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복지는 망국, 구조 조정은 구국?

2060년까지의 장기 재정 전망

아마도 KTX 안이었을 겁니다. 멀리 TV 화면에 “기획재정부, 건강보험 2025년 고갈” “노인장기요양보험도 고갈” 등의 자막이 떠오른 것은.

국민연금은 (부분) 적립식이니까 고갈이 문제가 될 수 있고 그 동안 꽤 많이 논의된 주제지만 국민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의 고갈이라니,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릴까요? 국민건강보험은 내 보험료를 적립해서 나중에 쓰는 적립식이 아니라 그해 들어온 돈으로 그해의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식에 가까우니까요.

집에 와서 찾아 봤더니 기획재정부가 ‘2060년 장기 재정 전망’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기획재정부 홈페이지에 “장기 재정 전망”으로 검색했더니 “최 부총리 ‘저부담-고급여 체계 사회 보험, 지속 가능성 없어'”라고 제목이 뜹니다. 부총리 개인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판단엔 이번 재정 전망의 고갱이가 사회 보험 문제라는 거죠.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러나, 보고서 본문을 찾았지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에는 7쪽의 보도 자료 포함 28쪽짜리 자료만 있습니다. 2014년 말부터 민간위원 8명과 8개 부처 국장 27명이 작업을 했다는데 겨우 이런 빈약한 보고서라면 그건 분명 예산 낭비입니다. 똑같은 목적으로 작성된 국회 기획예산정책처의 장기 재정 전망은 146쪽짜리로 상세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관련 자료 : 기획재정부 ‘2060년 장기 재정 전망’ , ‘국회예산정책처 ‘장기 재정 전망’)

2016년에서 2060년이면 한 세대가 넘는 장기 전망입니다. 이런 전망은 인구 증가율이나 경제 성장율 같은 기본 변수 값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어느 경제가 30년 동안 매년 1% 성장하고 다른 경제는 2% 성장했다면 30년 후 두 경제의 GDP는 무려 46%나 차이가 나게 되고(35% 대 81%), 만일 100년 동안 그랬다면 54배나 벌어집니다.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경제 성장률 0,3%포인트의 차이) 기획재정부는 2060년 국가 채무가 62.4%라고 전망한 반면, 국회예정처는 168.9%라고 전망한 거죠.

따라서 이런 분석은 여러 집단이 시나리오를 짜서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획재정부의 보고서에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성장률 추계(2014년 12월)를 인용했는데 2016년에서 20년까지는 3.6%, 20년대에 2.6%, 30년대 1.9%, 40년대 1.4%, 50년대 1.1% 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현실성이야 따질 수 없지만 당장 내년부터 5년 동안 3.6% 성장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낙관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 KDI가 9일 금년 성장률이 2.6%에 머무를 것이라고 발표했으니까요.

이 GDP 추계에 현재의 조세 부담률과 사회보험요율을 곱하면(“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는 전제”) 정부의 총수입이 계산될 테고 마찬가지로 총지출도 계산할 수 있을 겁니다. 총지출은 다시, 현재의 법률상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되는 항목(의무 지출)과 정부가 여러 목적을 위해(예컨대 성장률을 올리기 위한 부양 정책) 편성하는 재량 지출 항목으로 구분됩니다.

기획재정부는 재량 지출을 경제 성장률만큼 늘리는 시나리오 Ⅰ(즉 2040년대에는 1.4% 늘리는 거죠)과 매년 재량 지출의 10%를 삭감하는 시나리오 Ⅱ를 구분해서 재정 수지와 국가 채무가 어떻게 되는지를 계산해 냈습니다. 시나리오 Ⅰ의 경우 국가 채무는 2060년 62.4%까지 상승하고 시나리오 Ⅱ의 경우엔 38.1%로 오히려 떨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누구라도 국가 빚이 적은 쪽이 더 나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겠죠. 그래서 “일반 재정 부문은 세출 구조 조정 등 관리를 잘 해나갈 경우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재원 대책 없이 새로운 의무 지출 프로그램이 도입되도록 방치하거나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할 경우 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어 지출 증가율이 적정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재정 준칙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라는 최 부총리의 발언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막상 이 보고서를 만든 최경환 정부는 경제 성장률을 훨씬 넘는 속도로 재량 지출을 늘려왔습니다. 만일 그 ‘재정 준칙’이 있었다면 매년 추가 경정 예산을 편성해서 상반기에 집중 지출하는 현재의 정책도 불가능했을 테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대부분의 사회 보험은 재량 지출이 아니라 의무 지출입니다. 해서 최 부총리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 보험 부문은 현재와 같은 ‘저부담-고급여 체계’ 하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합니다.

