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의 GCC아이디어]블록체인, 각자의 탐욕이 만들어낸 신뢰 시스템

글로벌 디지털 통화 ‘리브라(Libra)’ ④
블록체인의 “작업증명의 기본 철학은 나쁜 짓을 하려면 많은 자원을 소모하도록 해서 나쁜 짓을 최대한 억제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의 신뢰성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현존하는 가장 비싸고 비효율적인 저장 시스템

미국시간으로 7월 16일, 페이스북이 제안한 글로벌 디지털 통화 리브라(Libra)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된다고 한다. 세계가 주목할 것인데 주로 ‘금융적 측면’에서 많은 논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상원과 하원 모두 금융위원회에서 청문회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지난번의 ‘탈중앙 시스템으로서의 블록체인’에 이어서, 이와 쌍을 이루는 기술적 이슈인 ‘블록체인의 신뢰확보 시스템’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블록체인을 주장하는 분들은 ‘소수의 권위에 의존한 위계적 중앙 집중 시스템’을 거부하면서 블록체인이 ‘위계 없는 동등한 다수의 사람들이 탈중앙화 된 블록체인에서 상호 거래와 계약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다. 기득권이나 기성세대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앙 집중 시스템은 이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집단을 신뢰해야 한다. 한 나라의 화폐를 믿고 사용하려면 그 국가와 국가의 중앙은행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가 아마존 클라우드인 AWS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아마존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를 자유롭게 쓸 때에도 신용카드사에 대한 신뢰가 최소한 있어야 한다.(어쩌면 사기업들인 아마존이나 신용카드사 자체를 신뢰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들의 탈선을 감독하고 규제할 국가의 신뢰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다르다. 블록체인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신뢰자본’을 전혀 쌓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도 신뢰 기반의 거래와 정보 공유방법을 개발했다고 알려졌다. 대신에 블록체인은 정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선 어떤 식으로 사회적 신뢰가 제로인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신뢰를 해결했는지를 알아보기 이전에, 그 신뢰를 얻기 위해 지불한 비용부터 확인해보자.

2017년 7월, 대니 라이언(Danny Ryne)은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했다고 한다. 하나의 연산을 블록체인에서 실행할 경우와 아마존 클라우드와 같은 중앙화 시스템에서 실행했을 경우 효율성 차이=비용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를 실험한 것이다. 아주 단순한 덧셈을 100만 번 반복하는 실험이다. 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에서는 이 연산을 수행하는데 약 26.5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똑같은 연산을 아마존 클라우드에서 실행하니 0.000000066달러 비용으로 0.04초 만에 작업이 끝났다고 한다. 동일 작업의 소요비용으로 볼 때 약 4억 배 정도 블록체인이 더 비싼 것이다.

실험적 상황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실제로 어떤가? 비트코인 투기가 정점에 이르렀던 2017년,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약 1억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하여 저장했고, 이를 담당했던 채굴업자들은 당시 시세로 16조 원이 넘는 보상금 뿐만 아니라 이와 별도로 약 10조 원의 중개수수료를 챙겼다고 한다. 하지만 1억 건의 트랜잭션은 한국 금융결제원이 고작 3일 동안 수행한 거래 처리량에 불과하며 연간 처리량의 0.9퍼센트 밖에 안 된다. 만약 한국 금융결제원이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사용해서 금융거래 처리를 해주었다면 한 해 운영비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약 1800조 원)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3000조 원 이상을 소요해야 했다는 얘기다.(이병욱 2019) 이 정도 사례만으로도 블록체인이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서 얼마나 ‘비싼 시스템’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나쁜 짓에 드는 비용이 클수록 나쁜 짓이 적어진다

『블록체인 해설서』의 저자 이병욱씨는 블록체인에서의 효율성과 신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블록체인은 일의 반복을 통해 효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네트워크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을 작성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다. 이는 구조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며, 이런 비효율을 통해 일관성과 기록 불변성을 추구한 시스템이다.”

우선 블록체인은 신뢰구축의 첫째 조건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완전노드들 모두에게 동일한 데이터 복사본을 모두 저장하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지난해 말까지 비트코인에서 블록체인 데이터 전체 사이즈는 약 250기가, 이더리움은 약 1.5 테라라고 한다. 각각에서 완전검증 노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약 1만 명 정도라고 하니 이들은 자신들의 컴퓨터에 각각 250기가 또는 1.5테라 공간을 할당해주어야 하며, 10분 또는 15초 간격으로 계속 블록이 만들어질 때마다 검증에 참여해야 하므로 24시간 컴퓨터를 켜 두어야 한다. 실로 엄청난 중복이고 비효율인데 이것이 신뢰를 위한 첫째 조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완전노드가 얻는 이익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들은 검증만 해주지 실제 블록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두 번째, 이른바 채굴이라고 하는 블록의 생성, 즉 거래의 처리와 데이터 저장을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 비트코인을 기준으로 볼 때 ‘난스 찾기’라고 하는, 의미 없이 단순히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즉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하는) 컴퓨터 작업을 서로 경쟁적으로 해서 가장 먼저 찾은 승자가 블록을 생성하여 다른 노드로 전파한다. 이렇게 경쟁에서 이겨서 기존 블록체인에 새 블록을 생성하여 붙이는데 성공한 단 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로 새로운 비트코인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쟁을 비트코인은 10분 단위로, 이더리움은 15초 단위로 끊임없이 계속한다. 경쟁에서 이기면 새로운 코인을 받는다는 오직 그 동기 때문에. 작업증명 방식의 블록체인은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이 경쟁이 끊임없이 반복되게 해야 한다. 만약 인센티브가 시원치 않아서 경쟁이 줄어들거나 이 경쟁에 뛰어드는 비용이 너무 커져서 수익이 없어지면 블록생성은 멈추게 되고 시스템은 멈춰버린다.

