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경제위기와 꼭두각시 대통령

 

지난 23일 한국은행은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을 발표했다. 2분기(4, 5, 6월)에 비해 1.2% 성장했다. 2분기 성장률 0.3%에 비하면 무려 4배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년 3/4분기에 견줘 보면 2.6% 성장이다. 1분기 2.5%, 2분기 2.2%에 비해선 조금 나아졌지만, 작년 이맘때 정부가 예측한 3.8%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언론은 메르스로 인한 소비부진에서 벗어난 것(전기 대비 1.1%, 전년 대비 2.0% 소비 증가)이 회복의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했지만 소비는 여전히 성장률을 깎아먹은 요인이었다. 다만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건설투자와 설비투자가 증가(각각 전년 대비 5.2%와 6.8%)해서 그나마 2% 중반대 성장을 거둔 것이다. 만일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거나 기업들이 미래를 불투명하게 본다면 2%대 성장도 앞으로 어려울 거라는 얘기다.

불행하게도 현실이 그렇다. 물론 부총리 말대로 외부 환경이 나쁘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락했고 브라질이나 러시아 등 원자재 수출국이 곧바로 깊은 침체에 빠졌다. 나 홀로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의 성장률도 다시 2%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독일이 주도하는 긴축기조 때문에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등만 늘어나고 있는 유럽연합(EU)까지 전세계가 동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까지 서서히 떨어진다고 해도 전체 수출의 25%가량을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1% 가까이 감소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수출의 17%를 차지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우리 기업의 앞날은 미세먼지 가득한 요즘 날씨와 같다. 당장 재고가 급증하고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관계부처와 구조조정 협의체를 구성해서 연말까지 신용평가를 한 뒤 내년 초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힌 것도 현재의 경기침체가 금융위기로 발전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이 얼어붙고 기업들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지나친 비관과 비판의 늪에서 빠져나와 경제 체질을 바꾸고 혁신을 이뤄 제2의 도약을 이뤄내야 할 것”(9월21일 수석비서관회의)이라고 다그쳤다. 위기 앞에서 머리를 땅에 박는 꿩과 무엇이 다르랴. 필시 “노동개혁”=일반해고의 자유만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관료와 재벌의 감언이설에 넘어갔을 게다. 국회 때문에 경제회복이 안 된다는 생각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홍두깨 같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 추진도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효심의 발로겠지만 실은 경제위기 때 흔히 나타나는 전체주의의 망령이다. 1979년의 경제위기, 1997년의 외환위기, 그리고 2008년 위기 모두 원화 절하와 임금 억제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런 대내외 평가절하가 수출을 급증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수출이 두자릿수는커녕 2%를 넘긴 것도 2013년 2/4분기 딱 한번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량 해고와 임금 억제는 오직 내수 침체만 불러올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한껏 부풀린 가계부채가 폭발할 날도 머지않았다.

경제위기와 민심의 이반을 전체주의로 막으려면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79년 10월26일의 대통령 살해 사건과 전두환의 군사쿠데타가 또한 그랬다. 설마 21세기의 대통령이 이런 비극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지키려는 재벌과 관료의 시대착오적 정책이 자신의 정치생명마저 위협하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꼭두각시놀음에 빠져 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글은 한겨레에서 보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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