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희망의 경제학: 다시 피어오른 촛불의 꿈

“안녕하세요?라고, 이젠 인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6차에 걸쳐 십만에서 백만으로, 그리고 2백만 이상으로 타오른 촛불 덕입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촛불은 8년 전, 2008년에도 뜨겁게 타올랐죠.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 간다.” 2008년 5월 2일, “나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여중생들이 광장으로 나왔을 때 쓴 글의 첫머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후의 선거에서 패했고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 언론은 표변했습니다. 촛불에 놀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을 하고 결국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던 대통령은 2010년 5월, “촛불시위 2년이 지났는데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다그쳤습니다. 조중동은 시민들에게 “좌파의 선동에 놀아났다”는 반성을 강요했고 검찰과 법원은 1,000명이 넘는 촛불시민에게 벌금형 이상을 때렸죠. 심지어 정부의 광우병 대책을 비판한 지식인들을 쫓아 다니며 허위의 폭로 기사를 쓰는 것도 그들의 일이었고, 사소한 흠결을 문제 삼아 MBC 피디수첩 팀을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8년 전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 문제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직접 건드리는 각종 민영화 문제,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확장됐습니다. 2013년에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서울광장에 다시 촛불을 등장시켰습니다.

“아예 인터넷에 e-시민의회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5년 전에도 광장의 열기를 바탕으로 인터넷에 정책공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번의 차분한 흐름은 그 시도를 실현하기에 더 좋은 상황이 아닐까? 집에도 가지 않고 100일 동안 방송하는 게 아니라면 나도 짬짬이 서울광장에 나가서 지금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이건 그 때 쓴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어쩌면 이번엔 2008년부터 10년 가까이 일어난 촛불의 희망, 더 멀리 보면 1960년과 1987년에 미완으로 끝난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불평등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심해지고 있으니, 대중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에너지가 정치에서, 정책에서 폭발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침체의 수렁에 빠진 경제

먼저 현재의 경제상황부터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내년도 경제성장률 예측이 쏟아집니다. 우리 공공기관부터 보면 정부 3.0퍼센트, 한국은행 2.8퍼센트, 국회 예산정책처 2.7퍼센트, 한국개발연구원(KDI) 2.4퍼센트입니다. 작년의 전망에 비해서 확실히 비관적입니다. 민간의 전망은 더 나쁩니다. 금융연구원의 2.6퍼센트, LG경제연구원의 2.2퍼센트 사이에 모두 들어갑니다. 국제기관의 전망은 어떨까요? 국제통화기금(IMF)만 3.0퍼센트로 예측했을 뿐, 경제협력기구(OECD)는 2.6퍼센트, 모건스탠리는 2.3퍼센트, 노무라 증권은 아예 1.5퍼센트를 제시했습니다.

2015년 12월 정부의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1퍼센트였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추세로 봐선 금년 성장률은 2.6퍼센트 언저리에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2퍼센트 대 중반의 성장마저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는 데 있습니다. 작년 말 제가 예측한 대로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증가율(-3.7퍼센트, KDI 전망)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5퍼센트 정도 설비투자 증가할 것이라고 자신한 건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죠. ‘암덩어리 규제’만 풀면 투자가 불같이 일어날 것이라는 박근혜 씨의 주장은 무녀의 예언으로 판명났습니다.

소비, 설비투자, 수출 모두 부진한 가운데 건설투자만 10.1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금년 성장의 8할은 건설이 만든 거라고 봐도 됩니다.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겨 주택경기를 일으킨 결과,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이르렀습니다.

KDI의 내년 경제전망을 뜯어보면 2.4퍼센트라는 수치마저 그리 녹녹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민간소비 증가율 2.0퍼센트도 상당한 낙관이 스며들어 있고, 설비투자가 2.9퍼센트 증가세로 돌아선다는데도, 건설투자 증가율이 4.4퍼센트 정도를 유지한다는 것도 실현되기 어려운 가정들입니다.

눈을 바깥으로 돌려 봐도 암초가 숱하게 널려 있습니다. 금년 봄 전 세계를 뒤흔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유럽연합이 들썩거릴 텐데 이탈리아의 은행은 부실채권의 홍수에 빠져 있습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이 지속돼 내년의 각종 선거에서 극우파 정당이 기승을 부린다면 그 또한 사회갈등을 부추길 겁니다.

지난달 말씀드린대로 트럼프는 당장 보호주의를 실천할 겁니다. 선거 공약처럼 중국 상품에 평균 35퍼센트의 관세를 당장 매기는 건 비현실적이더라도 환율조작 시비가 훨씬 더 강해지리란 건 분명합니다. 곧바로 중국을 상대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이미 반덤핑 규제 2위, 환율조작 감시대상국에 올라 있는 한국을 본보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성향은 오바마-클린튼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일정하게 누그러뜨리겠지만 입각이 내정된 외교안보 쪽 인사들은 하나같이 대북 강경파입니다. 벌써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김정은과 트럼프의 대결은 강 대 강, 말 그대로 치킨게임이 될 겁니다. “미친놈이 이기는 게임”에서 둘 다 미친놈이라면 파국입니다. 마주 달리는 차가 직진을 고집한다면 결국 충돌해서 둘 다 죽음을 맞게 되겠죠.

우리 안에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뚜렷한 경제사령탑도 없이 구조조정의 파도를 맞아야 합니다. 자칫 경제위기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과감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위험이죠.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길

헌재가 신속하게 탄핵을 인용하면 두 달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고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도 없이 바로 정부를 출범시켜야합니다. 물론 선거 기간 동안 온갖 공약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우리가 매번 경험한 바와 같이 선거공약이란 커다란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는 것이지 곧바로 실천 가능한 정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체계적인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하여 또다시 희망은 촛불입니다. 전국에 무려 232만 촛불이 피어 올랐고 국회는 234명의 찬성으로 탄색을 가결했습니다. 이제 촛불은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한편, 차기 정권이 해야 할 굵은 정책기조를 제시해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꼭 실천해야 할 정책은 어떤 것일까요?

지난 12월 9일 저는 페이스북에 촛불이 원하는 정책을 올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놀랍게도 딱 이틀 만에 백 가지가 넘는 제안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우선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 강화에 관한 요구가 많았습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실손보험을 폐지하라는 요구, 대학까지의 무상교육과 사교육 폐지, 국정교과서 폐지 등이 대세입니다. 종부세 부활 등 부동산 정책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많았죠.

정치 시스템의 개혁에 관한 요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 연령 낮추기,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확대 등이 절실합니다. 노동과 관련한 정책도 많이 제시되었습니다. 각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요구가 줄을 이었죠. 재벌개혁 관련 정책도 쏟아져 나왔고 검찰 및 사법 개혁도 빠질 리 없습니다. 물론 평화협정 체결 등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에 관한 요구도 많았죠.

전 세계적인 암울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오른 수백만의 촛불은 한마디로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안을 부문별로 모으고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광장 곳곳에서 토론을 해야 합니다. 촛불이 곧 인수위원회입니다.

2008년 중학생 소녀들은 이제 20대의 청년이 되어 있겠군요. 광화문 광장에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한테 달려있습니다. 8년 전에 그랬듯이 지금 한껏 몸을 낮춘 수구세력은 언제라도 표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그려 나가는 일, 그것이 곧 촛불 혁명을 완수하는 길입니다.

원글은 작은책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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