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아이들도, 산하도 ‘헬조선’

 

2016년 정부 예산안

지난 9월 8일 정부는 2016년 예산안과 2015~2019년 국가 재정 운용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관련 자료 : 정부, 내년 예산 386.7조원… 복지 늘고 SOC 줄였다)

정부 보도 자료의 제목에 따르면 “청년 희망, 경제 혁신, 민생 안정”을 위한 예산이랍니다. 2015년 대비 3.0%(11.3조원) 증가한 387조 원입니다. 그런데 총수입은 2.4% 증가하니까 재정 수지가 악화되고(2015년 GDP(국내 총생산) 대비 –2.1%에서 –2.3%로) 국가 채무는 최초로 GDP 대비 40%를 넘게 됩니다.

정부 스스로 설명한대로 확장 기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도(2016년도) 실질 성장률을 3.3%로 전망했는데 지출이 3.0% 증가한다면 “짠돌이 예산”이 아닐까 싶지만, 지난 7월에 편성한 추가 경정 예산(총지출 9.3조원 증가)을 포함하면 5.5%가 증가하는 거니까요.

언론에서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가 채무가 GDP의 40%를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지만 현재의 규모만 놓고 보면 정부 말대로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정부의 채무가 ‘과다’하다고 할 때는 대체로 90%정도(WEF 90%, Cechetti 등 85%)를 기준으로 하니까요.

문제는 정부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갔다는 데 있습니다. 연도 별로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을 보면 2012년 “2015년엔 20% 후반대로 진입할 것”, 2013년 “2017년까지 30%대 중반 수준으로 하향 안정화할 것”, 2014년 “단계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 30% 중반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 그리고 올해 “2018~2019년까지 적자를 줄여나가서 40%대 초반에서 관리할 것”이라고 계속 후퇴했으니까요.

20% 후반에서 40% 초반이면 GDP의 10%포인트 이상 나라 빚이 늘어났고, 당연히 현재의 공언도 믿을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은행이 2012년에 발간한 <부채 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 부채>를 보면 정부 부채는 2030년경에 GDP의 100%를 넘게 됩니다. 실제 경제 성장률이 당시 전망보다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라 빚이 ‘과다’해지는 상황은 훨씬 더 빨리 올지 모릅니다. “괜찮을 것”이라는 정부의 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습니다.
성장률 예측이 매년 틀리는 이유

정부는 이렇게 중기 전망이 계속 틀리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습니다. 이번에도 최경환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세계 경제를 전망하는 기관에서도 2015년에 글로벌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봤는데…정부는 이런 전망을 참고하기 때문에…우리나라 경제 성장률도 올라갈 것이라고 봤다”고 변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몇 년째 강조하는 대로 (국제기구의 세계 경제 전망치 자체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만) 국내 소비 증가율을 3%대로 전망하는 한, 경제 성장률은 1%포인트 가까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내년 경제 성장률을 3.3%로 전망하고 예산안을 짰다고 합니다만(보도 자료에는 구체적인 전망치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소비 증가율을 3% 내외로 잡았다면 또 한 번 1%포인트 이상 틀릴 겁니다. 그리고 내후년 예산은 더욱 더 적자 편성이 되겠죠.

▲ [그림 1] 대차대조표 불황의 전개와 극복 방안. 한국은행이 2012년에 펴낸 <부채 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 부채> 103쪽에서 인용했다. ⓒ한국은행

[그림 1]에서 보듯이 지금 우리나라의 가계는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져 있습니다. 즉 빚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거죠. 그러니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가계의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노력을 반전시켰죠. “빚내서 집사라, 빚내서 전세금 올려 주라”는 정책이 바로 그겁니다. 이제 와서 “그런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최경환 부총리의 얼굴은 얼마나 두꺼운 걸까요? 단언하건대, 지난 7년여 동안 토목 경기와 주택 거품을 일으켜서 단기 경제 성장률을 높이려는 꼼수, 또는 무식함이 현재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낳는 주범입니다.

이런 정책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 경제 성장률이 높아져서 세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돈이 남아도는 곳의 세율을 높여서 재정 전전성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과 자산가들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세수를 확보한 뒤에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사용해야 하는 거죠.

[그림 1]에서 보듯이 “대차대조표 불황” 때는 금융 완화 정책을 사용해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풀린 돈이 빚을 갚는 데 쓰여서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부 말대로 확대재정 정책을 쓰는 건 올바릅니다. 문제는 어디에 쓰이는가에 있죠.

