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기저효과를 넘어서

 
 

홍기빈 연구위원장님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주일간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에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특히 5월18일의 기념식은 실로 몇 년 만에 보는 광경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추도사뿐만 아니라 진실에서 우러나온 포옹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고, 이제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망가지고 왜곡되었던 숱한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들뜨게 하였다. 한 지인은 페이스북에 “짐승이 가고 인간이 왔다”는 짧은 문장으로 이러한 정서를 압축하여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추도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사실 너무나 의당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을 뿐, 어떤 파격적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역사의식을 가진 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며, 그 연장에서 새로이 마련될 헌법이 5·18정신에 서 있음을 명시화하자는 제안도 너무나 의당한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 상식적인 이러한 당연한 이야기와 행동들이 지난 9년간 황당하게 가로막혀 있었다는 것에 있다. 지금 우리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고 있는 셈이다.

기저효과라고 하는 것이 있다. 어떤 수치가 아주 낮은 수준에 있을 때에는 등락을 하다가 조금만 올라가도 크게 오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월 1000만원 수입을 올리는 이에게 50만원의 소득 증가가 생겨난다면 별것 아니겠으나, 월 100만원으로 생활하던 이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무려 50%의 소득 증가이니 실로 극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그 50만원의 소득 증가를 그저 심드렁한 정도로 바라볼 뿐 기뻐 날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부푸는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9년간의 두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대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이다. 

처음엔 놀라고 분노했지만 워낙 정상적인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일상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것을 보고 어느덧 우리는 사슴이 말 행세를 하고 돌아다니며 꾀꼬리가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보아도 무덤덤하게 눈 가리고 귀 막고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이제 꾀꼬리 소리가 다시 들리고 사슴이 숲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감동과 희망을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눈물, 콧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있다. 

 

너무나 반갑고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벌써 이 기저효과가 다한 뒤를 염려하는 마음이 든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성실히 제대로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가질 만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정치 행보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은 고공 행진을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기저효과는 영원히 가지 않는다. 어느 시점이 되어 ‘적폐청산’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아 다시 사람들의 상식이 현실의 상식으로 정착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정상적인 상식과 원칙에 의거한 정책과 조치들만으로 똑같은 지지와 열광을 얻어내기 힘들 것이며, 급진적인 쪽에서나 보수적인 쪽에서나 더 많은 것들을 주문하고 요구하면서 비판의 소리도 높아지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당연히 올 수밖에 없는 그때를 염두에 두고 문재인 정부는 미래의 도전에 응답하여 나라의 틀 전체를 새롭게 짜는 과감한 규모의 구상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빈다.

문재인 정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했던 슬픈 소원을 받아안아 반드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 정권”이 되어야 한다. 상식과 양심과 원칙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며 지난 9년간 너무나 처참하게 짓밟혔기에 이를 회복하는 일련의 조치들만으로도 갈채가 쏟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저효과에 만족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 미래의 기틀을 잡는 더 어렵고 큰 작업을 축적해 두어야만 그 기저효과가 사라져갈 때에도 미래를 향해 국민들 전체를 통합하고 이끄는 정치적 지도의 위치와 권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한결같은 지지를 얻는 성공적인 정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17. 05. 19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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