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브렉시트 후폭풍, 자본 속도 규제로 막자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브렉시트, ‘좋은 세계화’란 무엇인가?
영국 내의 브렉시트 찬성자의 환호도 잦아들었고, 전 세계적 조롱 속에 허탈해했던 브렉시트 반대자도 평온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속적인 침체로 가뜩이나 어두운 유럽의 미래에, 영국 안개 같은 불확실성이 더 짙게 드리운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그리스에 이어서 이탈리아의 금융 시장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그렉시트나 브렉시트를 훨씬 뛰어 넘는 파도가 또 한 번 유럽을 덮칠지도 모른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브렉시트’ 기획 전편 필자인 홍경준 교수 역시 나와 같이 칼 폴라니의 관점으로 브렉시트를 바라보는 글을 발표했다. 홍 교수의 결론, 또는 희망은 “시민에 기초한 국민 국가라는 공동체의 경계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할 수 있는 통합과 연대의 아이디어,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크게 넓히는 조치, 그런 아이디어와 조치를 갖춰야”, 사람의 이동에 반대하는 이번의 운동이 전후 복지 국가와 같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란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자본(과 일부 상품)의 이동 속도와 규모를 조절하는 쪽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은 동서독 통일에서도 드러났듯이 한 민족 간에도 충족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자본의 이동 속도와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
브레튼우즈 때처럼 자본 이동을 거의 완전히 막을 수야 없겠지만 토빈세 같은 정책으로 속도를 둔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투자자 국가 제소권과 같이 자본의 권리를 시민의 주권 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각국의 민주주의와 그들이 결정한 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열어 놓아야 한다. (필자)
(☞원문 보기 : 브렉시트, ‘좋은 세계화’란 무엇인가?)
폭풍 전야?
브렉시트 투표 이후 세계 금융 시장은 해일이라도 일듯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도 투표 이전의 전망을 수정했다. 영국 경제가 나빠지긴 하겠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을 거란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일지도 모른다. 아직 유럽 협정 50조에 의한 탈퇴 협상이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총리가 된 테리사 메이는 2016년에는 협상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금융 시장의 분석가들이나 전문가들이 부산하게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세상은 브렉시트 이전이나 마찬가지다.
영국 내의 브렉시트 찬성자의 환호도 잦아들었고, 전 세계적 조롱 속에 허탈해했던 브렉시트 반대자도 평온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속적인 침체로 가뜩이나 어두운 유럽의 미래에, 영국 안개 같은 불확실성이 더 짙게 드리운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그리스에 이어서 이탈리아의 금융 시장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그렉시트나 브렉시트를 훨씬 뛰어 넘는 파도가 또 한 번 유럽을 덮칠지도 모른다.
나는 브렉시트를 칼 폴라니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글을 실었다(☞관련 기사 : “폴라니라면 브렉시트를 어떻게 봤을까”)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라고나 할까, 이번 브렉시트 기획 전편에서는 홍경준(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연구원장)이 나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폴라니의 관점으로 브렉시트를 바라보는 글을 썼다. (☞관련 기사 : “브렉시트 후폭풍, 탈신자유주의 vs 파시즘”) ‘불역낙호아!(不亦樂乎)’ (하지만 홍경준 교수와 난 일면식도 없다.)
나는 주간지라는 지면의 제약 때문에 브렉시트가 왜 대응운동의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최소한의 설명도 할 수 없었지만 홍 교수 덕에 독자들도 이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홍 교수의 결론, 또는 희망은 “시민에 기초한 국민 국가라는 공동체의 경계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할 수 있는 통합과 연대의 아이디어,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크게 넓히는 조치, 그런 아이디어와 조치를 갖춰야”, 사람의 이동에 반대하는 이번의 운동이 전후 복지 국가와 같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물론 올바른 이야기이고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 청년의 생각도 홍 교수와 같은 쪽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본의 이동 속도를 낮추는 쪽이 ‘좋은 세계화’의 현실적 방향이 아닐까?

