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수출에 목숨 거는 사고방식 버려야

중국 쇼크?

이번 주에는 광복절도 들어 있어서 긴 시야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글을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중국 얘기가 우리 언론을 온통 뒤덮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이 11일과 12일 달러화 대비 위안화 고시 환율을 각각 1.62%, 1.86% 올렸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각국의 증시가 뒤흔들리고 원자재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나라가 됐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거죠.

우리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중국은 기존에도 통화 가치를 과하게 억누르는 환율 조작국의 오명을 들어 왔는데, 이번에 보다 노골적인 환율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 (<조선일보>) (☞바로 가기)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급감할 것이고 엔화에 이어 위안화마저 가치가 떨어지면, 가뜩이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수출은 급락할 것이다(<동아일보>, <중앙일보>). (☞관련 기사 : [사설] 환율 전쟁 불사하는 중국發 위기, 우리의 활로는 있는가, 중국 ‘근린궁핍화’에 무기력한 한국)
한국 신문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른바 “조중동”의 보도인데, 진보적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이런 “노골적인 환율 조작”, “환율 전쟁”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은 오히려 “중국의 조치는 환영할 만한 진전”이라며 “시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중국이 환율 유연성을 키운 것은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즉 IMF는 중국은행의 조처가 2013년 중국 3중전대회에서 한 약속(시장 역할의 증대)을 이행한 거라고 보는 거죠.

중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의 단기 정책과 더불어 장기 전략을 동시에 고려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안화의 국제화라는 장기 전략입니다. 그 첫 번째 고지가 위안화의 IMF 통화 바스켓 편입인데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환율 유연성’을 높여야 합니다.

인민은행이 이번에 ‘기준 환율 고시제도’를 도입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전 날의 시장 가격을 참고해서 중앙값을 고시하고 하루 변동 폭을 2%까지 허용하겠다는 거죠. 위안화 환율 결정 공식을 발표한 셈이고, 그만큼 위안화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이 가능해졌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IMF 환영 논평의 배경입니다.

물론 IMF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국(유일하게 비토권을 가지고 있죠)으로선 겉으론 환영, 속으론 반대입니다. 위안화가 SDR을 구성하는 통화가 되고 중국이 IMF 기금의 지분율을 높이고 급기야 결정권을 강화한다면 국제기구에도 실제의 경제력이 반영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미국 정부와 의회의 논평 방향은 정반대로 나타났고 우리의 보수 언론은 미국 의회의 주장을 주로 인용했습니다.

이런 장기 전략을, 단기적으로 위안화 평가 절하가 절실할 때 실행하면 “꿩 먹고 알 먹기”가 되겠죠. 객관적으로 중국 위안화 가치가 떨어질 이유는 뚜렷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시죠.

<그림1> 각국의 환율 추이

왼쪽 그림을 보면 지난 1년 6개월여 동안 위안화가 원, 엔, 유로에 대해서 계속 절상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08년 이래 미국, 유럽, 일본이라는 3대 선진경제권이 ‘양적완화’를 했기 때문이죠.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 속에서 이런 환율 추이는 중국의 수출증가율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호들갑처럼 중국이 곧 망한다거나 단기적으로도 경착륙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예상치 못한 쇼크 때문에 경착륙한다 하더라도 현재 중국 정부는 힘을 동원해서 단기에 수습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2015년 상반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공식적으로 7%였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중국의 개방 이래 경제성장율 추이를 보면(<그림2>) 현재의 성장률 저하를 급전직하의 위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림2> 중국의 경제성장율

또 <그림3>을 보면 중국의 수출증가율 역시 분기별 변화를 품고 있는 가운데 (저하 추세 속에서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3> 중국의 수출

중국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설비투자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중국 경제의 성장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지만 중국의 미개발 지역을 감안하고, 또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을 고려한다면 그 속도 역시 급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도 2020년대가 되면 3-4%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장기적 예측은 말 그대로의 느낌일 뿐이지만, 중국과 그래도 유사한 동아시아의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이 걸은 길도 그랬다는 <그림4>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림4> 한국, 중국, 일본의 성장률 비교

‘중국 쇼크’는 중국의 장단기 전략/정책의 결과입니다. 물론 우리 경제에는 또 하나의 악재입니다만 능히 예상할 수 있었던 쇼크였습니다. 우리 주가가 빠진 건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때문입니다. 11일과 12일 외국인은 총 3347억2516만원어치를 순매도했습니다. 원화 가치도 덩달아 더 떨어질 거라는 예상 때문이겠죠.

