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3만 달러의 ‘헬조선’ 이 수수께끼의 답은?

 

원래는 곧 밀어닥칠 경제위기에 관해 쓰려고 했습니다만, ‘한가위 특집호’라는 말을 듣고 오래 망설였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오고 가는데, 가뜩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공포까지 보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맑은 공기 덕에 눈에 잡힐 듯 선명한 차창 밖 풍경에서 옛 기억을 더듬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은 무척 나쁩니다. 30년 가까이 현실 경제를 들여다본 제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렇습니다. 설마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쁠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당시엔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이 두 자릿수로(1999년 8.6%, 2000년 19.9%) 증가하면서 위기를 빠져나왔죠.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미국-유럽-아시아 순서로 경제위기가 전염되면서 전 세계가 모두 침체에 빠진 상태입니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비용을 절감하면 할수록 더욱 깊숙한 위기로 빠져듭니다. 수출은 늘지 않은 채 내수만 축소될 테니까요. 고향으로 가는 차(또는 열차)를 타기 직전, 여러분이 보셨을 ‘노사정 대타협’은 과거와 달리 한국 경제에 독약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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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인 분들은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은 게 언제일까요? 딱 20년 전, 1995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1인당 GDP는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무려 3배나 늘어난 거죠. 그런데 20년 전과 지금, 어느 때가 더 살 만한가요?

백이면 백,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대답할 겁니다. 경제학을 30년 이상 공부한 저한테도 수수께끼입니다. 옛날보다 일을 덜하는 것도 아니고,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자동차·컴퓨터·자동화기기 등 생산설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헬조선’을 외치는 걸까요?

이 수수께끼의 가장 유력한 답은 불평등입니다. 제가 태어난 1960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습니다. 농지개혁과 6·25 전쟁으로 지주계급이 없어지고 월급도 고만고만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 계층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힘들었지만 희망이 있었던 시절이죠. 하지만 어떤 지표로 계산하든 지금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평등해지고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고3 때의 성적으로 대학이 결정되고 학벌이 직업의 정신적·물질적 보상을 결정하는 사회, 더구나 그 격차가 급속하게 벌어지는 사회에선 모두가 경쟁 상대요,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디어는 온통 상위 1%의 삶만 비춰주고 부동산과 주식 투자는 그 세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일로매진한 결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노동만으로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성장률 2%대에 머무르는 시대에 자산가들은 5%의 수익률을 확보하기 위해 임대료를 올리고 있으니 셋방살이마저 힘들어질 겁니다. 보통 아이들에겐 ‘헬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딜레마를 푸는 방법은 협동이다

피를 말리는 경쟁은 오직 목표가 뚜렷할 때만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추격하는 상황에서 경제는 100m 달리기지만 선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경제는 예술이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 세상은 경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딜레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사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부잣집 애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괜찮은 집을 사기 위해 경쟁할수록 대다수 아이들이 집을 가질 수 없는 것도 그것이 ‘죄수의 딜레마’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딜레마를 푸는 비결은 협동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90%는 1인당 GDP 3만 달러라는 수치가 믿어지지 않으실 겁니다. 4인 가족이라면 1년 소득이 1억5000만원 가까이 된다는 얘기니까요. 우리 사회가 평등해져서 그 정도의 소득을 골고루 누린다면 우리는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을 겁니다. 특히 아이들은 1점에 목매달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흠뻑 빠지게 되겠죠. 바로 여기에 미래 경제성장의 비결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때, 창조도 나오는 법이니까요.

차창 밖으로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게 보이실 겁니다. 분명히 아버지 때나 할아버지 때처럼 배를 곯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때는 물질을 모았지만 이젠 마음을 모을 때입니다. 한가위에 모두 모여서 음식을 나누듯 경제를 나눌 때 비로소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글은 시사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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