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커먼스’ 시대가 온다] 커먼스 전환과 P2P<1> “위키피디아와 국유림의 공통점?”

 

[‘커먼스’ 시대가 온다] 커먼스 전환과 P2P<1>

위키피디아와 국유림의 공통점?

 

 신자유주의를 무작정 옹호하는 목소리는 이제 잦아들었다. 이른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구호는 확실히 한물 갔다. 신자유주의, 무분별한 사유화가 나쁘다는 건 다들 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장 만능주의가 나쁘니, 다시 국가주의인가? 국가 소유를 개인 소유로 돌리는 것, 혹은 그 반대.  지난 세기 역사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대안은 종종 주어진 선택지를 벗어난 자리에 있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건, 아주 복잡한 개념이다. 국가가 소유하거나 특정 개인이 소유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대상과 소유자가 꼭 일대일로 연결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떠도는 숱한 정보와 지식에게 일대일 관계로 주인을 맺어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터넷 이용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게다. ‘커먼스'(The Commons, 공유) 운동을 소개하는 건 그래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대일 대응 소유 개념은, 인류의 역사에 비춰보면 오히려 낯설다. 15세기 말, 영국 영주들이 땅에 울타리를 치고 농민을 몰아내면서 자리 잡은 개념일 뿐이다. 이 같은 ‘울타리 치기’ 운동은 지금껏 이어졌지만, 여전히 미완이다. 울타리를 칠 수 없는 영역이 아직 많다. 앞서 거론한 온라인 정보만이 아니다. 평판, 명성, 친분처럼 손으로 만지기도, 숫자로 세기도 애매한 것들이 많다. 누구나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지만, 익숙한 소유 개념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예컨대 평판을 주식처럼 쪼개서 사고파는 건 불가능하다.  요컨대 국가와 시장에서 벗어난 ‘커먼스’ 영역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국가 소유와 개인 소유가 모두 온전한 대안이 아니라면, ‘커먼스’ 영역을 확대하자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미셸 바우엔스(Michel Bauwens), 데이비드 볼리에(David Bollier) 등이 주도한 ‘P2P 커먼스 재단'(P2P Commons Foundation)이 이미 활동 중이다. 말 그대로 ‘커먼스’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하는 재단이다. 한국에서도 이들과 연계한 활동이 시작됐다. “e-commerce(이커머스)의 시대에서 e-commons(이커먼스)의 시대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지식공유지대 e-Commons(이커먼스)’가 창립했다. <프레시안>은 최근 홍기빈, 박형준 ‘지식공유지대 이커먼스’ 준비위원과 대담을 진행했다. 홍기빈, 박형준 준비위원은 ‘지식공유지대 이커먼스’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그간 낸 책을 무료 전자책으로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식공유지대 이커먼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누구나 pdf 파일을 내려 받아서 전자책 리더로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은 ‘커먼스’ 운동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소개할 예정이다. 우선 ‘P2P 커먼스 재단’이 배포한 <커먼스 전환과 P2P : 입문서(Commons Transition and P2P : a primer)>를 번역했다.

<프레시안>은 박형준 준비위원이 번역한 내용을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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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스(Commons)가 하나의 이념과 실천으로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동학으로 부상하고 있다. 커먼스는 시장과 국가와 더불어 사회를 조직하는 제3의 양식이다.

커먼스는 P2P(Peer to Peer 수평적 개인 망. 영어 단어 peer는 또래의 비슷한 지위의 사람을 뜻한다.)와 함께 낡은 중앙 계획 시스템이나 시장 경제의 경쟁적 강압에서 벗어나 진화하면서, 시민 사회와 그것이 정주하고 있는 환경의 필요와 관례에 기초한 시스템을 형성한다.

그러면 커먼스와 P2P는 무엇이며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 이어지는 글에서 이러한 개념들을 살펴보겠다.

커먼스는 무엇인가?

<공유인으로 사고하라>(배수현 옮김, 갈무리 펴냄) 저자 데이비드 볼리어(David Bollier)가 서술한 것처럼, 커먼스는 자원 이용의 공동체가 그 공동체의 규칙과 규범에 따라 운영하는 공유된 자원이다.

커먼스는 물과 토지 같은 자연의 선물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공물과 지식 생산물 같은 공유 자산들과 창조적 작품도 포함된다.

커먼스의 영역에는 두 사람이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경합재와 자원이 들어 있을 수도 있으며, 사용해도 고갈되지 않는 비경합재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유형의 재화나 자원들은 (자연이) 물려준 것일 수도 있고 인간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커먼스 학자이자 활동가인 실케 헬프리히(Silke Helfrich)에 따르면, 커먼스는 적어도 네 가지 상이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인식되고 그에 따라 실천할 수 있다.

1. 집단적으로 관리되는 자원들 : 물질적인 자원과 비물질적인 자원 모두를 포함하는데, 보호가 필요하며 많은 지식과 노하우가 요구된다.

2. 사회적 과정들 : 왕성한 (사회적) 관계를 조성하고 심화시키는 사회적 과정들로서 복합적인 사회-생태적 시스템의 일부를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공유화(commoning)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재생산되며, 보호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3. 새로운 생산양식 : 새로운 생산적 논리들과 과정들에 초점을 맞춘 생산양식이다.

4. 패러다임 전환 : 커먼스와 공유화 행위를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간주하는 패러다임이다.

“공유 없이 커먼스 없다(There is no commons without commoning)”라는 말이 있다. 커먼스는 단지 자원이 아니며, 그 자원 주변에 모여 있는 공동체만도 아니며, 그것의 관리를 위한 규약만도 아니다. 커먼스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그 한 예로 위키피디아를 들 수 있다. 거기에는 자원(보편적 지식), 커뮤니티(저자들과 편집자들), 그리고 공동체에서 모은 원칙들과 규약들의 집합(위키 백과의 콘텐츠 및 편집 지침)이 있다. 위키 미디어 커먼스는 이 세 가지 모두를 기반으로 나왔다.

근본적으로 맥락은 완전히 다르지만,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시우슬로 국유림(Siuslaw National Forest)도 또 다른 사례다. 이 국유림은 공유지로 관리되고 있는데, 거기에도 자원(숲), 공동체(벌목꾼들, 생태 과학자들, 산림 감시원들이 ‘유역관리 협의회’를 구성함), 일단의 규칙과 세칙(숲을 지속 가능하게 공동 관리하기 위한 헌장)이 있다.

커먼스는 공동체가 자원을 집단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할 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사전에 정리된 커먼스의 목록이란 따로 없다. 전반적으로 보면, 어업에서부터 도시 공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아주 다양한 개별적인 커먼스들의 형태와 매우 많은 공유 재산 형태를 가지고 커먼스가 번창해 왔다.

“토지 또는 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커먼스를 포함해, 모든 커먼스는 지식공동체다. 커머너(공유자)들이 커먼스를 운영하려면, 지식을 배우고 적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지식 커먼스’는 자연 자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디지털 시스템인 무형의 창조성에 기초한 커먼스 또한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광물질이 필요하고, 전기는 화석연료로부터 발전되어야 하는 등의 이유에서이다. 커먼스들 사이의 공통분모는 그 무엇보다도 사회적 커먼스, 즉 사회적 과정(social process)이다.

- 실케 헬프리히(Silke Helfrich), 커먼스 전략 그룹(Commons Strategies Group)”

 
 
 
2018.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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