하지만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져올 충격을 미리 흡수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옐런 의장의 성향으로 볼 때 이 사건은 미국의 연방 금리 인상을 늦추거나 인상폭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 위안화. ⓒ연합뉴스

광복 70년, 우리 경제의 앞날 – “헬 조센”

8월 10일 통계청은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친절한 자료를 펴냈습니다. 60~70년의 일관 통계를 작성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니(통계 작성 기준이 다르고 물가상승률이나 환율 변화도 감안해야 하니까요) 정부의 공식 장기 통계를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바로 가기)
깔끔하고 재미있는 그림이 여럿 있는데, 불행히도 우리 경제와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그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컨대 분배 관련 통계, 하다못해 지니계수의 장기 추이도 없습니다. 의도적인 게 아닐까, 의심할 만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 경제는 해방 후 어느 나라보다도 평등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지니계수로 보나 피케티 지수로 보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평등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OECD 세계 1위” 50개의 통계 중 상당 수는 이런 불평등의 원인이거나 결과입니다. 1인당 사교육비 지출, 대학교육 가계부담,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비율, 가계부채 증가속도와 수준, 자살률, 노인빈곤율, 출산율과 노령화지수 등등이 그러합니다. 결국 주관적 행복지수 역시 세계 최하위 국가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유행어, “헬 조센”은 이런 상황을 단 세 글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여전히 과거의 경제 전략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동개혁, 공공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이라는 4대 개혁은 모든 걸 시장에 맡겨 각 부문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주장이죠.

돌이켜 보면 1997년 IMF 구제금융의 조건이었던 4대 구조개혁에도 노동시장, 금융시장, 공공부문개혁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만 재벌개혁 대신 교육개혁이 들어간 겁니다. 조금 이상하죠? 과잉투자로 인한 외환위기와 현재의 과소투자 침체에 대한 처방이 똑같다는 얘기니까요.

말하자면 어떤 증세에도 처방하는 만병통치약입니다. 현재의 불평등과 저성장을 낳은 바로 그 전략, 즉 “줄푸세”가 선무당의 주문처럼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전 세계의 장기침체, 동아시아 정세의 급변 앞에서, 맹수에 쫓긴 타조가 머리를 땅 박는 것처럼 아예 현실을 외면하는 거죠.

광복 70년, 이제는 우리의 오랜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평등이 우리 사회의 활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국내의 총수요를 늘리고(부자들은 남는 돈을 저축하는데 지금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의 소득은 모두 소비에 쓰일 테니까요), 장기적으로 교육과 건강의 평등은 개인과 중소기업의 창의성을 북돋습니다. 또 중장기적으로 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투자도 절실합니다. “소득주도 성장”이 바로 그런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수출과 투자에 목숨을 거는 사고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지난 50년 우리의 경제사에서 비롯된 미신입니다.

<그림5> 한국의 수출규모와 무역의존도


(출처: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 p9 (통계청 펴냄))

<그림5>를 보면 우리의 수출규모는, 여느 집단의 진화 그래프와 마찬가지로 S자형 그래프를 보이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 증가는 멈췄습니다. 반면 무역의존도(수출액과 수입액의 합계를 GDP로 나눈 수치)는 우리의 선입관과 달리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까지 감소했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시 한 번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무역의존도가 감소한 시기, 즉 상대적으로 내수가 빨리 늘어났던 시기에 삶의 질도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더 평등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과거와 같이 우리나라의 모든 능력을 수출대기업에 집중시켜서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본 중국 경제의 장기 전망은 이런 예측을 더욱 미덥게 만들겠죠.

광복 70년, 경제 분야에서는 재벌과 수출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욱 다양한 분야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선택과 집중은 더 이상의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평등과 다양성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열어나갈 핵심어입니다. “헬 조센”이라는 아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평등해지고 더욱 다양해져야 합니다.

노동시장에 해고의 자유를 도입할 게 아니라 임금과 노동조건을 더욱 평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강화해서 다양한 삶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금융은 본연의 목적이었던 자금 중개기능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육은 눈앞의 기업수요가 아니라 다양성과 창의성을 북돋는 쪽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개혁을 가로막는 재벌의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광복 70년, 완전히 반대 방향의 개혁, 사회적 타협에 의한 개혁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추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에는 “정부는 G20 국가성장전략 중 1위로 평가받은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수립하였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G20가 박근혜 정부의 성장전략을 1위로 평가했다는 얘긴데, 국제기구 어디에서도 그런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G20 관련 문서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런 평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정부와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는, <코리아네트>라는 기구의 영문 기사(바로 가기)에만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한국인이 틀림없는 이 기구 소속 기자(Wi Tack-whan, Yoon Sojung, Korea.net Staff Writers)가 쓴 기사의 제목이 “G20가 한국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칭송했다”(G20 praises Korea’s 3-year economic innovation plan)였습니다.

당시 우리의 모든 언론이 받아 쓴 이 기사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2014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G20의 주제가 “더 높은 성장”이었고, G20 사무국은 각국 정부에 자국의 성장정책을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4.4%의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계획(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았는데, 이 수치가 G20에서 가장 높았다는 얘깁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즉 엉터리라는 점에서 세계 1위의 계획을 내놓은 겁니다. 이런 문서를 국내 언론이 받아쓰고, 또 다시 대통령이 한 나라의 공식 문서에서 언급하는 코미디가 벌어진 겁니다. 정말 한심한 정부와 대통령입니다. 이러니 “헬 조센”이라는 비웃음, 또는 비명이 나올 수밖에요.

정태인 칼폴라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글은 프레시안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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