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지음

 

자본주의 역사 강의_표지

 

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지음 | 그린비 | 544쪽 | 1만7,900원 | 2006년 11월 5일 출간

 

 

왜 지금 자본주의 역사를 세계체계 분석으로 읽는가?

세계체계 분석의 대가들을 통해 본 근대자본주의의 과거와 미래

 

“북한 핵실험은 동북아 모든 나라가 핵무장하는 상황을 낳을 것이다.”

“한미FTA 체결로 한국이 세계체계의 중심부에 편입하리라는 주장은 멍청한 주장이다.”

“한국이 애를 쓰겠지만 앞으로의 동북아 상황은 미국과 중국이 만들어갈 것이다.”

지난 10월 13일 한국을 방문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처럼 ‘화끈한’ 답변을 쏟아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월러스틴의 이런 화끈함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그의 이름과 동의어로 쓰이는 연구방법론, 즉 ‘세계체계 분석’이다. 그래서 월러스틴의 답변은 화끈함이 주는 카타르시스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제공해준다. 

 


 

<국내 최초의 세계체계 분석 본격 입문서!!>

그동안 세계체계 분석의 문제의식을 의욕적으로 국내에 소개해왔던 백승욱 교수(現 중앙대 사회학과)의 새 책 『자본주의 역사 강의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자본주의의 기원과 미래』도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월러스틴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최근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적·군사적·정치적 위기를 세계체계 분석의 틀로 봤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로 월러스틴뿐만 아니라 지오반니 아리기, 비버리 J. 실버 같은 세계체계 분석의 대가들은 향후 근대자본주의체계의 향방을 좌우할 지역으로 동아시아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 저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2005)를 통해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이라는 쟁점을 우리의 시각에서 재해석해 세계체계 분석의 ‘국산화’를 시도한 바 있는 백승욱 교수는 이번 책 『자본주의 역사 강의』에서 세계체계 분석의 역사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 있다. 세계체계 분석이 그 탁월한 현실 분석력을 인정받게 된 근거를 되짚어보고, 그 근거가 구소련의 몰락으로 인한 냉전의 해체·제국 없는 제국주의·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인한 금융세계화 등 20세기 말~21세기 초에 일어난 전세계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따져보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역사 강의는 국내 연구자가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연구방법론으로 우리의 당면 문제인 동아시아의 위기라는 쟁점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연구인 동시에 국내 연구자가 최초로 선보이는 세계체계 분석의 본격 입문서이기도 하다. 특히 백승욱 교수의 이번 작업은 지난 몇 해 동안 본인이 직접 진행해왔던 수많은 강연회와 토론회, 보다 직접적으로는 ‘세계체계 분석과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지난 2005년 겨울 고려대학교에서 개최한 학술강좌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과 격리된 채 쓰여지는 대부분의 연구서들과 다르다. 수많은 청중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쓰여진 『자본주의 역사 강의』는 흔히 사람들이 세계체계 분석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점들을 평이한 문체로 명확히 풀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역사 강의』는 세계체계 분석의 역사를 통해 최근의 ‘동아시아 위기’ 역시 미국이든 동아시아든 하나의 개별국가나 지역만을 살펴본다고 해명될 수 없는, 전지구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준다. 즉, 세계체계 분석이 현재의 동아시아 위기를 모두 설명해준다기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여러 측면들을 그 어떤 이론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세계체계 분석의 자본주의 기원론 : 기존 통념에 대한 비판>

흔히 자본주의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시작됐다고들 한다. 그러나 세계체계 분석은 아날학파의 거두인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논의를 종합해 이런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든 주장을 제시한다. 자본주의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16세기, 더 길게는 13~15세기경에 등장한 현상이라고 말이다.

