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지음/박정훈 옮김/정태인 감수/288쪽/1만3000원/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네모난 각진 얼굴, 완고한 턱, 어려서 실명한 왼쪽 눈 탓에 쓴 선글라스, 낡은 자전거….

내전 이후 가난이 상흔처럼 자리했던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분주하게 오가던 가톨릭 소속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상징들이다. 각진 얼굴과 완고한 턱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충직함을 드러냈고, 실명한 눈의 상처를 가리는 검은 안경은 사람들의 상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가난한 이들의 협동에서 찾았고, 굳은 확신으로 그 이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실현한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창시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은 마리아 신부의 사상을 집대성한 15권의 전집에서 가장 핵심적인 글들을 발췌해 모은 책이다. 좋은 이야기들, 교훈적인 훈화들만 모아 놓은 잠언집은 아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공상에 그칠 확률이 높은 ‘협동’의 이상을 현실적인 전망으로 구현해내기까지의, 36년간에 걸친 치열한 성찰과 체험의 기록이다.

 ▲ 스페인의 작은 마을 몬드라곤의 주민들과 함께한 호세 마리아 신부(오른쪽 두 번째)

 
그래서 호세 마리아 신부의 글은 따뜻하기보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목표에는 열정적이다. 공동체를 현혹하는 유토피아적 망상이나 그릇된 이념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드러낸다. 거칠고 과격하고 이른바 착하지 않은 글들이지만,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에 바탕을 두고 ‘협동’으로 ‘빈곤’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부 ‘인간과 사회’는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공동체가 지닌 생명력의 원천을 전한다.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 책임, 그리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요구를 제시한다.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발전하기 위한 실천으로서 교육과 협동조합 체험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2부 ‘노동과 협동조합기업’에서는 협동조합 체험 과정에서 몬드라곤 사람들이 실천의 준거로 삼았던 신부의 말과 글을 모았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노동, 단결, 유토피아와 혁명, 현실과 새 질서 등 공동체가 추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삶의 과정들을 짚어보고 있다.

가톨릭의 신부이지만, 호세 마리아 신부는 가톨릭교회에서도 그 사상과 삶의 모범을 높이 평가한다. 제도 교회 중심의 교회론과 세계관을 허물고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은 이미 그의 사상과 실천 속에 깊이 배어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12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호세 마리아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함으로써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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