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 협치, 참여정부 넘어서나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 협치, 참여정부 넘어서나

 

5월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등 참석자들이 회의에 앞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시민단체 인사들 청와대 핵심요직에… ‘협치2.0’은 가능할까

“분위기? 그냥 상견례 수준의 모임이었다. 박근혜 퇴진 비상행동이 해산한다고 하니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청와대 들어가기 전부터 모르던 사이도 아니니….”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의 말이다. 5월 19일,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대표단이 만났다. “우호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 박 대표의 전언. 5월 24일 퇴진행동은 해산하면서 ‘촛불개혁 10대 분야 100대 과제’를 발표했다. 해산 5일 전 하 수석과 만난 자리에 들고 간 것은 지난 2월 발표한 ‘우선개혁과제 30개’였다. “성과퇴출제 중단, 백남기 농민 특검, 세월호 진상규명 등 당면현안과 관련한 자료를 전달하고 해결에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지만 하 처장도 우리가 주장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는 문제도 논의했다. ‘일자리위원회의 공익위원을 구성하는 데 기업위원회가 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청와대 측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6월 8일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공식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 DJ정부 시기다. 참여정부 때 시민사회가 중재하는 노·사·정-시민위원회의 재구성 논의가 잠깐 있었지만 복귀하지 않았다. 두 보수정부 때 노동계와 정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11월 열린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근혜 정부 때 일이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는 18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한 달. “이제 한 달인데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이렇게나 분위기가 확 바뀔 것이라고는….”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을 맡았던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바뀐 상황을 “양날의 검과 같다”고 평가했다. “지난 두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시민사회가 취약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견제와 지지가 시민사회의 몫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거꾸로 반대편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반대편으로 쓸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대선 막후 승자는 박원순 서울시장? 

임종석 비서실장, 김수현 사회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문재인 정부의 ‘첫인사’에서 세 사람이 핵심요직에 등용되는 것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막후의 승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임 실장과 하 수석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다. 김 수석은 서울시의 정책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 원장 출신이다. 여기에 조현옥 인사수석은 ‘박원순 서울시’에서 여성가족정책관을 역임했다. ‘박원순 서울시’ 내지는 시민사회계의 약진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석에 이은 비서관 인사에서도 시민사회비서관에 김금옥(53), 기후변화비서관에 김혜애(53), 균형인사비서관에 신미숙 전 권미혁 의원실 보좌관(52)이 내정돼 활동하고 있다. 김금옥 내정자는 여성연합 공동대표 출신이고, 김혜애 내정자는 녹색연합 출신이다. 역시 여성연합 활동가로 대표였던 이미경 의원과 함께 지난 15대 때 국회로 들어온 신 내정자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 금지를 명문화하는 입법활동을 했다. 이 중 김혜애 내정자는 다시 ‘박원순 서울시’에서 에너지드림센터장을 역임했었다.

어떻게 보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의 행정 수반으로 올라서는 과정에는 유사성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선거를 통해 35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사퇴하면서 당선됐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치러진 조기대선으로 당선됐다. 두 사람 모두 정계입문 과정을 보면, 스스로의 권력의지라기보다는 주변의 요청과 권유에 따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말하자면 피동형 정치입문자들이다. 재·보궐로 당선됐지만 ‘박원순 서울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고사(枯死) 직전까지 내몰렸던 시민사회·시민단체의 우산, 방패막이가 되었다. 시민사회 인사들, 특히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시민사회로 들어왔던 386세대들이 박원순 서울시의 주요 요직에 등용됐다.

“이제는 운동적으로는 한 세대가 마무리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박신용철 정치컨설턴트의 말이다. 시민운동에 들어와 있던 386그룹들 대부분이 존재 이전을 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이 김혜애 비서관과 같은 과거 시민단체 실장급 인사였는데, 이들이 들어가면서 민주화운동 내지는 학생운동 경력으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했던 인사들 대부분이 ‘존재 이전’했다는 것이다. 물론 메이저 단체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직 시민사회에 남아있는 인사들이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 같은 인사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각각 법조계와 학계를 대표하는 ‘시민운동 1세대’들이라면 386 학생운동 출신으로 시민단체에 ‘투신’해 간사나 활동가로 활동했던 인사들을 대충 ‘시민운동 1.5세대’ 내지는 ‘2세대’로 분류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어 차례로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한 김기식 전 민주당 의원이나 김민영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이사장,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 협치, 참여정부 넘어서나

