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폴라니 총서 2] 인간의 살림살이

인간의 살림살이

[칼폴라니 총서 2] 인간의 살림살이

칼 폴라니 지음 | 이병천·나익주 옮김 | 후마니타스 | 640쪽 | 2만7000원 | 2017년 9월 25일 출간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
“그런 사회는 없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 갔다. 작은 정부가 답이다. 시장이 너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화두이자 담론들이다. 압축적 경제성장을 사회 구성의 원리이자, 정치 공동체의 지상 목표로 삼고 살아온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구호들이 새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비단 한국 사회만의 사정도 아니다. 고삐 풀린 시장 경제와 시장 사회를 인류사에서 정상적인 것 또는 어떤 자연적 진화의 산물로 바라보는 생각은 우리 시대의 지배적 통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호가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나아지고 있을까?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자리는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는 것일까? 오직 자기 조정적 시장만이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저 풍요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일까?
일찍이, 산업혁명을 겪으며 급변하는 서구 사회의 참혹한 풍경을 지켜보며, 폴라니는 허구적 상품(화)의 원칙에 입각한 자기 조정적 시장경제를 인간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분쇄하는 ‘악마의 맷돌’에 비유한 바 있다. 나아가 폴라니는 이 같은 폭력적 시장의 횡포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폭력에 맞서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회의 반발/운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주지하듯, 폴라니의 이 같은 분석은 20세기 초반의 대공황 및 이에 따른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국가의 개입 및 복지국가의 성립으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도 잠시,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반격’을 통해, 또 다시 폴라니가 말한 이중 운동의 흐름이 다시 되돌려진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우리는 이 같은 자본의 반격에 굴복할 것인가? 역사는 그렇게 종언될 것인가?
칼 폴라니는 경제 문명사라는 우회로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경제와 시장 사회를 자명한 것으로, 어떤 자연사적 산물로 간주하는 당대의 좌우 공통의 편견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 시장체제를 거시 문명사적 견지에서 상대화, 특수화하면서 자신의 사회경제(사)학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했다. 나아가 이를 통해, 경제를 사회 속으로 재흡수하며, 우리의 삶의 다양한 가치와 방식에 창조적으로 적응케 하기 위해 노력했다. 폴라니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악마의 맷돌에 맞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준비해야 할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다시 폴라니의 문제의식과 이론적 작업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할 이유다.

실체적 비시장경제학, 
인간의 살림살이를 향하여
칼 폴라니의 유작 『인간의 살림살이』는, 전근대 시기 비시장경제의 형태, 그 진화 및 다양성을 보여 줌으로써 현대 시장 체제를 상대화하고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려 한 『거대한 전환』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폴라니는 무엇보다, 경제주의의 오류, 다시 말해, 인간의 경제를 그 시장 형태와 동일시하는 경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특히, 폴라니는 인간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위치를 좀 더 현실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일반 경제사를 폭넓은 개념적 기초 위에 재건하려 시도하고 있는데, 그 개념적 기초가 바로 『인간의 살림살이』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실체적 경제(실체적 비시장경제학, 다시 말해 인간의 살림살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폴라니는 주류 시장경제학을 경제의 형식적 의미에 기반을 둔 형식적 경제학이라 규정하고, 이를 실체적 의미에 기반을 둔 실체적 경제학과 대립시켰다. 여기서 형식적 경제학의 체계란 무한한 욕망을 갖고 경쟁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고립된 ‘경제인’, 기술적 의미 또는 자연적 사실로서의 희소성, 그리고 효율적 선택을 공준으로 삼는다. 즉 시장적 인간과에 입각해 도구적, 공리주의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추구하는 경제학이다. 이에 반해 실체적 경제학의 체계는 다면적인 풍부한 욕구를 가지고 사회적 자유와 연대,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적 인간’, 문화적?사회적으로 정의되는 희소성,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생존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물질적 수단을 공급하는 과정을 공준으로 삼는다.
이 같은 공준을 기반으로, 폴라니는 실체적 의미(인간의 살림살이로서)의 경제야말로 인류사에서 보편적인 것이며, 형식적 의미의 경제는 시장경제의 특수한 한 형태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당연히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더 좋은 삶, 더 높은 삶을 추구하는 고귀한 존재이며, 공리주의적인 무한한 욕망이 아니라 다면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의 욕구(경제적 욕구는 이 같은 다면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의 욕구 가운데 한 부분에 불과하다)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질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경제, 즉 실체적 경제이자, 인간의 살림살이 경제라고 지적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시켜야 할 경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말하는 경제주의 오류는 인간의 경제를 그 시장 형태와 동일시하는 경향에 있다. 따라서 이 편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근본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말의 모호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형식적 의미와 실체적 의미를 별개로 분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복합적인 개념의 경우처럼 이들을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하나의 용어로 합하면, 그 이중적 의미가 더욱 강화되어 이 오류는 결코 바로잡을 수 없게 된다. – 본문 중에서(113쪽)

