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경제학] 개성공단의 정치경제학

개성공단의 정치경제학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 개성공단

지난 호에 저는 앞으로 이 지면에서 한국 사회 불평등의 원인을 짚어 보고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 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그렇게 천천히 사고할 만한 시간조차 주지 않는군요. 현재의 상황은 불평등에 대한 고민조차도 한가로운 일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지난 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을 선언했고 북한도 이에 맞서 이제부터 개성공단은 군사통제지역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가 빌미였죠.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이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저도 한 방울 정도의 소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3년 전 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비서관’이었습니다. 2003년 봄, 저는 대통령 비서관의 자격으로 버스를 타고 휴전선을 넘었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며 2013년에 쓴 글을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하늘 아래 녹슬지 않은 것이 없다!”

여의도에서 1시간 남짓, 일산에서 불과 30분이었다. 군인들이 동원돼 공사하는 도로를 지나 인가가 나타났을 때 내 첫 느낌이 그랬다. 키 작고 얼굴 까만 아이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 가슴에서부터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공단 부지는 그저 논과 밭이었다. 안내를 맡은 북한 담당자는 “개성공단을 건설한다고 우리 농민들이 밭도 갈지 않았는데 이게 뭡니까?” 하소연했고, 민화협 관계자는 “삼성은 왜 안 들어온답니까? 재벌들이 들어온다면 남포까지 공단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산물이었다. 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나라가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을 터. 한나라당 의원들도 점심상의 대동강 송어회 앞에서 개성공단 사업을 앞장서 추진하겠노라 호언했다. 2003년 여름 개성공단은 첫 삽을 떴고 2004년 말 1호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성공단은 남북의 희망이 되었지만 2008년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모든 사업은 동결됐고 그예 영구 폐쇄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경향신문>, 2013년 4월 28일자

이렇게 시작한 개성공단이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동결됐고 이젠 영구 폐쇄마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된 겁니다.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업입니다. 개성공단의 생산액은 2005년 약 1490만 달러에서 2006년 약 7400만 달러, 그리고 2014년에는 약 4억 7천만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10년 만에 33.5배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니 세계 어떤 곳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기는 힘듭니다.

개성공단은 한국 경제에도 얼마간 도움이 되었지만, 군사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2003년 12월 개성공단 착공 이후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재배치했습니다. 6사단에는 북한군 주력 ‘천마호’ 전차와 장갑차 대대가 있고, 62포병여단은 수도권을 겨냥한 170밀리미터 자주포와 240밀리미터 방사포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개성공단이 군사통제지역이 되면 서울은 물론 수원 지역까지도 이들 대포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10킬로 이상 뒤로 물러났던 군사적 대립선이 다시 서울 바로 앞까지 다가온 거죠.

 

위험한 치킨게임의 논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 이래 한나라-새누리당은 주야장천 개성공단이나 인도적 지원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쓰인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북한 정권은 우리처럼 야당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어디에나 사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2014년 개성공단 생산액 4억 7천만 달러 중 북한에 돌아가는 몫은 약 1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생산액에서 중간 투입액을 빼고, 또 한국 기업의 이윤과 임금 몫을 빼야 하니까요. 또 1억 달러 중에서 북한 노동자의 임금으로 지불된 부분도 군사비로 전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1년에 기껏 5천만 달러 정도나 북한 정부가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월 11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이 추정한 2014년 북한의 GDP는 322억 달러입니다. 5천만 달러라면 북한의 전체 GDP의 600분의 1도 안 되는 수치입니다. 이런 정도의 액수로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거나, 이 정도가 사라진다고 해서 북한 경제가 바로 위기에 빠질 거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바보거나 사기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독자적인 경제제재가 국제사회의 공조를 불러일으킬 거라고 주장했지만 이것도 터무니없는 얘깁니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 남북한 간의 무역액은 북한의 대중국 무역액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습니다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남북한 간의 경제교류는 형편없이 위축되어 이제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90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폐쇄는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자해공갈’에 불과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도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요? 박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이 그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정부의 이번 조치는 북한에 대하여 경고한 바와 같이 반드시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더 이상 ‘치킨 게임’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치킨 게임은 6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유행했던 게임입니다. 차를 마주 달려서 핸들을 돌리는 사람(이 사람을 치킨, 즉 겁쟁이라고 부릅니다.)이 지는 게임이죠. 이 게임에서는 무조건 직진하는 ‘미친 놈’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제정신이거나,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차를 돌리겠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개성공단 폐쇄로 맞서는 건, 둘 다 직진해서 정면 충돌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김광두 원장은 현재의 상황이 치킨게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본때’를 보이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둘 다 망해도 좋다는 얘기죠. 혹시 “그럼 매번 이렇게 당하자는 얘기냐?”고 반박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치킨 게임과 같은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둘 다 협동하는 겁니다. 즉 북한이 협동하는 게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도 최선이 되도록 게임의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입니다. 개성공단이 남포까지 확대되고 이어서 함경도의 나진선봉 지역 등에도 이러한 “평화번영”의 지대가 들어서고, 동아시아 관련국들이 보장하는 평화협정으로, 현재의 정전협정을 대체하면 북한 정권도 비로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핵개발을 포기하게 될 겁니다.

더 무서운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런 막무가내의 전략을 중국에도 들이댔다는 겁니다. 미국과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전략) 배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이 바로 그겁니다. 사드와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는 각각 군사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대중국 포위망입니다. 당연히 중국이 바로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바야흐로 지난 10여년 동안 애써서 조성해 온 평화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될 참입니다. 우리 모두 나서서 “No”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불평등보다 더 참혹한 전쟁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이번 총선이 이런 미친 짓을 막느냐, 아니면 부추기느냐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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