세계체계 분석에 따르면, 원래 전(前)자본주의 사회는 ‘재분배’ 사회였다. 자본주의는 물자를 집중시켰다가 다시 일정한 원리에 따라 분배하는(즉, 교역·교환은 일어나지만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의해 이뤄지는) 이 재분배 사회에서 억압되어왔던 어떤 논리가 자유로워지면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논리란 바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로 상징되는 ‘독점’이다. 재분배 사회에서는 사회 전체(더 나아가서는 기존의 권력체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종교를 통해 독점의 경향을 억눌렀는데 장기 16세기(1450~1640년)에 와서 이 경향을 더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이 왔고, 그때 비로소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세계체계 분석이 자본주의의 근대사가 시작된 시점으로 제시한 장기 16세기는 네덜란드가 유럽을 점령하기 위해 팽창하던 스페인 제국의 무적함대를 격침시켜 대서양의 제해권을 장악한 시기였다. 네덜란드는 이 제해권을 바탕으로 일종의 공인합자회사(사실상의 국가독점기업)인 동인도회사를 건설, 유럽의 경제를 세계경제로 격상시키며 상업과 금융을 독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삐가 풀린 독점의 경향은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을 기점으로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이 이뤄진 중상주의 시대(1650~1730년)에 더욱 확대된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형성된 안정된 국제질서 아래에서 자본은 특정 국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호장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를 피해 축적의 중심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 19세기(1730~1914년)에 영국이 산업혁명을 성공시켜 기존의 네덜란드 패권을 이어받아 자본주의의 맹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간단히 말해서 산업혁명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등장을 가능케 한 유일한 원동력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본주의가 생산이라는 영역에서도 고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 하나의 계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생산’이 아니라 ‘독점’이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런 설명을 통해 세계체계 분석은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을 다음의 네 가지로 도출해낸다. 자본주의는 세계경제 차원에서 독점을 향한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 세계경제 차원에서의 독점은 국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경제의 자율성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 내에는 일종의 계서제가 생긴다는 것,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독점을 추구하는 것은 고이윤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고이윤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이 바뀌면 자본의 주요 활동 무대(가령 상업, 산업, 금융) 역시 바뀐다는 것.

그러므로 세계체계 분석은 어느 한 국가가 독점을 향한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경제로서의 자본주의를 주도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얻으려면 그 고유의 ‘축적체제’(월러스틴이 말하는 ‘기축적 분업구조’, 아리기가 말하는 ‘체계적 축적순환’이 모두 이를 지칭하는 개념들이다)와 ‘국가간체계’(국가들 간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체계 분석은 개별 민족국가가 아니라 단일 세계체계, 즉 근대자본주의체계를 분석단위로 삼는다.

 

<동아시아라는 쟁점 :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체계 분석이 그 탁월한 현실 분석력을 인정받으며 주목받게 된 것은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정세를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가 거둔 최종적 승리라며 찬양할 때, 세계체계 분석은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위기가 본격화됐다고 주장했다.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볼 때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의 ‘외부’라기보다는 세계경제에서 반주변부의 길로 나아가려던 전략(사회주의적 중상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의 일환이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몰락은 자본주의적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렇다면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최근의 동아시아 위기(더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의 위기)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체계 분석은 동아시아의 위기를 바라보는 데서도 뭔가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까? 지은이 백승욱 교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1) 냉전과 탈냉전의 지정학

백승욱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위기를 살펴본다는 것은 동아시아 문제를 개별국가별로 분리해 다루기보다 동아시아라는 지역과 근대자본주의체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동학을 통해 살펴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체계 분석은 ‘냉전의 지정학’을 강조한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특히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급격하게 경제성장을 이룬 1970~80년대였는데, 이때 동아시아의 국가간체계를 주조한 동력이 다름 아닌 냉전의 지정학이었다는 것이다. 즉, 20세기의 동아시아는 미국과 소련을 두 축으로 한 냉전체제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로부터 탈지역화·재지역화를 왕복하며 근대자본주의체계와 상호작용해왔던 지역이라는 말이다.

