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임박한 위기

 

“서프라이즈?”

러시아를 방문한 최경환 부총리가 3분기 경제 성장률 1.2%가 “서프라이즈하다”고 말했답니다. 지난 2분기의 성장률이 0.3%에 비하면 네 배나 증가한 수치니까요. 한 발 더 나가서, “추경과 정부 소비 진작책 등의 효과가 ‘상당히’ 반영된 것”이라고 은근히 자화자찬까지 했습니다.

곧 총선에 나설 정치인의 자기 광고를 탓할 수야 없겠지요. 언론들 역시 메르스 이후 민간 소비가 살아나면서 경제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평했고 진보 언론들은 빚에 의한 소비 증가이니 자랑거리가 못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관련 기사 : 3분기 1.2% 성장이 서프라이즈 아닌 ‘빚 성장’인 걸 모르나)

정말 그런지 아래 표를 보실까요?

매 분기 보여드리는 표니 프레시안 조합원도 이젠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이 표 안의 숫자는 직전 분기 대비 성장률입니다. 즉, 3분기(7, 8, 9월) 성장률이란 2분기(4, 5, 6월)에 비해서 얼마나 GDP(국내총생산)가 증가했는지 보여주는 수치지요. 괄호 안의 수치는 전년 동기에 비한 성장률, 즉 맨 오른쪽 사각형 괄호 안의 수치는 2014년 3분기에 비교한 성장률(연률)입니다.

▲ [표 1]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 한국은행 ‘3/4분기 국민 총생산(속보)’ 1쪽. ⓒ한국은행

3/4분기의 성장률은 지난 2/4분기에 비해선 1.2%이고,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2.6%(괄호 안의 수치)입니다. 2분기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꽤 높은 수치가 나온 거지 1년 전에 비교하면 고만고만한 성장입니다(1분기에는 2.5%, 2분기에는 2.2%니까요). 4분기에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금년의 연간 성장률도 2.5% 부근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다음으로 모든 언론이 받아 쓴 것처럼 소비가 성장을 주도했는지 보겠습니다.

분기별로 보면 –0.2%에서 1.1%로 증가했으니 과연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메르스로 인해, 2분기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소비가 회복된 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작년 3분기에 비해서는 2.0% 증가한 데 불과합니다. 전체 성장률 2.6%에도 미치지 못한 거니까 소비는 오히려 성장률을 깎아 먹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럼 어느 분야의 지출이 증가한 걸까요? [표 1]을 보면 건설 투자와 설비 투자가 각각 4.5%(전년 동기비 5.2%)와 2.0%(6.8%)로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건설은 최 부총리가 자랑한 정책 덕에 늘어났을 테고, 설비 투자는 한국은행의 설명으론 기계류 중심으로 증가했습니다. 만일 건설과 설비 투자의 증가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경제 성장률은 2.5%를 달성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소비 절벽”과 가계 부채 대책

이렇듯 한국은행의 GDP 통계를 근거로 소비가 성장을 주도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지금 보통 사람들의 소비는 가계 부채에 짓눌려 있습니다. 한 민간 금융 기관에선 “소비 절벽”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관련 기사 : 내년도 ‘소비 절벽’ 오나…관건은 경제 심리 회복)

▲ [그림 1] 소비자 심리 지수 추이. ⓒ한국은행

[그림 1]에서 보듯이 소비자 심리 지수는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주거비가 상승하는 동시에 가계 부채가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앞으로 소비가 절벽에 부딪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더구나 집값과 전셋값을 올려줬다는 건 소득이 하층에서 상층으로 이전됐다는 걸 의미합니다. 부자들의 소비 성향이 더 낮으니까 앞으로 소비 증가율은 더 떨어질 겁니다. 즉, 정부의 공휴일 지정이나 개별 소비세 인하와 같은 정책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소비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2일 정부는 ‘가계 부채 종합 관리 방안’을 발표했죠. 핵심은 주택 가격이나 소득 대비 대출 금액이 큰 경우 원칙적으로 분할 상환을 적용한다는 겁니다.