▲ 브렉시트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영국 캐머론 총리 부부. 이번 투표 결과로 캐머론 총리는 “10월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그렉시트와 브렉시트
그렉시트와 브렉시트를 비교하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딱 1년 전, 2015년 7월 5일 그리스 국민들은 트로이카(유럽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IMF)의 최후통첩안(추가 구제 금융에 대한 대가로 강한 긴축 정책 요구)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No’라고 외쳤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또 한 번 승리를 거뒀다. (☞관련 기사 : 위기의 그리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5년 전 트로이카의 요구에 따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했지만, 그 동안 그리스 GDP는 25%나 줄어들었고 공식실업률은 28%, 더구나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나들었다. 그리스 국민들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대니 로드릭이나 토마 피케티, 제프리 삭스 등 세계의 쟁쟁한 경제학자들이 나서서 ‘No’를 외치라고 선동하는 판이었다. 트로이카로 하여금 채무를 삭감하고 이행조건을 완화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그렉시트를 걸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던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을 해임하고 최후통첩안보다도 훨씬 굴욕적인 타협안을 받아 들였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치프라스를 비난하기보다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이 치킨 게임에서 행여 트로이카가 후퇴하지 않음으로써 ‘트로이카 거부→ 그렉시트’라는 최악의 결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어려웠으리라.
2016년 6월 23일, 이번엔 영국 국민들이 브렉시트(여기서는 EU 탈퇴)를 선언했다. 또 한 번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당황했다. 영국 안팎의 경제학자들 중 브렉시트를 옹호한 사람은 오른 손 손가락도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치킨 게임은 아무도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균형이 아닌 파국으로 치달았다. 브렉시트 찬성자들의 거짓말이 파국에서 오는 영국의 손해를 과소평가하게 만든 것도 사실일 것이다.
마이클 고브나 나이젤 파라지는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영국의 수출은 세계 각국을 향하고 있었고, EU를 탈퇴한다고 해서 분담금을 안 내는 것도 아니며(노르웨이형이냐 스위스형이냐에 따라 30%에서 70% 정도 줄어들 뿐이다), 브렉시트가 곧 이민자를 규제할 수단이 되지도 않을 것이며 영국의 의료 체제는 기실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이주민 의사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영어 스펠링 하나 차이지만 그렉시트와 브렉시트는 사뭇 다르다. 그리스는 유로존 국가지만 영국은 유로를 쓰지 않는 유럽연합(EU) 국가이다. 그리스의 문제는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 통합까지 나가든지, 아니면 유로를 포기하고 국민 통화로 복귀해야만 해결된다. 진정한 하나의 나라라면 어떤 지역이 위기에 빠졌을 때, 당연히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유로존의 재정은 각국에 맡겨져 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건 네 탓이니 허리띠를 졸라매라”며 긴축을 요구했다. 유럽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또는 유럽 차원의 민주주의는 아직 요원한 일이라는 게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즉, 6년 전 그리스 사태가 발발했을 때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문제는 재정 적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자’, 또는 ‘유럽 시민 의식의 적자’인 것이다.
 
세계화의 피해자들과 폴라니의 대응 운동
기실 유럽 통합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100년 전부터 존재했다. 레닌이 1905년, ‘유럽합중국에 관하여’라는 글을 쓸 정도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나서야 이 아이디어는 전쟁을 막고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자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후 구구절절한 유럽 통합의 역사, 그리고 가입과 탈퇴 시도를 끝없이 반복한 영국의 역사를 사상한다면, 유럽 통합의 역사는 ‘단일 시장 만들기’와 ‘통일된 규제’라는 두 가지 과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시 거칠게 말하면 전자에는 시장 논리가, 후자에는 사회 복지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했다. 앵글로 색슨 모델의 원조인 영국은 거대한 단일 시장, 특히 금융 시장의 개방에서 오는 이익은 누리고 싶지만, 인권과 사회, 환경을 위한 규제는 되도록 피하고 싶어 했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들은 대체로 중북부의 전통적 제조업 지대, 노인들, 이민 반대자, 빈민들로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세계화의 ‘루저’들인 셈이다. 이들은 직접적으로는 시티(런던의 금융 중심지)가 싫고, 보수당이건 노동당이건 기존 정당을 믿을 수 없었고, 경제학자 등 잘난 척하는 지식인들도 꼴 보기 싫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양극화의 수혜자인 상층 엘리트에게 한방 먹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또 국가 주권을 잃고 유럽의 한 주가 된다는 생각도 대영제국의 후예들에겐 황당한 일이었을 테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1960년대에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려다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거부당한 수모를 기억해냈을지도 모른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세계화(기술 혁신과 마찬가지로)는 그저 축복이다.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시장의 힘에 의해 생산 요소들에 골고루 분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세계화는 기술 혁신과 함께,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장 만능 정책에 의해 불평등을 극단으로 밀고 갔다.