 
 

전문가 그룹에서 활동가로 시민사회 ‘약진’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사회계의 ‘약진’은 DJ·참여정부 시기의 시민사회 인사들의 진출과 또 다르게 평가된다. <주간경향>의 취재 결과 청와대에 입성하는 시민사회계 인사들은 알려진 인물만 해도 20여명에 이른다. DJ 참여정부 때 인사들이 주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정책 등을 담당한 학계·전문가 그룹이 대부분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학계 전문가 그룹과 함께 시민단체 간사로 출발해 실·국장을 거쳐 사무처장·대표를 역임한 활동가 그룹들이 핵심요직에 직접 진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학계 전문가 그룹이자 활동가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는 각각 대학교수이면서 동시에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를 이끄는 ‘쌍두마차’였는데, 경제개혁연대는 참여연대의 경제개혁센터에서 2006년 분화돼 나온 단체다. 경제개혁센터 당시 두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으로 참여연대의 이름을 알렸다. 반면 김기식 전 의원, 하 수석이나 두 김 비서관 내정자 등은 시민사회활동가 출신이다. 전 두 정권에서 거의 몰락 직전까지 갔던 시민사회가 극적으로 부활하는 르네상스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사회 출신으로 바로 공직으로 들어가는 경우 아무래도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지금 문재인 정부에 등용된 인사들을 보면 이미 공직 경험이 있어 잘 해낼 것으로 예상한다.” 최유성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의 말이다. 그는 MB정권 당시, 특임장관실에서 차관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MB정부 특임장관실은 문재인 정부로 치면 사회혁신수석이며, 참여정부 기준으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으로 역임한 시민사회수석실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보수·진보를 떠나 공직 경험 없는 시민단체 출신이 바로 보직을 맡는 경우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하는 날것의 이념적 성향 때문에 좌충우돌을 겪거나 관료들에게 포위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꽤 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된 시민사회 인사들은 일각의 예측대로 시민사회의 르네상스를 다시 불러오는 ‘협치’의 실행자가 될까.

일단 시민사회 안팎의 인사들은 이들을 ‘시민사회 출신 인사’로 범주화해 향후 문재인 정부와 ‘협치’에서 주요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하승창 수석의 경우 시민단체 출신인 것은 맞지만 시민운동을 정리하고 떠난 지 10년이 넘은 사람이다. 신설된 사회혁신수석 자리나 지금 거론되는 시민사회, 기후변화 비서관 등의 자리는 시민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분이 필요해 그분들이 선정되었지 ‘시민사회 인사’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의 말이다.

한 현역 시민단체 중견급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조국 민정수석의 경우도 참여연대에서 사법개혁센터 소장을 역임했고, 전체를 총괄하는 부운영위원장을 역임했지만 그분의 수많은 법조 경력에 참여연대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범주화한다면 탁현민 행정관도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를 지냈으니, ‘참여연대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접수했다’는 식의 억지논리도 나올 수 있다. 탁 행정관은 북 콘서트 행사, 광흥창 모임 등을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으로 청와대에 들어갔지, 과거 참여연대 경력과는 상관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냐.”

‘협치(거버넌스)’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걸었던 핵심 화두다. 문재인 정부 한 달, 아직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지 않은 국면이어서인지 협치는 주로 여야 간의 대화 필요성과 관련돼서만 거론되고 있다.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오른쪽)이 5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농성장을 방문, 실종자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참여연대 전성시대?

“한국의 시민사회 역사가 짧은 만큼 협치란 말에 걸맞은 경험 역시 아직 적다.” 시민사회 분석서 <한국 시민사회를 그리다>를 펴낸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거버넌스를 말할 때 그 앞에 ‘아름다운’, ‘굿(good)’, ‘민주적’과 같은 형용사를 붙이는데, 사실 거버넌스를 말할 때는 이미 다 포함돼 있는 개념이다. 그런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좋지 않고 투명하지 않고, 민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공 교수에 따르면 거버넌스의 대표 사례로 이야기하는 행자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사업은 협치가 아니라 ‘갑질’일 뿐이다.