특히 동아시아 내 냉전의 지정학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의 과잉’이라는 특징이다.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동아시아는 자본주의 진영의 쇼윈도로서 성장모델로 진열된 지역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라는 미명 아래 일본, 한국, 대만 등에 갖가지 원조(미국시장의 개방,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의존한 군사비 경감, 억압적 체제에 대한 정치적 지원, 미국 초국적 기업의 진출 억제, 원조와 차관의 공여,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한 강력한 통제 허용 등)를 해줬으며, 이것이 이른바 ‘동아시아의 기적’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아시아의 기적’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른 탈냉전 시대의 개막으로 뒤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이 세계체계 분석의 설명이다. 사실 탈냉전의 시작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누렸던 헤게모니의 기반, 즉 발전주의 신화의 종말이기도 했다. 발전주의의 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신생 독립국가들이 공산주의 세력에 편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이 제시한 일종의 ‘양보’였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비롯해 제3세계 국가들(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유럽 등의 국가들)에게 저리의 자본을 장기로 대부해 각종 기간시설 건설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해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냉전이 사라져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되지 않자 자본활동에 대한 굴레는 사라졌다. 자본축적의 논리에 따라 더 많은 부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고, 선별적으로 포섭된 지역들이 일시적으로 자본투자의 혜택을 받긴 했지만, 자본투자에서 배제된 지역은 생존의 갈림길에 놓일 만큼 피폐해져 갔다. 이른바 전지구적인 금융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냉전체제의 해체는 미군의 해외 주둔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대한 동아시아의 반발이 커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냉전체제 아래에서 가정된 ‘적’, 즉 공산주의 세력이 사라졌으므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더 이상 인정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2) 동아시아의 위기를 바라보는 세 가지 축 : 미국-일본, 미국-중국, 한반도 변수

따라서 이제는 이른바 ‘탈냉전의 지정학’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 변화로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에 불어닥친 경제적·군사적·정치적 위기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계체계 분석은 미국-일본, 미국-중국이라는 두 축에 주목한다. 일단 미국과 일본은 기존의 관계를 유지·강화하는 쪽으로 갈 것이지만 관계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군사적으로 제한된 주권만을 행사해온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지속적인 자본축적을 위해 미국보다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그 향방이 모호하다. 한편으로 미국은 중국을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기본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잠재력을 위협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아시아의 역사적 유산으로 인한 일본과 중국의 갈등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본의 팽창은 항상 동아시아 내부에 긴장을 불러온다. 그렇지만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중국이 세계적 국가가 되면 미국은 중국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세계체계 분석은 여기에 ‘한반도 변수’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로 꼽고 있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더 이상 냉전의 구도 아래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유지라는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생각한다. 따라서 북한 문제가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형태로 해결된다면 미국과 중국은 또 다시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중국에게 위협이 되고, 중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미국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일본은 재무장을 본격화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동아시아에서는 기존의 냉전구도가 해체됐는데도, ‘정치의 과잉’이라는 그 특징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동아시아의 위기를 분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복잡한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적 관계가 미국의 전지구적 전략 변화와 다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근대자본주의체계를 넘어설 ‘장기 21세기’라는 시각>

이처럼 동아시아의 위기는 근대자본주의체계의 위기, 더 정확히 말해서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와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위기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존의 자본주의적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를 무너뜨릴지 모를 파괴력을 안고 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는 달리 기존의 자본주의적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를 ‘갱신’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아시아는 그 위기 속에서도 생산과 금융의 새로운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체계 분석의 대가들이 향후 근대자본주의체계의 향방을 좌우할 지역으로 동아시아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동아시아야말로 위기에 빠진 미국 헤게모니를 대신해 새로운 헤게모니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체계 분석의 대가들이 동아시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백승욱 교수는 세계체계 분석이 들려주는 근대자본주의체계 500년의 역사와 최근의 동아시아 위기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세계체계 분석이 지금 우리에게 던져주는 함의를 정리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과거와 달리 군사력의 중심과 생산·금융의 중심이 한곳으로 집중되지 않고 있다는 ‘동아시아의 이례성’이다. 이전까지 헤게모니의 교체시기에는 금융의 중심지, 새로운 투자의 중심지가 곧 군사력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현재의 탈냉전 구도에서는 군사력은 미국, 생산·금융은 동아시아로 집중되어 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경우 생산·금융의 중심은 다시 중국과 일본으로 나뉘어 있기까지 하다. 따라서 동아시아가 세계체계 분석의 주장대로 기존의 자본주의적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가 갱신되는 장소가 될지, 아니면 그 형태는 다를지언정 또 다시 미국을 매개로 세계경제의 하위파트너로 남을지는 여전히 좀더 따져봐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이 빠르게 생산·금융의 중심지가 됨으로써 일본을 단일축으로 한 기존의 다층적 하층체계가 이원화되고 있으며, 이는 급격한 금융화에 따른 서비스 불완전 노동의 증가와 함께 동아시아 각국의 산업구조를 급격히 재편시킴으로써 동아시아 내 (이주노동자의 대이동으로 상징되는) 노동력 구조의 변화, 더 나아가 대중구성의 변화까지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동아시아의 상황은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투기로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를 새로운 축적순환이 시작되는 장소로 만드는 데 적극 동참으로써 근대자본주의체계를 되살려낼지, 그도 아니면 동아시아 국가들 내의 분열된 구도를 극복하는 사회운동(가령 동아시아 이주노동자의 네크워크 구성)을 통해서 근대자본주의체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를 꿈꾸는 대안세계화에 동참할지의 기로에 서 있다.