영국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나라 중 하나다. 피케티의 장기 통계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다. 영국 시민들 중 절반가량은 희망이 없어진 이유를 유럽연합에서 찾은 건지도 모른다. 실험 경제학이 입증하듯이 사람들은 앞날의 희망이 별로 없어 보이면 모험을 택하기 마련이다(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식물들도 마찬가지란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 시민들 역시 크게 보면 반세계화를 외친 게 아닐까? 국수주의 정당, 인종 차별 정당의 선동이 두드러지게 보여 그렇지, 대부분의 찬성자들은 그저 선량한 피해자들이 아닐까? 그런데 왜 진보적인 경제학자, 예컨대 로드릭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그렉시트 땐 그리스 시민들을 편들고, 브렉시트 땐 유럽연합의 손을 든 걸까?
어쩌면 이들이 유럽형의 지역 공동체를 대안적 세계화로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비서관 시절 내가 상정한 모델도 유럽이었다. 즉 지적 재산권 강화나 투자자의 주권 침해를 포함하는 미국식 세계화에 비해 유럽 통합이 훨씬 민주적이고 현실적인 세계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사회 보호라는 면에선 분명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지만 단일 시장 만들기, 특히 통화 통합 과정에서 선출되지 않은 관료(집행위원회)의 비밀주의 행정이 돋보였고, 유럽 위기에 대한 대응은 IMF마저 걱정할 정도로 금융 자본과 강대국의 이해를 적나라하게 대변했다. 현실의 대안이 사라질 위기에 빠진 것이다.
나는 홍 교수와 마찬가지로 브렉시트를 폴라니의 대응 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원형으로 생각했던 영국, 제1차 세계화의 추동자였던 영국, 여전히 세계 5위, 유럽 2위의 대국인 영국. 즉 말하자면 세계화의 종주국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폴라니는 시장 원리로 사회 구석구석을 조직하면 사회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결국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대응 운동을 일으킨다고 설파했다. 이 운동은 우루과이 라운드에 반대하는 농민 운동, 시애틀의 반신자유주의 운동, “점령하라” 운동, 포데모스나 시리자의 집권처럼 대안의 세계화를 외칠 수도 있지만 브렉시트와 같은 국수주의적 움직임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시대를 앞서 가든 시대착오적이든,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심지어 인종 차별적이든 시장만능의 세계화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임엔 틀림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폴라니의 해법을 따르자면 전 세계 차원에서 시장을 다시 사회에 묻어버리는 ‘또 하나의 세계화’가 필요하다.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그 어느 것도 세상의 장삼이사들, 특히 젊은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 자유화의 보검인 ‘바닥으로의 경쟁’은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유럽 공동체의 이상도 국제 경쟁력을 위한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맥없이 밀려났다.
전후 여러 유형의 복지 국가를 만들어 냈던 노동조합, 거대 정당들 모두가 힘을 잃고 있다. 이런 조직들에 기초한 안정적 대의 민주주의 역시 신기루처럼 보인다. 양극화로 인한 불만과 절망은 좌우 포퓰리즘, 나아가서 영국의 독립당이나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 세력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세계는 전후 30년과 같은 안정된 국제 질서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브렉시트가 우리에게 던진 진정한 질문일 것이다.

