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도 뜨거운 이름, 칼 폴라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와 아이쿱 공동포럼

“칼 폴라니가 뭐꼬?”

한 경제학과 교수가 묻습니다.

“내가 살아있을 땐 나를 잘 모르더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이렇게 나를 찾느냐.”
1964년 4월 무덤에 묻힌 칼 폴라니가 묻습니다.

 

현직 경제학과 교수가 잘 모르는 과거의 한 경제학자 이름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칼 폴라니(Karl Polanyi)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사회사상가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경제인류학자라 부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디 학문의 시작은 지금처럼 철저하게 쪼개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 사는데 어찌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철학과 심리와 물리가 다 쪼개져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뭐라 부르든
차갑고도 뜨거운 이름, 칼 폴라니를 지난 4월 17일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만났습니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창립 기념 및 구례자연드림파크 1주년 기념 공동포럼
<칼 폴라니와 21세기 경제>


한국 최초 협동조합으로 꾸려진 연구소

지난 3월 17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이하 칼폴라니연구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여느 연구소와 달리 협동조합 형식으로 꾸려졌다는 점입니다.  한 명 한 명 조합원을 모집하고, 출자금과 매달 조합비로 사회경제연구소를 운영한답니다.

정태인 소장을 중심으로 홍기빈 선생님이 연구위원장을 맡았고, 아버지가 비정규직이면 자녀도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세워 ‘비정규직의 대물림’을 처음으로 실증연구한 김연아 박사가 연구위원으로 있습니다.

이사로 함께한 조금득 씨(청연연대은행 토닥 이사장)는 30대 젊은 여성인데, 모아놓은 전재산 100만 원을 칼폴라니연구소 출자금으로 냈습니다. 원래는 청년주거협동조합인 ‘민달팽이 유니온’에 내려고 모아놓은 돈이라고 합니다.

창립총회 당시 50여 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했으나 연구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1,000명의 조합원이 함께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사람이 160여 명 정도이니, 이중 많은 분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시겠죠?

 

왜 칼 폴라니인가

​젊디젊은 청년부터 국회위원까지 지금 왜 칼 폴라니를 주목하여 칼폴라니연구소 조합원으로 가입할까요?

칼 폴라니 전문가 홍기빈이 묻고 노무현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역임한 이정우 교수가 답합니다.

  경제학과를 간 건 경제가 경세제민( 經世濟民)이라 갔어요.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니 얼마나 멋져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 보니 경세제민은 안 하고 전혀 관계없는 것들만 가르치는 거에요. 내 생각에 쓸데없는 것들이었죠. 경제학 하면서 저처럼 방황한 사람도 없을 거에요. 방황하다 경제 고전을 읽었어요. 국부론, 자본론 등 경제 5대 고전을 다 읽었죠. 재밌는 거에요. 경세제민이 여기 있더라고요. 고전에 의해 구원을 받았고 그 이후 지금까지 방황하지 않았어요.

이정우 교수가 진짜 경제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노벨상에 경제학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를 물리, 화학처럼 수리로 정확히 예측되고 계산되는 과학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인간의 삶의 일부인 경제가 현란한 용어와 수학적 기법으로 무장했다고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듯 곧 과학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시장 질서가 부족하면 경제 위기가 온다’는 명제는 ‘시장 질서가 부족했는데도 경제가 번영한다’ 든가 ‘시장 질서의 방향으로 개혁을 했는데도 경제 위기가 온다’ 라는 현실이 발견되면 논박을 당하거나 의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다시 위기가 몰려오면 그것을 시장 개혁의 미흡함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 하거나, ‘경제가 번영하는 것을 보니 시장 질서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 말한다. (…) 한마디로 ‘잘 되면 시장 탓 못 되면 비(非) 시장 탓’ 이 되는 셈이다. 과학성을 뽐내는 경제학자들의 논리 구조가 제사장과 닮았다니 놀랍다. 혹시 ‘시장 만능’의 명제가 의심받으면 생업이 막연해진다는 점까지 서로 닮은 것은 아닐까?

–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중 홍기빈이 쓴 ‘책을 옮기게 된 동기'(12~13쪽)

 

  당시 세계 경제학분야에서 자본논쟁이 한창이었어요. 영국과 미국학계가 논쟁이 붙었어요. 접전지인 뜨거운 현장에 직접 가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원래는 영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거기는 학비를 내야 하더라고요. 돈 때문에 어찌어찌하여 하버드대를 들어갔는데…아! 논쟁이 다 끝나버린 거에요. 그래서 뭘 공부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분배, 불평등이라는 걸 알았죠. 그런데 그쪽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많지 않았어요. 다행히 하버드는 튜터식 수업을 해주는 학풍이 있어서 교수와 개별적으로 만나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학, 정치학,철학 등 두루두루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 교수의 수업도 들었지요.(웃음)

 

 

살아가면서 많이 듣고 많이 느끼게 되는 말 중 이런 게 있습니다.