“협치라고 하면 DJ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 위원회 체계에 시민단체 사람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떠올리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시민단체 인사가 얼마나 더 들어갔느냐가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민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반영되어 공동운영을 했느냐는 것이다.” 명호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의 말이다. 시민사회와 새로 출범한 정권이 당장 공동보조를 맞출 수 있는 것이 4대강 청산과 같은 적폐청산이 아니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그는 “4대강과 관련해서 취할 수 있는 것은 협치모델이라기보다는 심판 청산에 해당하는 것이다”라며 “행정부와 시민사회가 공통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 두 정권에서 행정부가 잘못한 것을 정리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월 22일 4대강 16개 보 중 6개 보 상시개방이라는 ‘업무지시’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민·관이 공동으로 그 성과를 평가하는 합동평가단 구성에 대한 일체의 논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향후 문재인 정부가 과거 DJ 참여정부 시기와 다른 ‘협치2.0’으로 거버넌스를 업그레이드하려면 보다 다양한 시민사회 전문가들을 중요한 곳에 등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진한 바꿈 상임이사는 “청와대 인사들이 시민단체 리더급 인사들 몇 명을 만난다고 협치가 되는 것은 아니며, 향후 만들어질 민·관 협력 위원회의 남녀 비율도 중요하지만 세대·지역별로 골고루 참여해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가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민정치. 약 10년 전부터 시민운동 인사들이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이전하면서 나온 단어다. 지난 2014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참여연대 활동을 평가한 책

<감시자를 감시한다>에는 그때까지 시도된 ‘시민정치’와 관련된 활동에 대해 이런 평가가 나온다. “시민정치가 일련의 사회운동이 아니라 선거국면에서 제기된 정치적 담론이자 전략적 프로그램이 됨으로써, 그것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로 평가절하되고 말았다.” 이 평가는 정상호 서원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가 내놓은 것이다. “일단 과거에 비해 시민사회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대규모로 들어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확실히 과거보다 인선의 폭이나 협치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6월 9일 <주간경향>과 통화한 정 교수의 말이다. 그는 “특히 그동안 풀뿌리 지방 단위에서 살펴봤을 때 협치의 경험들이 꽤 축적되어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그런 실험들을 국가 수준에서 확대해 충분하게 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같은 정책은 지금도 국가단위에서 해볼 수 있는 실험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새 정부가 시민사회 인력들을 등용하는 것과 관련해 ‘그렇다면 소는 누가 키우지’와 같은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지난 10~15년 동안 시민사회의 위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의 출현 등 다양한 저변 확대와 새로운 영역들이 만들어진 만큼 시민사회도 새로운 충원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2012년 10월 22일 저녁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시민정치 콘서트-우리는 유권자다’에 유권자 패널로 참석한 김헌태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진 왼쪽부터)가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문재인 정부, ‘시민정치’ 꽃 피우려면 

여전히 시민단체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까. “정치인이든, 시민활동가든, 공직자든 자기 전문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생애주기 동안 평생 하나의 직종에만 종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시민운동을 한 사람들이 정치인을 택할 수도 있으며, 공직자가 됐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의 말이다. 지난 5월 하순, 이 실장 등 시민사회 인사들은 ‘번개 M.T’를 갖고 문재인 정부와 협치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밤샘 논의를 했었다. 이 실장은 박원순 시장이 참여연대를 떠나 서울시장이 된 후 공·사석에서 박원순 시장을 만난 건 지난겨울 촛불시위 이후 퇴진행동 자료를 구하러 서울시에 들어가 만난 것, 딱 한 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뿌리로 하는 한국 시민운동의 역사적 특수성이 시민사회에서 청와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으로 사람들이 진출한 근거가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분들이 더 시민사회에 남아 역할을 했으면 좋겠지만 그걸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각자가 자신의 공적인 역할을 하면서 협치의 성과들을 어떻게 잘 제도화하여 남겨놓느냐가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2017.06.10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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