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화성행 우주선과 정유라의 말

이재용씨 구속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그럴 만한 논리와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법조인도 아니고 법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나는 그 논리와 판단에 도전할 생각이 없다. 대신 내가 공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해 몇 마디 적고자 한다. 좀 엉뚱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휩쓸린 한국 자본주의의 운명이라는 관점이다.

오늘날 누구나 외쳐대는 ‘혁신 기업가’라는 단어는 20세기 초의 2차 산업혁명 물결을 배경으로 부각된 말이다. 철강과 중공업 등 엄청난 규모의 설비를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 혁신은 새로운 종류의 기업가를 필요로 하며, 이들은 자잘하고 근시안적인 화폐적 합리성을 뛰어넘어서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고 과감하게 투자와 산업 조직에 뛰어드는 영웅성을 보여야 한다는 게 좀바르트와 같은 이들의 지적이었다.

이번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이러한 묘사에 부합하는 ‘혁신 기업가’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의 식민지 건설 계획을 현실화시켜가고 있으며, 마크 저커버그는 지구를 위성으로 감싸 대기권 전체를 무선 인터넷 공간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손정의가 투자처를 선택하고 엄청난 액수를 질러댈 때마다 모든 이들은 경악하고 있다. 좀바르트가 옳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 그러했듯,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것은 뛰어난 기술 공학자와 인프라만이 아니다. 이렇게 과감하고 역동적인 혁신 기업가들의 출현이 정말로 절실하다.

이는 한국의 재벌 대기업들이 지난 10년간 보여준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들은 불확실성이니 반기업 정서와 각종 규제니 하는 핑계만 늘어놓으면서 새로운 기술 혁신과 맞물린 새로운 사업 개발은 등한시하였고, 오히려 자신들의 힘과 지위를 이용한 ‘지대 추구자’로 퇴행을 계속하였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불거져 나온바, 엄청난 자산을 가진 굴지의 대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노심초사 힘을 기울였던 사업이라는 게 기껏 면세점 허가 따내기였다는 것이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혁신을 통한 새로운 경제적 가치 창출에 명운을 걸기는커녕, 여러 권력의 줄을 적절히 당겨서 특권을 따내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버는, 그야말로 17세기 중상주의 시절에나 있었던 사업에 혈안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서울시 전역을 수십개의 면세점이 뒤덮어 버렸고, 이들 사이의 과당 경쟁으로 폐점이 속출하고 있다는 한심한 소식이다.

이재용씨가 박근혜·최순실에게 건넨 뇌물 혐의의 내용은 이 퇴행적 행태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새로운 기술 혁명으로 산업 문명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이 순간, 한국 자본주의를 이끄는 수장의 자리에 있는 이는 19세기 발자크 소설에나 나올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는 게 특검의 수사 내용이다. 어느 인기 트위터 필자의 말처럼, “스페이스X가 화성 식민지 건설에 투자할 때 이재용은 정유라에게 줄 말(馬)에다 투자했다.”

어째서 한국의 재벌 기업가들은 이렇게 퇴행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가. 한국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모델을 온실로 삼아 반세기 동안 곱게 아니 게으르게 자라난 탓이며, 이는 2세, 3세로 승계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재벌 대기업에 온갖 특혜와 이권을 몰아주는 것을 ‘국익’으로 삼는 체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혁신 기업가’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이다.

말만 몇 마리 사주면 대통령도 국민연금도 자본 시장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환경에서 누가 위험을 안고 기술과 사업 혁신의 풍랑에 뛰어드는 미친 짓을 감행하겠는가.

이들이 새로운 기술과 사업으로 산업을 조직하는 임무를 이렇게 계속 방기하는 한 경제 침체와 일자리 소멸은 고질적 추세가 될 것이며, 그 어두운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로 인하여 더욱더 빠르게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특검의 구속 영장 신청을 보면서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 체질을 개선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더랬다.

영장은 기각되었다. 재벌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심히 불투명하다. 영장 기각 소식을 듣고 느낀 감정은 짜증이나 분노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원글은 경향신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원글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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