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경제시평]사드의 정치경제학

[정태인의 경제시평]사드의 정치경제학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

 

[정태인의 경제시평]사드의 정치경제학

“모든 외교를 남북관계의 시각에서 보는 게 문제야.” 이제는 고인이 된 서동만 교수(당시 국가정보원 차장)가 참여정부 초기에 한 말이다. 수령제에 관한 권위있는 연구로 유명한 북한 전문가가 이런 말을 하다니, 당시에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참여정부 초기에 이 말이 적용될 만한 사건은 이라크 파병일 게다. 당시 미국이 얼마나 방치(abandonment, 예컨대 북한이 침공해도 미국의 이익 때문에 남한을 방치한다)의 위협을 했는지, 예컨대 미군 철수 위협까지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결국 참여정부는 동맹의 신뢰를 얻는 쪽을 택했다.

 

우리의 선택은 경제학에서처럼 어떤 목적함수를 통과하면 깨끗하게 하나의 해를 수치로 내놓지 않는다. 예컨대 밤새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는 단기의 쾌락(불안을 잊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을 얻을 수 있지만 부모가 보기엔 대학 입학이라는 중기의 어마어마한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일 수 있을 테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은 이 아이가 장기적으로 빌 게이츠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사드 배치는 중국과 미국의 패권다툼 또는 세력전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아무리 북핵 방어용이라고 해 봐야 미국에서 아시아 미사일방어(MD)망의 일환이라고 몇 번이나 공언했으니 중국의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당장은 기술적 측면에서 중국의 주장이 과장됐다 하더라도 한국의 사드 배치로 물꼬가 터져 다른 나라도 여러 형태로 MD망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망이 촘촘해지고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중국으로선 안보딜레마 상황에 빠진다.

말하자면 우리는 방치의 위협(아마도 미군철수) 때문에 불필요하게 미국의 전략에 연루(entrapment)된 것이다. 

중기적으로도 심각하다. 지금은 화장품과 자동차 등 소비재를 중심으로 수출 증가율이 대폭 감소하고 있는 정도지만, 앞으로는 한국의 중간재 및 자본재 수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은은 금년도 경제성장률에 0.2% 정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내년에는 주먹구구로 계산해 봐도 1%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어느덧 중국이 허브국가가 되어 버린 동아시아 생산체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그 체제에서 아예 왕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혹자는 중·일 간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분쟁을 들어 경제적 충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잘못 짚었다. 과연 영토분쟁과 동아시아 MD 모두 중국의 핵심이익에 속한다.

하지만 센카쿠 분쟁에서 두 나라는 몇 번 펀치를 주고받은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 상태로 돌아갔다. 센카쿠 열도가 휴화산이라면 사드는 활화산이다. 

서동만 교수 얘기대로 남북관계의 시각으로 세계를 본 결과가 사드 배치라면 과연 그건 합리적 행동이었을까? 북한이 매달 1000㎞씩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린다 해도 우리의 안보 상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경제학으로 말하면 한계적 변화가 0이므로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이유도 없다. 나아가서 남북의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한반도는 이미 상호확증파괴 상태이므로 핵탄두의 위력이 증가하는 것도 한계적으로 그리 큰 변화가 아니다(다만 벼랑 끝 전술이나 제한전에서 위력을 발휘할 뿐이다). 

장기, 중기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게 불을 보듯 뻔하고 북한의 도발이 한국의 안보 상황을 그다지 변화시키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두 정권에 걸쳐 허둥지둥 사드를 배치한 것일까?

살길은 어디에 있을까? 다행히 중국 역시 한국을 쉽게 내치지는 못할 것이다. 경제 때문이 아니라 안보 때문이다. 한국은 어찌 보면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에 약한 고리이다(혹자는 피벗 국가라고도 한다). 한국이 미국을 허브로 하는 동아시아 군사 동맹 네트워크에 목숨을 걸게 된다면 중국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반대의 상황에서는 미국도 마찬가지 처지가 된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는 것이 가장 쉽다. 미국만 한국에 확장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대 중국의 외교 논쟁에서 중국 정부가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주었던 얀쉐통 칭화대 교수는 한·중동맹을 언급하기도 했다(이른바 국제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중화시키기 위해 한·중 FTA를 서둘러 맺은 적도 있지 않은가? 아직도 운신의 여지는 많다. 완전히 어느 한쪽에 서면 절대로 안된다.

 
 

2017. 09. 18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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