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촛불의 정책 기조(1)-동아시아 전략

동아시아에 부는 삭풍

서산으로 가는 차 안은 안온합니다. 1월 14일 토요일, 일기 예보와 달리 하늘은 맑고 햇볕마저 따뜻해, 자동차라는 폐쇄 공간에서 내다보는 들판에선 곧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만 같습니다. “지방에서 일고 있는 촛불도 들불로 타올라야 한다”는 간청에 산처럼 쌓여 있는 일 더미도, 제 아무리 추워도 시린 손의 촛불로 뒤덮일 광화문 광장도 뒤에 두고 내려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영하 14도, 바람마저 매섭습니다. 우리는 헌재의 인용을 기다리면서 대선을 준비해야 하고, 지난 달에 말씀드린 것처럼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당이 정권을 잡든” 꼭 실천해야 할 최소한의 ‘촛불 정책’도 만들어야 합니다. 광화문과 서산, 방방곡곡이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지만 한반도의 정세는 훨씬 더 험난합니다. 몇 부터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들은 갑자, 을미, 병신, 정유로 이어진 120년 전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120년 전처럼 한반도는 또다시 패권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의 ‘대국궐기’에 미국의 ‘아시아로의 선회’가 맞부딪히고 있죠. 말래카 해협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는 바닷길 곳곳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맨 꼭대기에 남북관계가 놓여 있습니다. 벌써 6년차를 맞은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우리의 첫 수소탄 시험과 각이한 공격수단들의 시험발사, 핵탄두 폭발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였으며 대륙간 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북핵은 동아시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마지막 폭탄입니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의 젊은 새 지도자는 4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일주일 뒤, 이제 업무가 정지된 박근혜 씨는 “국익에 따른 사드 배치 검토”를 지시했죠. 중국은 자신의 “핵심 이익”을 건드렸다고 반발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미사일이 문제가 아니라 AN/TPY-2라는 레이더가 중국 내륙의 군사적 움직임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핵무기를 확충하는 데 진력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핵무기와, 중국이 자랑하는 인공위성 기술을 결합하면 언제든지 미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을 한꺼번에 뒤흔들 결정을 박근혜 정부는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하지 않은 채, 한 달 만에 결정하고 1년 만에 배치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미사일의 속도를 높여서 현재의 사드 기술로는 격추할 수 없는 “극초음속 미사일(HGV)”과, 하나의 미사일이 여러 탄두로 쪼개져서 목표로 향하는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MIRV)” 개발을 서두르고 있죠. 이른바 “안보 딜레마”가 전개 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움직임은 다시, 미국의 아시아 미사일 방어체계(MD) 강화 전략과 결합된 일본의 첨단 군사화를 초래할 것이고 동아시아는 곧 군비 경쟁에 휘말릴 겁니다.

황교안 대행체제의 우둔함

기껏해야 5~6개월이 남은 정부라면 당연히,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엄정 중립의 자세를 취하면서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지만 대행체제라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듯, 김장수 안보실장은 미국에 찾아가서 신임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이 반대한다고 해도 상관치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당장 중국의 루캉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이 고집스럽게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을 정말로 원치 않는다. 이 문제로 한중 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반박했죠.

중국은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활용해서 보복을 하는 나라입니다. 이미 소개해 드린 대로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나 장관이 달라이라마를 만나면, 그 다음 해의 중국 수출이 8.5퍼센트(장관의 경우)에서 16.9퍼센트까지 감소했습니다. “달라이라마 효과”라는 겁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민들의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있다”고 점잖은 말만 하지만 <환구시보>와 같은 관영언론은 보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실제로 정부가 직접 수입 규제나 반덤핑 같은 조치를 취하지는 않지만 ‘비관세 장벽’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통관 절차를 강화한다거나 기존의 위생검역 조건을 철저히 시행하는 겁니다. 최근의 한국화장품이 무더기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일, 삼성 SDI나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 대해서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일, 의료기기와 약품의 통관이 ‘이유 없는 지연’에 묶인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냥 중국인의 반한 감정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주장할 만한 사건도 속출하고 있죠. 한류 연예인의 출연 금지(한한령)나 중국 홈쇼핑 업체가 한국 제품 편성을 줄이고 한국인 모델을 쓰지 않는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한국행 관광객 전세기가 갑자기 뜨지 않고 심지어 안경 쓴 사진을 붙이면 비자가 발급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중국과의 사업에는 이른봐 ‘관시(관계)’가 필수적입니다. 이 관계에는 많은 선물과 반대 급부가 오고 갑니다. 어느 때라도 중국의 중앙정부는 부패 척결을 이유로 한국 기업을 추방할 수 있죠. 중국의 수입 수요에서 정부의 정책, 국유기업의 판단이 차지하는 몫은 절대적입니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어떤 보복이 뒤따를지 알 수 없는 일이죠.

황교안 대행체제는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중 FTA 공동위 회의에서 따지겠다고 하는 반명, 외교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보복이라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하고 식품의약안전처는 화장품 사태가 우리 기업의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한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중국 군용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사건에 대해 “사드 배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이런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정부 대책과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관계 부처 합동의 이름으로 발표된 “2017년 경제정책”에서 정부는 트럼프의 보호주의에 대해 셰일 가스와 항공기를 더 수입하고, 미국의 대대적인 공공 인프라 건설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건설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건 과거에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심지어 “미국산 사기(Buy America)”법이 이미 존재합니다.) 자국 기업을 끔직이도 위하는 트럼프 정권 하에서는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결국 정부의 대책이란 우리의 무역흑자를 ‘선제적으로’ 줄인다는 것, 즉 “알아서 긴다”는 거죠. 아니면 더 많은 요구를 할까요? 환율 조작국 지정이라는 핵폭탄을 그가 과연 접을까요?

새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 방향

사드 배치와 중국의 보복,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겹쳐서 아주 어려운 상황이 초래됐지만 땅이 꺼져도 솟아날 길은 있습니다. 앞에서 사드 배치는 결국 중국의 대륙 간 탄도탄에 대한 방어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만 이미 일본에 레이더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와 기업에겐 군사적 효용보다 미국산 무기의 판매가 더 중요합니다. 트럼프가 장사꾼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드가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무기나 최신 장비를 더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미국과의 불화를 감수하면서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면 중국에는 엄청난 선물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북핵 위기와 관련된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을 중국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 시키고(북한이 간청했는데도 중국이 거부했습니다), 대신 중국이 북한에 핵동결을 요구할 수 있겠죠. 나아가서 일본의 전쟁 배상금과 미국과의 외교정상화를 지렛대로 해서 결국 평화협정과 핵폐기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면서 이 두 패권 국가 사이에 ‘제3지대’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남북한과 동남아, 일본과 러시아, 나아가서 러시아까지 양국의 대결이 이뤄지는 곳에 중립지대를 설정하면 두 나라는 어느 나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차기 정부가 이런 구상을 펼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돌이키지 못할 전략적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황교안 대행체제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전략적 결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영하 10도와 세찬 바람이 부는 인구 17만의 소도시, 서산에서도 촛불은 타올랐습니다. 열정적인 질문이 끝없이 이어져 강연시간은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 글을 포함해서 저의 답변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 참여해서 토론을 하고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어 낸다면 비로소, 격변의 시대에 할 일을 한 선조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 겁니다.

원글은 작은책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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