 

청년 일자리 정책은 효과가 있을까?

아래 [표 1]은 이번 예산안의 “분야별 재원 배분”입니다.

▲ 기획재정부가 펴낸 “2016년 예산안 편성 및 2015-2019년 국가 재정 운용 계획 수립” 4쪽에서 인용했다. ⓒ기획재정부

예년의 예산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점은 7번의 SOC(사회간접자본) 분야가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드디어 건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나 싶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대답처럼 지난 7월의 “추경에 SOC 예산이 1조3000억 원 포함돼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24조6000억 원으로 증가”한 겁니다.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은 6.2%(7.2조원) 증가했습니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복지 지출 비중은 31.8%로 사상 최대치”라고 자랑했지만 실제론 추경 때 늘어난 걸 빼면 증가액은 2.5조 원입니다. 2016년의 공적 연금 지출 자연 증가분이 3조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량적 복지 지출은 오히려 감소한 거죠.

정부는 일부러 일자리 예산을 분리해서 12.8%(1.8조 원) 증가했다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중 1조 원 정도는 “노사정 대타협”을 전제로 실업 급여를 인상하고 수급 기간을 연장하는 데 쓰는 겁니다. 즉,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노동 개혁”)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실업자들에 대한 보장성 강화도 없다는 거죠. 국민 세금으로 취업자와 실업자를 이간질 시키는, 고약한 잔머리입니다.

정부는 제목에서부터 “청년 희망 예산”을 강조합니다만, 대표 정책인 임금 피크제가 청년 일자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표 1]에서 보듯이 청년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관련 예산을 줄이면서 과연 ‘청년 희망’이 생길까요?
산하를 망치고 경제를 망치는 정부

[그림 1]에서 보듯이 민간과 기업의 디레버리징이 진행되는 동안은, 금융 정책보다 재정 정책이 더 효과적입니다. 문제는 그 돈을 어떻게 확보해서 어디에 쓰는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경기 자극 정책은 이른바 “4대강 사업”이었습니다. 무려 22조 원이 투입된 이 사업은 “녹조 라떼”로 상징되는 환경 재앙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한국수자원공사가 진 빚의 원리금 상환을 재정에서 충당하기로 했으니까요. (☞관련 기사 : ‘4대강 사업’ 관련 부채 5.3조원 세금으로 상환)

9일 이미경, 김상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수자원공사 4대강 부채 지원 방안’에 따르면 정부가 수자원공사의 4대강 부채 원리금 상환을 위해 지출할 자금은 원금 2조4000억 원과 금융 비용 2조9000억 원 등 총 5조3000억 원에 달합니다. 수자원공사가 부담할 5조6000억 원도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갈 수밖에 없겠죠. 건설 기업의 일거리를 만들고 반짝 토목 경기를 일으킨 대가는 이렇게 참혹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강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 예고한 ‘산악 관광 진흥 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산림 지역을 훼손하고 난개발을 조장할 게 뻔한 조항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른바 관광 테마 파크 정책을 뒷받침할 법률입니다. 요존국유림(생태계 보전·상수원 보호를 위해 보존할 필요가 있는 국유림), 산지관리법이 정한 보전 산지, 농지법상 농업 진흥 구역과 농업 보호 구역, 백두대간보호법상의 보호 지역, 군사 기지·시설 보호법에 따른 보호 구역 등 전 국토에 예외가 없습니다. 특히 대기업이나 대형 사업자가 중심이 될 민간 투자자에게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수 있는 환지 개발 방식을 허용한 건 대규모로 산림을 훼손하겠다는 얘기죠.

비행기가 공항에 내리기 위해 고도를 낮추면, 마치 바리깡으로 머리를 민 듯, 산림이 일직선으로, 또는 구불구불 산림이 파헤쳐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키장과 골프장이죠. 이 정부가 말하는 테마파크는 훨씬 더 규모가 큽니다.

4대강은 썩고, 강 주변은 황폐한 자전거 도로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제 산마다 폐허가 된 테마 파크가 녹슬어 갈지도 모릅니다. 지금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아이들의 미래와 함께, 의구해야 할 산천마저 “헬 조선”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정부 부채보다 훨씬 더 다급한, 가계 부채 문제, 그리고 기업 부채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깔끔하게 만든 다음 작품을 감상하시죠. (☞관련 기사 : 우리들의 일그러진 월급 통장)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글은 프레시안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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