이렇듯 세계체계 분석은 우리에게 근대자본주의체계를 넘어서는 이행의 시대로서의 장기 21세기라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즉, 20세기에 개별국가별로 일어난 변혁과 그것의 세계적 확산이라는 국가권력 중심의 사유가 아니라, 장기 16세기에 진행된 역사적 상황을 재검토하고 이를 20세기에 진행된 역사적 사건들과 비교함으로써 체계 전체의 변화가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이행의 시대를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다시 세계체계 분석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차 례

 
머리말

강의를 시작하며 : 세계체계 분석의 관심
1. 세기 전환기 미국 헤게모니의 변화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명칭│우리 시대 세계의 변화
2. 세계체계 분석과 한국사회성격 논쟁
한국사회성격 논쟁의 제기와 종속이론│논쟁의 전환과 한계
3. 세계체계 분석과 더불어 부각되는 쟁점들
사회주의의 쟁점│국가간체계와 민족동일성
4. 마르크스와 역사변증법의 문제
역사 없는 역사성│재생산과 이데올로기 문제
5. 세계체계 분석의 계기

1강  페르낭 브로델과 세계체계 분석의 전사
1. 브로델과 아날학파
전체사와 문제사│자본주의의 고유한 영역은 있는가?│노동력 상품화라는 쟁점
2. 브로델의 역사관과 시간의 중첩성:세계체계의 시간대
브로델의 시간 개념:장기지속과 콩종크튀르의 중첩│브로델과 ‘모델’:구조가 지속되는 시간대
3. 삼층도식
삼층도식: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삼층도식의 함의
4. 브로델의 강점과 약점
강점과 약점│『자본』과 연결되는 문제들

2강  칼 폴라니와 세계체계 분석의 전사
1. 폴라니의 두 측면
제도주의자로 수용된 폴라니│근대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폴라니
2. 폴라니의 핵심 논점
19세기 영국 헤게모니 하의 질서│상이한 사회적 원리들: 호혜성 사회, 재분배 사회, 시장교환 사회│시장의 층위들: 국지적 시장, 전국 시장, 원거리 시장│허구적 상품: 노동력, 토지, 화폐│사회의 자기보호│분기의 발생: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
3. 폴라니에 대한 평가
강점│한계

3강  세계체계 분석의 기획과 구도: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문제제기
1. 세계체계 분석의 기획
월러스틴과 세계체계 분석│근대 규정의 난점
2. 세계체계 분석으로 나아가는 이론적 계기
종속이론과의 관련│사회주의와 관련된 논쟁│월러스틴과 브로델의 영향관계│분석단위라는 쟁점│자본주의와 관련된 혁명 신화 비판│집단적 작업의 조직화