이러 저러한 가정을 다 빼 버리고 나니 나라 빚의 책임은 사회 보험, 즉 복지에 있다는 얘기가 된 거죠. 1년 6개월 동안 전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부동산 경기 부양에 재정을 쏟아 부은 부총리가 할 얘긴 전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답은 또 다시 4대 부문 구조개혁, 또는 다른 말로 “선제적 구조 조정”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통령도 목숨 거는 “구조 개혁”, 과연 나라를 구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한 번 국회에 모든 책임을 돌렸습니다. 지난 7일 대통령은 여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아들딸들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경제 관련 입법은 물론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공공 서비스의 규제 완화를 담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7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어서 청년들이 학수고대하고 있고, 80% 가까운 기업들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역시 지주 회사에 관한 규제를 완화시키는 내용입니다)을 원하고 있답니다. 또 “노동 개혁 5법”은 “우리 아들딸한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부모 세대한테는 안정된 정년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테러를 감행하기 만만한 나라”가 됐다는 주장까지 했죠.

앞으로 경제가 나빠지는 것도 다 국회 책임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늦어지면 다 죽고 난 다음에 살린다고 할 수 있겠느냐. 죽기 전에 치료도 하고 빨리빨리 살려 놔야한다”는 거죠. 한 언론이 박대통령의 말이 과연 사실인지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관련 기사 : ‘쟁점 법안’ 박 대통령의 확신과 맹신 사이)

이른바 ‘구조 개혁’ 또는 ‘구조 조정'(<위키피디아>에는 ‘structural adjust’라는 항목만 있습니다)이 우리 문제를 다 해결할까요? 구조 조정이라는 말은 IMF의 구제 금융 조건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우리가 1990년대 말에 다 겪은 내용이죠.

한 마디로 대내외 평가 절하입니다. 즉 무역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지금 한국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임금과 재정 지출을 줄이라는 거죠. 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장의 개방, 서비스 시장의 자유화,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하라는 요구입니다. 이른바 4대 부문의 구조 개혁도 이 범주에 속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겠죠.

현재 세계의 장기 침체를 낳은 바로 그 정책들, 시장 만능의 정책들입니다. 그야말로 철 지난 처방전들이죠. 뿐만 아닙니다. 이 정책들이 시행되면 국내의 총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이 ‘구조 개혁’은 수출이 증가하고 투자가 늘어나야만 그나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겠죠. 지금 수출이 마이너스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내수마저 줄이자는 거니까요. 지금은 국민의 소득이 올라가야 하고 국가가 증세를 통해서 복지를 늘려야 경제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지를 줄이고 임금마저 줄이자는 정부, 이게 제 정신을 가진 정부일까요? “혼이 비정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입니다.

장기 재정 전망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와 같은 국민 부담률(조세와 사회 보험료를 합쳐서 GDP로 나눈 값)을 그대로 두고 오히려 복지(사회 보험과 의무 지출)와 정부 투자(재량 지출)를 줄이는 건 경제를 확실히 망치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은 “내수 확대형 사회적 대타협”입니다. 크나 큰 정치력이 필요한 겁니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성과로 자랑하는 “17년 만의 사회적 합의”는 한 마디로 내수 축소형 사회적 합의입니다. 하나하나가 다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물론 내수 확대를 위한 증세나 생태 투자 모두 어렵습니다. 정치적 반대가 대단히 큰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수 확대형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 즉 녹색 복지의 정치는 어때야 할까요? 다음번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원글은 프레시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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