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시민 항쟁’ 특별기고 ②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망국. 이 두 글자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2014년 4월16일, 우리가 뻔히 보는 앞에서 세월호는 서서히 기울었고 304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선장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했다. 몇 달 후, 대통령은 연안 크루즈 산업이 우리의 살 길이요, 경제혁신이라고 역설했다. 메르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무더기 감염이 예견될 때도 국가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삼성에 자체 방역을 맡겼다. 보름이나 지나 대책본부가 마련된 뒤에도 대통령의 한마디로 민간 전문가(의사)가 방역 총지휘를 맡았다. 어디에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 보호에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34조6항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 때는 잠적하고, 국민의 분노가 지쳐 사그라질 때면 ‘국가개조 = 경제혁신 = 규제완화’, 즉 국가의 축소를 들고나왔다.

대통령은 2015년 여름부터 ‘노동개혁 = 일반해고’의 자유가 우리의 살 길이라면서 국회에 망국의 책임을 떠넘겼다. 선거 때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고, 재벌의 소원만 들어주면 ‘국민행복시대’가 열린다며 국회에 입법을 종용했다. 오직 하나, ‘창조경제’만 살아남은 공약이었는데 ‘최순실 게이트’가 드디어 그 정체를 밝혔다. 우리의 대통령은 이중 꼭두각시였다. 재벌과 관료의 지시에 따라 춤을 추는 꼭두각시요, 동시에 그 보상으로 한몫 챙기려는 최순실의 꼭두각시.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지배계급이 연출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규제라는 암덩어리만 제거하면 불같이 일어나리라던 설비투자는 매년 오그라들다가 그예 금년엔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로지 상반기 10% 증가한 주택건설이 경제성장률을 2%대에 턱걸이시켰다. 하지만 2014년부터 최경환 당시 부총리가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전셋값 올려주라’며 강행했던 이 정책은 가계에 1300조원의 빚을 떠넘겼다.

단언컨대, 지난 50년간 한국을 이끌어 온 경제정책 기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허리를 졸라매서 수출을 증가시키고 재벌들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개혁을 한답시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임금을 낮추면 내수마저 쪼그라들 테고, 박근혜의 규제완화는 재벌3세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 즉 부동산과 유통의 독점화, 그리고 자연의 파괴만 부추길 것이다. 삼성의 갤럭시노트7이 폭발하고 현대차가 100만대 이상 재고로 쌓여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번째 꼭두각시 역할은 한국을 지배하는 3각동맹(재벌-고위관료-보수언론)의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세계 최고라는 삼성은, 나홀로 출전해 우승 경력을 쌓은 승마선수에게 몇십억원을 갖다 부었고, 교수 출신 청와대 수석은 동네 깡패처럼 수금을 하러 다녔다. 검찰은 ‘비선 실세’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고, 충성스러운 개처럼 꼭두각시의 손가락에 따라 누군지 가리지 않고 물어뜯었다. 난다 긴다 하는 새누리당 귀족 정치인들은 꼭두각시가 ‘배신’을 입에 올리는 순간, 고개를 열길 땅속에 파묻었다. 보수언론은 모든 비판 세력에 붉은 역모의 혐의를 씌우기 바빴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마저 몇 푼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낯간지러운 부정에 공모했다. 세계의 망국사에 흔전만전했던 희극이 동시 상영됐다.

망국의 역사는 훨씬 뿌리 깊다. 기실 식민지를 겪은 나라 중 대한민국만큼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달성한 나라는 없었다. 가히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할 만하다. 한국전쟁을 겪은 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다. 출발선이 어슷비슷했으니 교육과 노동이 사회적 이동을 촉진했다. 한국 압축성장의 비결은 평등이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군사독재 아래서도 당시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재벌들과 보수언론들이 부와 사상을 독점했고 김영삼이 ‘세계화’를 외친 이래 정부마저 본격적으로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고 앞장섰다. 한국경제의 모든 장기지표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나쁜 쪽으로 급속하게 꺾였다.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압축불평등’이 일어났다.

금수저냐, 흙수저냐가 미래를 결정하는 나라는 ‘헬조선’이다. 세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사장시킨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노비와 여성들의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광장에서 분출되고 있는 90% 젊은이들의 발랄한 재능도 피어나지 못한 채 절망의 구렁텅이에 묻힐 수 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만인의 자유가 어우러지는 공화국의 시대를 열 것인가, 아니면 경제위기와 심지어 전쟁이라는 파국을 맞을 것인가? 광장의 촛불이 바야흐로 들불로 타오를 것인가? 12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꼭두각시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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