4강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분석
1. 세계경제
기축적 분업│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전개 과정│다수 제도들의 집합으로서 세계경제
2. 국가와 국가간체계
국가간체계가 제도화된 베스트팔렌 조약│주권국가│국가의 역할│세계헤게모니
3. 자유주의와 반체계운동
세 가지 이데올로기│반체계운동의 전략적 쟁점: 국가│반체계운동의 전환 계기로서 68년
4. 자본주의 탄생에 대한 논점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출현 설명: 정세론│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출현론에 대한 아리기의 비판
5. 월러스틴의 강점과 한계
강점│문제점│월러스틴이 남긴 과제

5강  지오반니 아리기: 세계체계와 세계헤게모니
1. 세계체계 분석 내부의 쟁점 형성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이론적 차이점│계급과 사회구성체│아리기의 연구 배경
2. 헤게모니 순환 분석의 기본 개념들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간체계│자본주의와 영토주의│세계헤게모니│축적양식과 생산양식│국가독점적 모델과 코스모폴리탄적 모델│실물적 팽창과 금융적 팽창, 그리고 벨에포크│신호적 위기와 최종적 위기│체계의 카오스│전진운동과 후진운동

6장기 20세기와 헤게모니 순환의 역사
1. 네 번의 헤게모니 순환
제노바 순환에서 시작하는 이유│시대별 헤게모니 순환의 특징
2. 장기 16세기와 네덜란드 헤게모니
네덜란드 헤게모니의 성장요인│네덜란드의 쇠퇴와 후발주자들의 추격│네덜란드의 강점과 약점
3. 영국 헤게모니
영국의 우위│영국 헤게모니 준비 과정의 역사│네덜란드에 대한 모방과 탈피│인도의 중요성: 영국 헤게모니 부상의 결정적 계기│기계제 등장 이후의 변화│영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금융화
4. 미국 헤게모니
미국 자본주의의 특징│고도금융에 대한 통제, 뉴딜 정책│미국 헤게모니의 전지구적 확장

7강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1. 신자유주의 금융화
금융화의 만개│미국 ‘신경제’의 취약성│금융 취약성과 체계의 위기
2. ‘제국’의 불안정한 토대
제국 논쟁│미국 경상수지 적자│미국의 해외자산과 외국인의 미국 내 자산 보유│가계부채│배제된 지역의 증가│전쟁 비용 지불의 한계

8강  동아시아와 세계체계
1. 동아시아의 장기지속과 중첩된 시간대 문제
동아시아의 다층적 시간대│아리기의 동아시아 장기지속론│동아시아의 쟁점
2. 냉전과 동아시아의 성장
동아시아의 급성장에 대한 설명들│동아시아의 특이한 지정학│동아시아 내에서 다층적 하청체계의 확장 과정
3. 동아시아의 재편과 새로운 지역의 편입
일본의 전후 부흥과 동아시아 경제│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재편│동남아시아의 편입│구사회주의권 중국의 편입
4.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
미국과 일본의 축│미국과 중국의 축│한반도 변수
5. 한미FTA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반대

9강 노동과 노동운동의 역사, 그리고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1. 세계체계 분석의 강점과 약점
월러스틴의 기여과 한계│폴라니적 계기의 중요성
2. 아리기의 문제제기: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공산당 선언』의 두 가지 테제│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세 시기│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위기│현시기 노동운동의 특성
3. 『노동의 힘』의 제한적 기여
논점의 후퇴와 전진│질문들│자본의 대응으로서 재정립들│전쟁과 정치적 계기의 중요성

강의를 끝맺으며:  세계체계 분석의 함의
1. 미국 헤게모니 쇠퇴의 함의
세계경제 차원│국가간체계 차원│동아시아 차원│노동 차원│사회운동의 위기 차원
2. 세 가지 차원의 고려
전지구적 차원│지역적 차원: 동아시아│국지적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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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역사 ․ 사회과학
ISBN  : 89-7682-967-0 03900


 
지은이  백승욱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빙엄튼 소재 뉴욕주립대학의 <페르낭브로델센터> 객원연구원을 거쳐,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있으며,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2005), 『중국의 노동자와 노동정책 : ‘단위체제’의 해체』(200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노동의 힘 : 1870년 이후의 노동자운동과 세계화』(2005),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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