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 진입, 언제까지 ‘뻔한 처방’?

 

장기 침체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 “낮은 잠재성장율, 새로운 현실”에서 세계경제가 일회성 불황이 아니라 ‘영구적인(parmanent)’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언제나 낙관적인 전망을 내게 마련인 국제기구가 이런 보고서를 냈다는 건 이례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출처 : IMF, “Low potential growth : New reality”, p1

 

위 그림은 현재의 침체가 경제쇼크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경로 자체가 달라진 결과라는 걸 보여줍니다. IMF는 선진국의 성장률이 2015~2020년 연간 1.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금융위기 이전의 2.25%로도 회복할 수 없다는 거죠. 신흥경제국의 성장률도 2008~2014년 연간 6.5%에서 앞으로 5년간 5.2%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전 세계적 침체가 우려된다는 얘깁니다.

 

요약본은 아래 링크를 보시면 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잠재성장률이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지 않는 범위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잠재 GDP의 성장률은 생산성 증가율과 인구증가율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GDP란 1인당 부가가치(생산성)에 인구수를 곱한 수치니까요.

 

IMF는 선진국의 경우 인구구조의 변화가 성장 둔화의 대부분을 설명해 준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그 예로 한국과 일본을 들었는데요. 외국 이민이 별로 많지 않은 데다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죠. 또 신흥경제국의 경우에는 생산성 증가율의 둔화도 한 몫을 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기 잠재성장률이 둔화되면 현재의 정부부채와 민간부채를 줄이기도 어렵게 됩니다. 또 실질이자율은 아주 낮은 상태에서(지금도 선진국의 기준금리는 거의 0이고 한국도 1%대인데 이보다 더 떨어질 거라는 얘깁니다) 균형을 이루게 될 테고 새로운 충격이 닥쳤을 때 통화정책을 쓰기 어렵게 되겠죠. 명목이자율을 0 이하로 낮출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진단은 작년말부터 경제학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을 낳고 있는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 논의를 바로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음울한 진단이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요?  인구구조의 변화, 혁신의 둔화(여기에는 이견이 있습니다만 IMF의 이번 보고서는 정보기술의 혁신에 의한 잠재성장율 증가를 오히려 예외로 보고 있죠), 그리고 부와 소득의 격차 확대가 원인이라는 점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상태죠.

 

▲ 손님이 드문 가게 풍경.ⓒ연합뉴스

 

뻔한 처방 – 관성의 경제학

 

그렇다면 IMF는 어떤 정책처방을 내리고 있을까요?

 

(1) 연구개발을 지원해서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 특허제도를 강화하고 잘 설계된 조세유인과 보조금 정책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교육의 질과 고등교육 진학률을 높여서 노동생산성을 높인다.
(3) 일부 신흥경제국의 경우, 하부구조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생산을 가로막고 있는 병목을 없앤다.
(4) 몇몇 나라에서는 더 좋은 기업 환경과 생산물시장의 기능을 개선할 여지가 있다.
(5) 노동시장참가율을 높여야 한다. 몇몇 나라의 경우에는 여성, 다른 나라에서는 노인들의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조세와 지출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6) 투자와 자본의 증가를 위해 몇몇 경제에서는 통화정책과, 가능한다면(if feasible, 현재 재정적자가 심하지 않다면) 재정정책을 통해 수요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6)을 뺀 다섯 가지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거죠. 1980년대 중반 이후 시카고학파와 네오케인지언이 합의한, 이른바 “새로운 합의 모델(New Consensus Model)”의 전형적인 처방전입니다. (1), (2), (5)는 이른바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고 (4)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거죠. 다만 NCM의 핵심 정책수단이었던 통화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게 뻔하니까 재정정책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투자(IMF 보고서의 제4장)와 소비가 모두 둔화하고(세계 전체로 보면 대외부문은 0인데) 공급 능력을 확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특히 한국의 경우 부채를 통한 성장도 한계에 도달한 게 분명합니다.

 

어느 정도의 부채가 위험한가에 대해서 합의된 정의는 없습니다만, 소비증가율이 0에 가까워진다는 건 부채주도경제가 이제 ‘부채부담경제(debt burden economy)’로 변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단기뿐 아니라 장기에도 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은 수요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공급보다는 총수요를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겠죠. 또 ‘지속적 침체’의 원인 중 인구구조의 변화나 기술혁신의 지체를 단기에 해결하는 것보다는 불평등을 축소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겁니다(물론 부자들이 정치와 언론, 사법부까지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민주주의’에서는 이마저도 매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만).

 

요즘 세계의 지도자들이 다 인정하고 있는 임금 상승을 비롯한 “소득주도 성장”이 바로 그겁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투자를 할 리도 만무합니다. 이들의 야성적 본능(animal spirit)은 설비투자보다는 자산투기를 가리키고 있을 테니까요. 자본의 투자를 가로막는 병목(IMF가 말하는 대부분 공공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말합니다)을 제거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병목, 즉 생태 문제를 해결할 인프라에 정부가 먼저 투자를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관성이란 물체가 현재의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경제학만큼 관성이 강한 ‘물체’도 없는 듯합니다. 세계 최고의 국제기구에서 위기를 예측하지도, 제대로 처방도 못 내린 주류경제학의 처방전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으니까요.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주간 프레시안 뷰]‘장기 침체’ 진입, 언제까지 ‘뻔한 처방’? (2015년 4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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