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오피니언-세상읽기] 세월호 ‘2차 가해자’는 누구인가

세월호 인양과 함께 수사권, 기소권을 갖춘 강화된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땅한 일이니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나는 특히 이 2기 특조위가 반드시 밝혀야 할 질문 하나를 강조하고 싶다. 지난 세월호 사건의 ‘2차 가해’에서 국가의 위치가 무엇이었느냐는 문제이다. 세월호 참사 자체를 둘러싼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별도로, 희생자 유족들과 생존자들에 대해 지난 3년간 사회 전체 차원에서 자행된 다양한 형태의 공격과 가해에 대해 조사하고, 그것이 국가에 의해 주도된 조직적, 체계적인 것이었는지의 여부이다.

‘2차 가해’란 성폭력과 아동폭력 등 각종 폭력의 희생자에게 가해자 혹은 제3자가 다시 언어와 사회적 압력 등을 통하여 고통을 가하는 행위이다.

지난 3년간 우리는 희생자 유족들과 생존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행되어 온 이러한 ‘2차 가해’는 구조적인 것이었다. 다시 말해 몇몇 개인들 및 집단들의 일탈 행위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국가기구의 지휘 아래에 사회 전체가 총동원되어 자행된 조직적, 체계적 성격의 범죄였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혹이다. 최순실 사태의 와중에 발견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 여러 권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색칠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도록 지휘한 사령탑이 바로 청와대였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 이후 실로 다양한 주체들이 나서서 각자의 역할에 맞추어 ‘2차 가해’에 가담하였다. 먼저 당시의 여당 정치인들이 ‘세월호’라는 주제에 대해 실로 가공할 만한 막말과 허위 사실들을 유포하기 시작하였고,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좌파 불순 세력의 정치적 표식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여러 언론 매체들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담론과 열쇳말들을 창의적으로 발명해냈다.

여기에 얼굴 없는 개인들 혹은 검은 세력은 세월호 유족들과 보상금 액수 등을 이야깃감으로 삼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가짜 뉴스’를 양산하여 카톡과 여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하였다. 일부 일선 학교에서는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는 학생들을 겁박하고 불이익을 주기도 하였으며, 공영방송의 한 기자는 이 리본을 달고 출전한 인기 야구 선수를 ‘부적절한 정치 행위자’로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유족들의 애끊는 단식 현장에 나타나 ‘폭식 투쟁’을 벌이는 패륜 집단들까지 창궐하였다.

여기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 기간 동안 부닥쳐야 했던 온갖 훼방과 부당 행위들을 더해보라. 공식적인 국가기구로서 구성된 특조위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무력화시켰던 이들은 다름 아닌 동일한 국가기구였다. 우리는 매일매일 신문과 뉴스에서 국가기구가 국가기구를 방해하고 조롱하는 어처구니없는 자해 행위를 보아야만 했다. 이는 그 문제의 ‘일곱 시간’보다 또 세월호 유류품 노트북에서 발견된 국정원 문서보다 이 ‘2차 가해’가 국가기구에 의해 행해진 조직적, 체계적이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이 ‘2차 가해’의 철저한 규명이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분단과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되었던 어두운 패턴 하나를 놀랄 만큼 똑같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폭력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상한다.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면, 국가의 탈을 쓴 가해자들은 체계적인 폭력으로 이를 내리누르며 그들을 ‘빨갱이’라고 몰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린다. 이 가공할 사회 전방위적인 억압에 무릎 꿇은 ‘2차 가해’의 피해자들은 벙어리 냉가슴으로 몇십년을 보낸다.

세상이 바뀌었고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과 생존자들은 세월호 사건 자체와 별개로 지난 3년간 자행된 이 체계적, 조직적 ‘2차 가해’의 희생자이자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이 ‘2차 가해’의 진상은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며, 특히 이것이 국가기구에 의해 주도된 조직적, 체계적인 것이었느냐가 분명하게 해명되어야 한다. 유족 및 생존자들은 지난 3년간 ‘짐승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우리의 국가는 과연 그들의 머슴이요, 이웃이었는가 아니면 바로 그 ‘짐승’이었는가? 우리는 알고 싶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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