호혜성을 주장한다 해도 트럼프에겐 자신의 지지기반인 ‘러스트 벨트’의 자동차·철강산업을 만족시킬 희생양이 필요할 뿐이라 뭔가 내주고 그의 체면을 적당히 살려줘야 이 게임은 끝이 난다”며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논의의 출발점이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치논리를 배제하고서라도 한·미 FTA의 지난 5년간 통계를 보면 트럼프가 미국의 피해를 주장하며 재협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실 적반하장에 가깝다.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2016년 6월 작성한 ‘FTA의 경제적 영향 평가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는 283억 달러(32조6600억원)로, 양국 간 FTA가 없었을 경우 추산되는 무역적자인 440억 달러(50조7800억원)에 비해 157억 달러(18조여원)가량의 교역수지 개선효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돼 있다. 반대로 말하면 한·미 FTA로 인해 한국이 2015년에만 18조원가량을 손해봤다는 이야기가 된다.


USTIC는 한술 더떠 “한·미 FTA 체결은 미국 경제, 교역수지, 소비자후생, 투자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높은 수준의 규범이 도입됐다”고 보고서에 언급하기도 했다. 한·미 FTA를 ‘FTA계의 모범생’으로 꼽은 셈이다. 최승호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미 간의 무역수지 문제는 FTA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 기업의 경쟁력, 기타 외부환경 등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다”며 “이를 외면하고 FTA를 고쳐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하겠다는 정책은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무역 정신’에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입에 달고 사는 양국 간 자동차 수출입의 불균형 문제만 해도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 건 2016년 1월부터다. 이에 비해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2015년부터 이미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북미지역에 팔리는 국산 자동차 상당수는 이미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 중이라 관세 철폐로 인한 혜택을 봤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트럼프가 불만을 갖는 국내 미국산 자동차 판매 부진의 경우 무역장벽 문제보다는 품질이나 브랜드 가치 문제”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적반하장은 미국 내부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캐빈 브래디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은 7월 5일 한·미 FTA 재협상 문제를 놓고 “행정부는 의회의 절차를 준수하고 협의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데이브 레이처드 세입위 무역소위원장도 “내가 출생한 주에서는 한·미 FTA 이후 한국으로 감자 수출이 80% 늘었고, 체리에 대한 한국 내 수요도 200%나 늘었다”며 “한·미 FTA를 옹호한다”고 밝혔다. 


 

국내 진출한 미국 로펌들 짐싸게 할까 


트럼프가 그간 돌발행동을 일삼아오긴 했지만 미국 내 반발과 이미 FTA로 국내에 진출한 수많은 미국 기업들을 감안하면 그의 ‘스트롱맨’다운 화법과는 달리 실제 한·미 FTA를 다루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이미 한·미 FTA 수혜를 입어 국내에 진출한 미국 로펌만 20개가 넘는다”며 “협정이 폐기되면 이들 모두 짐을 싸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같은 점을 들어 정부가 한·미 FTA 문제로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도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 협정문을 개정하든 재협상하든 일정 부분 손을 봐야 하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를 추구하고 서민과 약자를 보듬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의지에 반해 한·미 FTA 협정문에는 이에 걸림돌이 되는 기업과 자본 등 기득권 세력의 자유와 이익을 보장하는 조항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 대통령이 공약한 ‘생계형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 문제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2011년부터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제도로 지정한 업종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제한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적합업종으로 등록된 품목은 74개다. 동반성장위 내부 규정상 이 제도는 최장 6년까지만 유지할 수 있다. 당장 올해부터 적합업종 품목 중 49개 품목이 순차적으로 해제되고, 2022년이 되면 74개 품목이 모두 해제된다. 


문 대통령은 적합업종 해제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 민간 자율합의 형식으로 이뤄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특별법을 만들어 법제화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최근 이를 위한 ‘생계형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 추진을 약속했고, 이미 국회에는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동 발의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도 제출돼있다.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이 특별법을 만들 경우 한·미 FTA 협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게 최대 문제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직접 적합업종을 지정할 경우 이는 ‘조치(measure)’에 해당돼 통상규범상 국가 대 국가 간 분쟁대상에 해당되는 행위가 된다”며 “특히 적합업종 지정으로 인해 이미 진출했던 외국계 기업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 ‘한·미 FTA 제11.6조 수용 및 보상’ 위반 가능성도 있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제소 및 패소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문위도 특별법안을 검토하면서 “통상마찰의 염려가 있으니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확대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폐지까지 고려하고 당당하게 간다” 


이밖에도 정부가 국내법을 개정할 때 한·미 FTA 위배 여부를 따져봐야 하는 법안만 수십 개다. 한·미 FTA를 체결할 당시 자국법을 거의 고치지 않은 미국에 비해 한국은 협정문에 맞게 국내법을 대폭 고쳐야 했던 탓이다.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한·미 FTA 협상 이후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를 중심으로 무려 63개의 법령이 무더기로 제·개정됐다.


우정사업본부만 해도 2011년 11월 우체국보험의 가입한도를 4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높이기로 하고 우체국 예금보험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 금융업계를 등에 업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국영보험의 가입한도를 높이면 민간보험시장을 위축시켜 한·미 FTA 조항에 위배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증액은 없던 일이 됐다.


정태인 소장은 “한·미 FTA 관련 통계를 보면 상품 무역상의 거래이익은 거의 없거나 무역수지만 본다면 오히려 우리가 손해라고 볼 수도 있다”며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이를 계기로 상품 무역부분(농산물 제외)과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부분 등의 ‘독소조항’을 교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장기적으로는 FTA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상전략으로 통화 협력, 에너지·환경·식량 협력 등 다양한 동아시아 협력 의제를 만들어 중국, 북한, 아세안, 일본 등에 제시해 포괄적인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다듬어 나갈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지만은 않겠다는 분위기는 정부 내에서도 감지된다. 문 대통령이 평소 자주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협상테이블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한·미 FTA 폐기까지 고려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대응할 방침”이라며 “미국이 폐기하자면 우리도 폐기하자고 하면 된다. 당당하게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2017.07.08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원문보기_경향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