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대통령, 기막힌 정책

글쓰기가 싫다. 말과 글 빼곤 호구지책이 없는 자에겐 치명적인 일이다.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이 계기였다. 기가 막히면 차라리 굶는 게 낫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말 귀에, 쇠 귀에 백번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랴.

대통령의 신년 담화는 ‘이중의 위기’로 시작했다. “안보와 경제는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인데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는 것이다. 안보는 4차 북한 핵실험 때문에, 경제는 국회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전자는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해야 풀리고, 후자는 당연히 국회가 경제활성화 2법과 노동 5법을 통과시켜야 해결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논리다.

이런 ‘인지 부조화’에 어찌 기가 막히지 않으랴.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위안부 협상 타결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건 동북아 정세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상식이다. 이래 놓고 북핵 문제에 관해선 중국이 앞장서달라는 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박 대통령에게 봉사한다고 생각해야 나올 수 있는 발언”(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다.

서비스 시장 규제 완화와 기업 인수·합병을 간편화하기 위한 ‘경제활성화 2법’, 그리고 일반해고의 자유와 비정규직 확대를 목표로 하는 ‘노동개혁 5법’이 통과되면 한국 경제가 위기를 피할 수 있을까? 한국의 수출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한 지 이미 오랜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오매불망 원하는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지고 임금은 떨어질 것이다. 수출에 이어 내수마저 급격히 위축되면 당연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다.

지난해 12월16일 발표된 ‘경제정책 방향’, 그리고 1월14일과 18일, 20일의 ‘2016년 대통령 업무보고’로 이런 인지 부조화가 정책이 되었다. 경제부처들의 업무 보고는 “수출 총력지원” “내수 회복세 유지” “주거 안정 강화와 민간투자 활성화” “가계·기업부채 등 리스크 철저 관리”로 요약된다.

정부는 내년에 수출을 2.1% 증가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하지만 “한·중 FTA의 적극적 활용” “신시장 개척과 무역금융 지원”이 과연 그리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이미 발효된 지 각각 5년과 3년이 지난 한국·유럽연합 FTA와 한·미 FTA는 수출 증가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민간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 정부는 2월에 또 한번의 ‘코리아 그랜드 세일’을 하고 대규모 할인 행사를 정례화하는 한편(11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부자들의 미래 소비를 조금 앞당기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율(10.4%)이 소득증가율의 두 배를 훌쩍 넘었는데 보통 사람들이 소비를 늘릴 수 있을까?

서민들 푼돈까지 모두 모아 또다시 주택 건설에 사용하겠다고?

결국 수출과 민간 소비, 어느 쪽에서도 경제의 활로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에도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 그리고 건설투자에 매달리고 있다. 수서발 KTX 개통, 서울-세종 고속도로 연내 착공, 인천공항 3단계 확충은 토목 건설이요, 뉴스테이 사업의 본격 추진은 주택 건설이다. 이들 투자를 부추기기 위해 정부는 1분기에 지난해 대비 8조원을 늘려서 재정을 집행하고, 공공기관 투자와 연기금 대체투자를 18조원 늘릴 계획이다.

심지어 가계부채 대책도 건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올해 정책에서 가장 참신한 것은 ‘내집 연금 3종 세트’다. 빚을 갚기 위해 주택을 내다 팔아서 집값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월세 전환으로 반환받은 전세금을 투자풀로 모아서 다시 임대형 주택 공급에 사용하는 방법까지 고안됐다. 부자들의 돈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푼돈까지 모두 모아서 또다시 주택 건설에 사용하겠다니 가히 천재적이다.

지금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어떻게든 국민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증세를 통해 생태 투자 등 미래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선도해야 한다. 복지를 증가시켜 소비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런 정책은 없고, 오히려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인 보육료(누리과정 예산)마저 못 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시,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의 생각은 언제나 옳다고 믿는 대통령이 세상을 질식시키고 있다.

 

원글은 시사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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