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바이블 「호세마리아 신부의 생각」

호세마리아신부의생각 입체표지

 

 

1. 저자소개

지은이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1915-1976)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창시자이자 오늘날 협동조합운동의 준거가 되고 있는 ‘몬드라곤 10원칙’의 사상적 아버지.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41년부터 1976년 영면하기까지 36년간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일구는 데 헌신했다. 세 살 때 사고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는데, 그 때문에 착용한 선글라스와 오래된 자전거가 작은 마을을 누비던 신부의 상징이 되었다. 현 몬드라곤 대학의 전신인 기술전문학교(1943), 최초의 노동자협동조합 울고(1956), 협동조합개발은행 노동인민금고(1959), 사회보장기구 라군-아로(1959), 공업기술연구협동조합 이켈란(1974) 등이 신부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이들 조합과 교육, 금융, 사회보장 기구들이 오늘날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옮긴이 박정훈

한양대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멕시코로 건너가 7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전문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7년 귀국한 뒤 사회공공연구소와 사단법인 정치바로에서 일했다. 번역한 책으로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게릴라의 전설을 넘어》, 《마르코스》 등이 있다.

감수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서울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참여정부에서 국민경제 비서관과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을, 참여정부를 나와서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본부장,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넘어 신뢰와 협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 숙의 민주주의로 완성되는 공공경제, 미래 세대의 삶을 지지하는 생태경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 추천의 글

호세 마리아 신부는 “정의와 사랑의 메시지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당당하게 전파할 이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신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의 전달자가 되었다. 그가 전하는 협동의 메시지가 한국인의 영혼 속에도 튼튼히 뿌리내리기를 기원한다.

_하비에르 소틸 몬드라곤 기업(Mondragon Corporation) 총이사회 이사장

 

호세 마리아 신부에게 협동조합은 인간의 존엄이 넘치는 서로 돕는 공동체의 결정체다. 신앙과도 같은 그의 신념이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보다 나은 내일을 창조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_박경서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이사장, 대한민국 초대 인권대사

 

협동이라는 규범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신부님의 생각은 놀라운 통찰입니다. 협동조합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에서도 되새겨봐야 할 중요한 관점입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대로 협동을 통해 우리의 삶터에 기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_박원순 서울시장

 

몬드라곤의 성공요인은 영성과 인성의 융합적 실천에 있다고 생각한다. 혼돈과 절망의 시대, 위대한 영성가이자 탁월한 경영자였던 호세 마리아 신부에게서 다시금 희망의 불씨를 피워본다.

_이병남 LG인화원장, 《경영은 사람이다》 저자

 

경제가 어려울 때 노동자의 월급을 스스로 줄여 해고자 없는 기업을 만드는 건 무엇으로 가능할까? 몬드라곤 협동조합 시스템과 이러한 영혼을 갖게 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어록집이 나온다니 무척 반갑다. 한 번쯤 꼭 읽어보길 바란다.

_오미예 iCOOP생협사업연합회 회장

 

호세 마리아 신부의 제자 다섯 명이 만든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2014년 현재 매출액 109억 유로, 고용 74,117명, 교육센터 학생 수 11,439명, 산업분야 R&D/부가가치 비율 8.9%, 기술센터와 R&D단위 15개, 연구자 1,676명을 거느리는 거대한 협동조합기업집단이 되었다. 과연 신부의 ‘생각’을 따랐기에 이런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인지, 그의 ‘생각’이 얼마나 영향을 끼친 것인지를 계량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몬드라곤기업집단이 새로운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수십 년 쌓인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체험’이 복기되고 ‘호세마리아 신부의 생각’이라면 어떤 해법을 내놓았을지 숙의 하는 것은 분명하다. 2014년 몬드라곤이 ‘생각의 해(year of reflection)’를 선언한 것도 다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에 비춰 현실의 위기를 헤칠 방법을 강구하자는 뜻일 게다.

_정태인, 감수의 글 중에서


3.  출간에 부쳐

이 책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와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가 함께 힘을 모아 출간한 두 연구소의 첫 책이다.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가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참여를 이끌었고,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가 이 책의 출판을 맡았다.

신부 특유의 문체와 어투를 살리기 위해 스페인의 언어적・문화적 특수성에 정통한 스페인어 번역자 박정훈 선생이 우리를 도왔고, 이 책에 서술되지 않은 협동조합 체험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돕기 위해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 스페인어 번역본과 영문판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각주를 달았다. 종교적 표현 등 기타 출판 과정에서 많은 이의 도움과 자문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갖은 논의를 거쳐야 했던 만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나서야 태어난 책이다.

그 사이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이 지났고, 지난해 12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호세 마리아 신부를 가경자(可敬者)로 선포했다. 가경자는 복자의 전단계인 시복 후보자를 부르는 존칭으로, 바티칸에서는 복자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후세대들에게 그 삶을 기리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 뿐 아니라 가톨릭 종단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책을 만들면서 그의 삶과 숨결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묻어나기를 바랐다.

여러 자료와 제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호세 마리아 신부는 글솜씨가 좋지도 언변이 수려하지도 않았다고 전한다. 심지어 왼쪽 눈의 실명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니, 사람들과의 소통에 불편함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 그가 사제 서품을 받아 몬드라곤으로 부임한 시기는 스페인 내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41년, 고작 스물다섯의 젊은 청년 사제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끌 수 있었던 건 도대체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어떻게 몬드라곤의 오늘을, 협동조합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냈을까?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이 오늘날에도 힘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다운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낸 현실이기 때문이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에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명문이 있지도 않고, 성경처럼 깊은 종교적 글귀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힐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과정에서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가치와 실천해야 할 덕목, 감내해야 할 고통과 번거로움, 극복해야 할 사상과 이루어야 할 공동체의 실체가 연대하는 삶을 꿈꾸는 글귀 하나하나에 묻어 있다.

더뎠던 출판의 경험 역시 연대의 과정이기를, 이 책이 마을에서, 학교에서, 기업에서, 삶의 현장 곳곳에서 공동체를 일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제기하는 소통의 메신저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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