10월 28일 은행연합회와 시중 은행들은 “내년부터 LTV가 60%를 넘는 신규 대출은 (…) 애초 검토했던 60% 초과분뿐 아니라, 전체 원금을 나눠서 갚도록 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기사 : 담보 대출 집값 60% 넘으면 대출 전액 분할 상환 검토)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2억1000만 원을 대출받은 경우(즉, LTV가 70%인 거죠), 7월 구상이라면 60% 초과분인 3000만 원(2억1000만 원-1억8000만 원(3억 원☓60%))만 대출 약정 기간에 분할 상환하는 거지만 이제 전체 대출 2억1000만 원에 대해서 매년 원리금을 나눠 갚아야 하는 겁니다.

즉, 빚을 낸 다음 해부터 원금도 일부 갚도록 해서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은행도 가계 빚을 빨리 돌려받으려는 겁니다. 금융 기관의 문제는 그 동안 남아도는 돈을 빌려 줄 곳이 없다는 거였는데 이젠 더 이상 위험한 대출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부실 채권이 되지 않도록 빨리 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금융 위기의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좀비 기업”과 구조 조정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면서 정부가 기업 구조 조정에 나섰다는 얘기는 지난 번에 이미 전해 드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정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고 그 방법도 채권단에 맡기는 게 아니라 구조 조정 회사인 유암코에 맡기는 것으로 변경됐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얘깁니다. (☞관련 기사 : 유암코, 11월부터 본격 부실 기업 구조 조정 착수)

금융위원회는 22일, ‘기업 구조 조정 전문 회사 설립 운영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시중 은행의 부실 채권 관리 전문 회사 유암코(연합자산관리)의 재원을 늘려, 11월부터 최대 28조 원 규모의 기업 구조 조정에 착수하겠다는 겁니다.

유암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농협중앙회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 6개 은행이 출자해 설립한 민간 중심의 부실 채권 전문 회사로 자산 유동화와 기업 구조 조정 업무 등을 맡아왔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외부 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 기업(영업 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이자 보상 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 비중은 2009년 12.8%에서 지난해 15.2%(3295개)로 증가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대 중국 수출이 급감하면 한계 기업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 금융 시장은 빡빡해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가 계속 증가할 수는 없겠죠. 즉, 이번 분기의 성장을 주도한 설비 투자는 앞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부양책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본 가계 부채 대책은 그 자체로 주택 수요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돈 빌려 집을 사도 집값이 오르기 전에 원금까지 갚아 나가야 하니까요.

몇 번 말씀드린 대로 건설 경기를 일으키기 위해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동시에 집값을 올리려면 가계가 빚을 늘려서 집을 사 줘야 합니다. 즉, 현재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 부채 증가는 한 몸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런 부동산 부양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주택 공급이 이미 과잉 상태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15일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주택 인·허가 물량은 총 45만2185가구로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2%나 급증했습니다. 건설사들이 하반기 들어 아파트 분양 등을 더욱 늘리고 있어 올 한 해 전체 인·허가 물량이 70만 가구에 육박하거나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2013년 장기 주택 종합 계획에서 추산한 연평균 주택 수요는 39만 가구인 데, 작년에 50만 가구가 이미 공급됐고 금년에 70만 가구가 더 증가한다면 이제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기사 : 주택 인·허가 폭증, 공급 과잉 우려)

이런 상황에서 건설 투자가 더 증가할 거라고 믿을 수는 없겠죠. 아마 정부는 공공 쪽의 건설을 늘리려고 하겠지만 정부 빚 역시 GDP의 40%를 넘어섰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기업 부채가 문제였지만, 가계와 정부는 여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기업, 가계, 정부가 동시에 문제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도화선 가운데 하나만 불이 붙어도 경제위기는 현실이 되고 말 겁니다. 물론 정부는 다음 대선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폭발을 막으려고 할 겁니다. 정부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죠.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 국정 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그 효심 하나는 칭찬 받을 만합니다.

그래선지 역사 해석을 획일화하겠다는 발상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경제 위기와 결합되면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글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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