ⓒAP=연합뉴스

로드릭의 ‘얕은 세계화’와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의 민주화’
고전적인 국제 경제의 트릴레마는 세계는 자본 자유화, 고정 환율제, 금융 정책의 자율성(독자적 통화 정책) 중에 둘만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 자유화와 고정 환율제를 선택하면 금본위 제도가 되고, 금융 정책의 자율성과 고정 환율제를 선택한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이며 자본 자유화와 금융 정책의 자율성을 꼽으면 변동 환율제가 된다는 것이다(물론 여느 경제학이 그렇듯이 자본 자유화와 변동 환율제를 택한 오늘날 각국이 금융 정책의 자율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로드릭은 교과서적 트릴레마에 빗대어 ‘국제 정치경제의 트릴레마’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도 셋 중 둘만 선택할 수 있다. 초세계화와 국가 주권을 결합한 것이 금본위제 하의 세계 체제다. 금본위제는 강한 대외 제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국내에서 임금과 물가의 조절이 일어나야 한다. 바로 금본위제라는 ‘황금 구속복’ 속에서 각국은 보호주의로 치닫다가 1930년대에 영국을 필두로 모두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된다.
국가 주권과 민주적 정치를 택한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제 관계 속에서 유럽의 일부 국가는 상당히 이상적인 사회 복지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3년에 ‘국민 경제의 자립’이라는 글을 발표했을 때 구상한 국제 체제이다.
초세계화와 민주주의 정치를 결합하려면 세계 정부, 즉 전 세계나 특정 지역이 미국과 같은 연방제가 되어야 한다. 바로 유럽연합이 최종적으로 꿈꾸고 있던 모델이고 지금도 독일과 프랑스는 “더 긴밀한 유럽”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현실은 민주주의 없는 초세계화에 머물렀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응 운동을 초래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조직 중 EU 의회는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있지만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더구나 강대국 몇몇이 비밀리에 아주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이와 함께 사법부에 해당하는 사법재판소(European Court)의 결정도, 인권과 사회권을 옹호한다 하더라도 개별 국가나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주권 침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유럽은 ‘내 나라’라는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만일 이런 ‘초세계화’가 불가능하다면 세계화의 깊이와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즉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임금이 평준화되기 위해서는 이민자가 아무런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조건은 동서독 통일에서도 드러났듯이 한 민족 간에도 충족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자본의 이동 속도와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 농산물과 같은 상품 역시 상당한 규제를 받아야 하며 공공 서비스 역시 그리 쉽사리 통합될 수도 없고 상당 기간 통합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곧 사회 복지와 사회적 경제의 급속한 약화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지역이 유럽연합과 같은 공동체를 모델로 세계화를 이루려 한다 해도 지역의 정체성이나 경제적 격차를 고려해서 그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세계화는 자본 이동의 자유를 말한다. 현재와 같은 정보통신 기반에서 금융 자본은 하루에도 지구를 몇 바퀴라도 돌 수 있다. 사람은 절대로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의 속도를 늦추는 게 정답이다.
브레튼우즈 때처럼 자본 이동을 거의 완전히 막을 수야 없겠지만 토빈세 같은 정책으로 속도를 둔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투자자 국가 제소권과 같이 자본의 권리를 시민의 주권 위에 올려  놓아서는 안 된다. 각국의 민주주의와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열어 놓아야 한다. 로드릭이 말하는 ‘얕은 세계화’, 스티글리츠가 ‘세계화의 민주화’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이제 언제 꾸었나 싶은 꿈처럼 느껴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호는 허점투성이, 무지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이러 저러한 역사의 교훈은 조금 더 현실적인 ‘좋은 세계화’를 결국 빚어낼 것이다. 만일 여기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전쟁과 파시즘의 비극을 맞을지도 모른다.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일을 주저 없이 하는 정치 지도자가 존재한다면 물론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아뿔싸, 오기 또는 무지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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