우리는 자신에게 친숙한 종種적인 부류의 현상을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현상과 동일시하곤 한다. (이 잘못은 경제적이라는 용어의 근본적인 모호함 때문에 더욱 조장되었을지 모른다. 이 점은 뒤에 다시 언급하겠다.) 어쨌든 이 오류 자체는 명백하다. 인간 욕구의 신체적 측면은 인간 조건의 일부이며, 어떤 사회도 일정한 실체적 경제substantive economy를 갖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통상적으로 시장이라 불리는) 공급-수요-가격기구는 구체적인 구조를 가진 비교적 현대의 제도이며, 이 제도는 확립하는 것과 계속 운용하는 것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이라는 속屬적 개념의 영역을 [종적 개념인] 시장현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인간 역사의 가장 많은 부분을 역사의 현장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모든 경제적 현상을 포괄하도록 시장 개념을 확대하는 것은 시장현상에 동반되는 독특한 특성을 모든 경제적인 것들에 인위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사고는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 본문 중에서(88-89쪽)

학자는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학자는 우리의 개념에 명료성과 정확성을 부여해야 한다. 학자들의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우리는 인간이 활동하는 상황의 실제적 특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용어로 인간의 살림살이 문제를 정식화할 수 있다. 둘째, 학자는 인간 사회에서 계속 변화하는 경제의 위치와, 과거의 문명이 거대한 전환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던 방식을 연구해, 원리와 정책의 범위를 우리의 의지대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학자의 이론적 과제는 광범위한 제도적·역사적 토대를 바탕으로 인간의 살림살이에 대한 연구를 정립하는 것이다. 연구에 사용할 방법은 사고와 경험의 상호 의존에서 얻는다. 자료의 참조 없이 구성된 용어와 정의는 무의미하며, 우리 시각으로 재조정하지 않는 사실을 단순히 수집하는 것도 쓸모없다. 이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개념적 탐구와 경험적 탐구가 함께 발맞추어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을 위해 이 탐구의 여정에는 어떤 지름길도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나는 인간의 경제문제에 대한 그런 접근 방식에 기여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 본문 중에서(82쪽)

