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세상읽기]창의적 20%, 평범한 80%

 

[세상읽기]창의적 20%, 평범한 80%
 

[세상읽기]창의적 20%, 평범한 80%이미 오래되었지만,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귀가 따갑게 듣게 된 말이 바로 창의력의 중요성이다. 학교교육부터 기업 활동은 물론 국가와 공공 기관을 넘어 심지어 종교 기관에서조차도 이 창의력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칭송되고 있고, 그것을 구현하는 인재를 키우고 얻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을 중심으로 산업과 사회가 빠르게 재편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는 사활이 걸린 절박한 문제라는 것이다.

창의력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생기지만, 이러한 담론에는 더욱 큰 맹점이 존재한다. 거칠게 말해서, 최소한 80%의 사람들은 창의적일 수가 없다. 그리고 산업과 사회의 실체는 반짝거리며 빛나는 이런저런 창의력 넘치는 혁신이 아니라 그 80%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지루하고 지겹게 반복하는 노동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술의 변화에 맞도록 산업과 사회를 능동적으로 변형시켜나가는 데에 핵심이 되는 작업은 바로 그 80%의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사회 전체 차원에서 찾아내어 조직해주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배적인 담론틀은 마치 창의적인 인재들을 길러내어 그들로 하여금 고도의 부가가치를 창조하도록 하는 것이 미래로 가는 첩경이라는 생각에 휘둘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편향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한 것 같다. 

모두가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창의성이란 인습적인 사고를 벗어날 능력을 뜻하며, 이는 곧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물론 모든 인간은 개성이 있으며, 무수히 다른 방향으로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점에서 모두 다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산업과 경제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되는 ‘창의성’이란 좀 거칠게 말하자면 효율성이나 수익성을 제고시킬 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이라는 상당히 협소한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창의적인 사람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그것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내어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사람이란 언제나 소수이며, 압도적인 다수의 사람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조직되는 기존의 노동 분업과 생산 과정에 그저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현재 세계가 근본적인 기술 및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의 방향으로 큰 부가가치의 창출을 가져다줄 창의적 혁신만을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개별 영리 기업의 관점이 될 수는 있어도 국가와 사회 전체의 관점이 될 수는 없다. 

혁신과 혁신의 물결이 이어진 지난 20년간 전 세계 어디라 할 것 없이 벌어진 양극화 및 불평등의 심화가 그 결과이다. ‘대박’을 내는 1%와 그 주변의 10%는 갈수록 전체 소득의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반면, 나머지 80%의 몫은 대개 정체하거나 심지어 아래로 가면 더 줄어들기까지 하였다. ‘낙수효과’라는 것은 없었고, ‘물이 들어와 모든 배가 다 떠오르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 평범한 80%의 사람들이 가진 꿈, 주어진 일을 땀 흘려 성실하게 수행하여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고픈 너무나 소박한 꿈은 갈수록 멀어져간다. 

정부가 ‘혁신 경제’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창의적 혁신의 중요성을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그러한 혁신이 과연 그 평범한 80%에게 새로운 활동의 의미를 부여하고 조직하여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느냐이다. 일부 벤처 기업들과 스타트업의 성업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활동인 노동이 맡게 될 새로운 영역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이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와 경제 체제 전체를 새롭게 재구조화하는 보다 먼 시야의 큰 틀에서 장기적인 산업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각자도생할 수 있는 창의적 능력을 키우라고 좨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모든 성원이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일상의 노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거시적 규모에서 산업을 조직하는 것이 할 일이다. 악화일로에 있는 여러 사회 및 경제 지표들로 볼 때 시간은 많지 않다.

 

2017. 10. 13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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