만약 이 치열한 경쟁으로 계속 늘어나는 블록체인의 중간부터 누군가 데이터를 조작하려 한다면, 다른 경쟁자들이 수십, 수백 번 경쟁을 통해 이어 붙여서 만들어 놓은 블록들을 일거에 반복해서 따라잡을 만큼 ‘엄두도 못 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블록체인의 “작업증명의 기본 철학은 나쁜 짓을 하려면 많은 자원을 소모하도록 해서 나쁜 짓을 최대한 억제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의 신뢰성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인간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적 신뢰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물질적 인센티브(코인으로 표시되는 수익)를 노리는 수많은 익명의 개인들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막대한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10분  마다 반복되는 ‘난스 찾기 게임 경쟁’을 하고, 매 게임마다 단 한사람의 승자가 코인을 받는 식으로 반복되는 구조다. 각자의 물질적 탐욕이 블록체인 신뢰의 비밀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블록체인에서는 인간관계에서의 믿음이나 사회적 협동이라는 것은 들어설 여지도 필요도 없다. 오직 돈을 벌려는 무수한 익명들의 기를 쓰는 투기적 노력들이 나쁜 마음을 먹은 특정 해커를 압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블록체인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하게 디자인 되어 있는 것이다. 더 답답한 것도 있다. 이들의 노동은 비록 이기적이라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사회적 기여를 하는가? ‘난스 찾기’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노동이다. 단지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다. 환경론자는 물론이고 희소자원 최적분배를 강조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도 쌍수를 들고 반대해야 할 행위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전력요금기준으로 1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요금은 무려 3천만 원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비트코인 채굴(거래처리)에 소비한 총 전력에너지가 30TWh를 넘었고 2018년에는 약 50TWh에 육박한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 6대 도시 1년간 가정 전력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많다고 한다.(이병욱 2019)

음악이 흐르는 동안만 춤을 추게 된다

이처럼 블록체인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은 흔히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신뢰’와는 전혀 관계없고, 오직 이기적 인간의 물질적 탐욕이라는 장치를 기술적으로 무한히 반복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계속 춤을 추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노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탐욕을 계속 채워줄 동안만 블록체인은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블록체인은 기술적 설계 결함으로 무너지기 보다는 사회학이나 경제학적 이유 때문에 무너질 개연성이 높다.(사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지금껏 10년 동안 유지되는 이유 역시 기술적인 탄탄함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참여한 이해당사자의 물질적 이익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리브라 역시 블록체인 기반이므로 마찬가지 운명을 걸을 것인가? 리브라는 아직 퍼블릭 방식이 아니라고 했으므로 탈중앙화 시스템도 아니고 따라서 익명의 다수 참여를 전제한 신뢰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미 신뢰를 전제로 허가받은 노드들 사이에서 운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리브라는 작업증명 방식이 아니라 비잔틴 오류허용(BFT;Byzantine Fault Tolerance) 방식의 합의 알고리즘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전에 정해진 소수의 노드 중에서 무작위로 선출된 리더가 블록을 생성하고 나머지는 투표 방식으로 검증해서 블록을 최종 승인하는 구조라고 한다. 즉 합의에 참여하는 소수의 신뢰를 전제한 노드들의 다수결 투표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 문제는 더 근원적이다. 이미 사회적 신뢰를 전제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엄청난 데이터 중복과 고비용, 비효율을 감수하면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가? 전혀 블록체인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페이스북 리브라 팀이 무슨 얘기를 더 풀어놓을지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자.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의 결정적 차이

최근 10여 년 동안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또 다른 혁신기술인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인공지능은 오랜 겨울을 지내고 2010년 음성인식(아이폰의 Siri)에서 놀라운 상용화를 시작한다. 2012년 이미지 인식 기술의 획기적 전환이 만들어지면서 여기서 구현된 딥러닝의 상업적 활용도가 폭발한다. 2014년과 2015년에 도달된 기계번역에서 비약적 발전은 구글 번역으로 응용되었고, 강화 학습의 성공적 실험은 2016년의 알파고와 그 뒤의 알파제로에서 빛났다. 이 배경에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는 하드웨어의 발전이나 알고리즘 개발 뿐 아니라 특히 막대한 빅데이터의 축적과 활용이 있다. 또한 연속적인 상업적 성공과 함께 신경과학, 뇌 과학과 인지과학, 언어 이론, 학습이론 등의 연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인공지능과 접목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레이블이 붙은 학습데이터에 기반한 지도학습 수준을 넘어서 이후 발전 전망에 관한 다양한 경로들이 훨씬 더 많이 모색되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부작용과 우려들, 예컨대 과거 데이터가 갖는 편향성, 가치의 일치문제, 군사적 무기화 우려, 일자리 상실에 대한 우려 등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 경제적 이슈들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경우에는 똑같은 기술 개념과 범주가 지난 10여 년 동안 쳇바퀴 도는 것처럼 큰 확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기술이나 학문 분야들로의 확장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해쉬 암호와 기반 머클트리 데이터 구조와 작업 증명이라는 신뢰 검증 시스템 외에 스마트 계약이나 지분 증명 등 이후에 나온 개념이나 기술도 크게 보아 고만고만한 범주 안에 들어간다. 인공지능 분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면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투기자금이 블록체인-코인 시장에 투입되었고 블록체인에 대한 찬사를 풀어내는 사람들도 상당 부분 엔지니어나 학자들이라기보다는 이 사업에 뛰어든 비즈니스 관련자라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지 한 번 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 이제 블록체인의 핵심인 탈중앙화와 신뢰검증 시스템을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리브라에 적용된 기술체계에 대한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김병권 / 서울시 협치자문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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