호혜성과 통합의 경제학
『인간의 살림살이』는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사회에서 경제의 위치”(1~10장)는 경제주의의 오류를 중심으로, 형식적, 시장 중심적 경제 개념의 문제점과 역사적 한계를 규명하며, 이를 실체적 비시장경제(살림살이 경제)로 재개념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제2부 “고대 그리스의 교역, 시장, 화폐”(11~17장)는 돈벌이나 부 등을 (그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가정에서는 삶의 수단이며, 폴리스에서는 좋은 삶의 수단으로 간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되살리며, 우애와 호혜성, ‘좋은 삶’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중심으로 경제가 사회 속에 착근되어, 사회 전체의 목적을 위해 작동했던 고대 그리스(특히, 아테네)의 사례를 살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그리스의 사례 외에도, 폴라니는 투른발트, 말리노프스키 등 당대의 인류학적 연구의 성과를 활용해, 서구 시장체제가 출현하기 이전의 오랜 인류 역사에서 그런 제도가 작동했던 다른 종류의 사회적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시장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사람들 간의 ‘교환’이란 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수요-공급-가격기구라는 규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석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오늘날처럼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목적, 호혜성, 통합을 해체하는 맷돌로 작동하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의 통합과 평등을 위해, 나아가 아테네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여했던, ‘시장’의 다양한 역할과 기제에 대해 폴라니가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관점과 사례의 발굴은, 지속 가능한 참여 민주주의에 걸맞은 시장의 작동 방식과 그것의 지위에 대한 일단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시장이 민중poulace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시장 교역과 아고라는 어디까지나 폴리스 내부적인 것이었으며, 그 물리적·정치적 경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 아고라는 여전히 지배적이었던 재분배 체제의 작동을 촉진하는 한 가지 장치 이상이 아니었다. 도시가 시민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그리스 도시경제의 일관된 원칙이었다. 이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도시는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다. 수입 필수품의 공급은 전적으로 공적인 감시 아래 놓여 있었으며, 또한 시민 자신의 생활도 상당한 정도까지 도시국가에 의해 보장되었다. – 본문 중에서(370쪽)

요컨대 그리스적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부자의 대중 매수를 막기 위한 물질적 보호 장치를 필요로 했다. 유일하게 효과적인 보장 장치는 배심원 활동이나 민회의 투표, 평의회의 행정 수행 등의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을 부자가 부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테네인의 정신에 따라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식량의 분배는 폴리스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것과, 관료제의 도입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대표자나 관료에 의한 대중의 통치가 아니라 대중에 의한 대중의 자기 통치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의제나 관료제 역시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민주권 사상에 의존하는 모든 근대사상의 원천인 루소도 여전히 이 원리를 굳게 신봉했다. 그런데 어떻게 관료제 없이 국가에 의한 이 분배 방식이 실현될 수가 있었겠는가? 아테네의 경우, 식량 시장이 그 답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382-383쪽)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ki는 투른발트가 언급한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면밀한 조사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호혜적 상황은 언제나 대칭적 형태의 기초 조직에 입각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거라고 예측했다. 그는 트로브리안드 섬의 가족제도와 쿨라 교역에 대한 서술을 통해 이 같은 점을 명확히 했다. 이로부터 한 걸음만 내디디면 우리는 호혜를 여러 통합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고 마찬가지로 대칭성을 여러 지지 구조들 가운데 하나로 일반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전자의 범주에 재분배와 교환을, 후자의 범주에 중심성과 시장을 추가함으로써 달성되었다. 이런 관찰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왜, 어떻게 개인의 태도가 그렇게 자주 사회적 효과를 발휘하는 데 실패하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 대칭적으로 조직된 환경에서만 호혜적 태도는 모종의 중요성을 갖는 경제 제도를 낳을 것이다. 먼저 중앙이 확립되어 있는 곳에서만 개인들의 협력적 태도는 재분배 경제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제도화된 시장이 존재할 때에만 개인의 교역 태도가 공동체의 경제활동을 통합하는 가격을 낳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144-145쪽)

우리 시대에는 시장경제를 약 3천 년에 걸친 서구 사회 발전의 자연적인 도달점으로 간주하고 싶어 하는 유혹이 엄청나게 강하다. 지역 식량 시장이나 시장 교역과 같은 제도에 대해, 서구적 사고로서는 이를 결국 전 세계를 포섭하기에 이른 근대 경제의 작은 기원으로 보는 이외에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다. 이보다 더 큰 오류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시장 교역 자체 그리고 마침내 출현한 근대의 시장경제는 작은 기원으로부터 성장해 온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원래 별개이며 독립적인 발전들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 발전들은 그것을 형성하는 제도적 요소들의 분석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목적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교역 및 화폐에 대해 논의했던 것처럼, 제도적이며 조작적인 접근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 – 본문 중에서(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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