“사람이 돈으로만 사는 건 아니야.”

그렇죠. 사람은 돈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하고 이웃이나 친구와의 교감도 필요합니다. 상호 존중도 필요하고 독립적 생활을 통한 자존감도 필요합니다. 무엇하나 없으면 안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았다. 인간은 경제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다. 물질적 소유를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이 노리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선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자산 등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는 보통 우리가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한 노력과 연결 짓는 혼합적 성격을 띤다. (…)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회의 모습이 정반대로 사회가 경제 체제에 묻어 들어간 형태로 변한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사태이다.

– 같은 책 ‘제 1장 낡은 것이 된 우리의 시장적 사고방식’ 중에서 (31쪽)

현재 세계가 처한 경제의 위기는 시장 만능주의가 너무 폭주해서 생긴 겁니다. 부자감세, 공동체 유지에 꼭 필요한 규제완화, 친기업 반노조 등 5대 도그마를 밀어붙인 끝에 생긴 위기입니다. 5대 도그마를 한국판으로 얘기하면 ‘줄푸세’입니다. 부자세금을 ‘줄이고’  소수를 위해 공동체 유지에 중요한 ‘규제를 풀고’  친기업반노조 ‘기강을 세운다’. 이것의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입니다.

쉽게 설명해보자. 인간 행위의 여러 동기 가운데 아무것이나 하나를 골라, 그 동기가 개인들을 생산으로 이끄는 유인책이 되는 방향으로 생산을 조직해보라. 그러면 그 특정한 동기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거기에서 다시 귀납적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 동기가 종교적, 정치적 혹은 미학적인 것이라 하자. 또는 자부심, 편견, 사랑, 질시라 해보자. 그러면 인간은 (…) 사랑이나 질시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반면 다른 동기들은 멀고 공허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 밖의 동기들은 생산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업에서 실제로 힘을 발휘해줄 것이라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별된 그 특정한 동기가 ‘현실의’ 인간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 같은 책, 같은 장에서 (36쪽)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나이에 따라 다르고 처한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다니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시험점수를 자녀 사랑의 기준으로 여기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럼 그런 부모의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시험공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아이가 공부가 좋아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기위해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다기보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게 진짜 동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부모는 아이가 진짜 시험공부를 좋아해서 하는 거라 착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적당하면 독이 아니지만, 가속도가 붙어 부모가 시험점수에 매달리고 닦달한다면 사태는 악화될 것입니다. 보통 지금은 아이가 공부에 흥미가 많지 않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에 따른 공부를 하는 건 당연한 법, 오히려 소중하다는 생각한 자녀의 미래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런 실험이 있어요. 영희와 순희라는 쥐 두 마리를 각각 다른 우리에 넣어요. 그런 후 순희 먹이통하고 영희 몸하고 전기로 연결해놔요. 순희가 먹이를 먹을 때마다 영희가 전기고문을 당하게끔 하는 거죠. 처음에 순희는 그냥 맛있게 삼시세끼를 먹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순희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죠. 내가 먹이를 먹으면 옆방 영희가 고통 당한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겁니다. 옆방 영희쥐가 고통을 당한다는 걸 안 후 순희쥐는 먹는 걸 포기합니다. 쥐마저도 먹는 걸 포기합니다.

한국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줄 테니 마을기업을 만들어라.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라.’ 부산합니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합의한 사회적 기본법을 빨리 통과시키자!’ 하며 으싸으싸하고 있습니다. 경제라는 단어를 놓고, 한쪽에서는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인간중심의 생각을 가지고 먹고살게끔 토대를 만들자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 세대에게 자본주의의 문제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훨씬 더 포괄적인 산업 문명의 문제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는 이점을 보지 못한다.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느라 기계제 시대의 도전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용감한 자라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현대가 처한 위험은 이미 경제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 과학적 야만주의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다. 문제가 어떤 차원의 것인지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엘리트주의와 경영자주의를 신봉한다. 그들은 사회 전체가 경제 체제에 좀더 가까워지도록 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경제 체제 그 자체는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유토피아를 이상으로 여기게 만들어, 개인을 나보다 똑똑한 자들이 짜준 질서에 따르고 지지만하면 되는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믿는다. ‘진정한 민주적 사회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스스로 계획하고 조정하여 산업사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고.  이처럼 의식적이고 책임 있는 행동이야말로 복합사회에서 자유를 체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맥락적으로 사고하게끔 단련하지 않으면 이러한 노력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 같은 책, 같은 장에서 (48쪽~49쪽)

 

1964년에 죽은 칼 폴라니는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커다란 세계전쟁이 발발한 위기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시대를 관찰하고, 커다란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인간적으로 좋은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랬던 사람입니다.

경제와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칼 폴라니가 답해줍니다.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 참고도서 :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홍기빈 옮김/책세상)

글.사진즉문후답ㅣ아이쿱 시민기자 (한밭iCOOP)​

원글은 [아이쿱기자단]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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