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지금 ‘노인 정치’에 필요한 것

총선을 앞둔 지금 ‘노인정 gerontocracy’까지는 몰라도 노인 정치라는 말이 과도한 표현은 아닌 듯하다. 현 집권 세력은 지금 70세가 훌쩍 넘은 인사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두 쪽으로 갈라선 야권은 각자 비중 있는 70대 인사들을 모셔와서 좌장의 역할과 큰 권력까지 부여하며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를 한국 사회의 퇴행을 보여주는 증후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많은 나라에서 40대 총리와 대통령이 나오고 있으며 스웨덴 같은 곳에서는 32세의 교육부 장관이 나온 현재 세계의 추세에 비추어볼 때 이게 웬 말이냐는 한탄이다.

이는 부당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역할과 능력을 판별함에 있어서 물리적 연령만을 따지는 것은 뒤집힌 연령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각 정치 세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70대 인사들은 1960년 이후 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현존의 한국 자본주의 정치·경제 모델 건설 과정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고, 그러한 실적에 대한 오랜 평가가 누적되어 이들의 정치적 자산을 이루고 있다.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군계일학의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을 찾기 힘든 정치권으로서는 이들에게 의지하려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노인 정치 양상에서 우려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은 기존 한국 자본주의 모델이 밑동에서부터 무너지고 있기에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의 시기다. 그런데 이 70대 인사들은 기존 모델의 형성 과정에 깊이 간여해온 이들이며, 그들이 생각하는 현 위기의 진단과 해법이라는 것 또한 이 모델을 어떻게 수정하고 보수하여 새로 작동시킬 것이냐는 생각의 틀 안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결코 기존의 모델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구 및 연령 구조의 변화는 노동인구의 부족을 낳고 있으며 이는 다시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쟁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 누적되어온 불평등은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증가일로에 있는 가계부채는 현재의 틀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비명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선봉대라고 믿어온 재벌기업 체제는 현재의 산업 기술 구조에서 계속 뒤처지고 있으며, 세계 경제 전체가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시야를 경제에서 돌려 정치, 안보, 사회, 교육 등으로 돌려도 사방에서 기존 모델의 붕괴 증후가 보인다.

지금의 난국에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내기 위해 절실한 것은 기존 한국 자본주의 모델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유연한 현실 인식의 틀이지 기존 모델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경륜과 지혜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과제에 대해 반드시 젊은 사람들이 더 뛰어나리라는 법은 없으며, 기존 모델을 운영해본 경륜과 지혜 또한 필요한 요소라는 것도 틀림이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경륜과 지혜의 70대 인사들이 과감히 생각의 틀을 넓히면서 변화되어 가는 세상과 무너져 가는 기존 틀의 간극에서 매일매일 악전고투를 치러야 하는 현장의 이야기를 겸허히 듣고 그러한 상황을 잘 아는 이들과 힘과 지혜를 합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노인 정치가 과연 이러한 ‘혁신’을 보여줄지는 최소한 지금까지 본 모습으로는 회의적이다. 노인 정치의 첫 장면은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 사건이었다. 어떤 인물은 거기에서 이승만을 국부라고 치켜세웠다가 물의를 빚었고, 이를 본 다른 인물은 이승만은 민주주의 파괴자라고 말한다. 솔직한 느낌은, 서구 열강과 근대화의 물결이 덮치고 있던 조선 말기에 왕실의 위신을 올리겠다고 경복궁 중건을 명령했던 흥선대원군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 이야기는 한참 전에 역사가들이 냉정하게 평가하도록 놓아줬어야 한다. 정치가 내놓아야 할 대답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생도 미래도 도모하기 힘들어진 이 불확실성의 세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정책적, 제도적 제안과 이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력이다.

지금 중책을 맡게 된 70대의 인사들이 이 과제를 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바뀌는 지금은 전방 100m를 봐야지 백미러를 볼 때가 아니다.

원글은 경향신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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