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경제시평]최저임금과 종부세

[정태인의 경제시평]최저임금과 종부세

 

l_2018010901000930900075821지난 22일 ‘재정개혁 특별위원회’가 ‘공평과세 실현을 위한 종합부동산세제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에 이어 또 한번 논란이 일어날 터였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 노동자 552만명이 대상이지만 종부세는 최상위 자산가(2016년 기준 27만4000명)를 겨냥한다. 대기업 총수는 물론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상당수, 그리고 고위직 언론인, 경제학자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될 테니 훨씬 더 시끄러울 것이 뻔했다. 그런데 의외로 잠잠하다. 한마디로 ‘생색만 낼 테니 부자 여러분 안심하세요’가 위원회 발표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뭐가 두려운지 기획재정부는 다음 날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가장 강력한 제3안(공정시장가액의 현실화와 동시에 세율 인상)을 따르더라도 30억원 주택 소유자가 내년에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174만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다(20억원짜리는 약 55만원 인상). 10년 전인 2008년 9월23일 기재부는 20억원짜리 주택의 종부세를 약 1000만원(800만~1300만원) 깎아줬다. 주먹구구로 계산해도 10년 동안 1억원 넘는 혜택을 봤으니 이 정도 증세는 눈감아 달라는 얘기다. 30% 지지율의 대통령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겨우 만든 종부세는 80% 지지율의 대통령하에서도 여전히 빈사 상태다.

최저임금 정책도 통상임금의 정의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까지 한발 물러섰다. 주지하다시피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중 하나이다. 시장에서의 분배를 개선해서, 중하층의 소비를 늘리려는 이 정책은 여간해선 실행하기 어렵다. 정부가 함부로 가격에 손을 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또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기실 정부의 개입 수준은 시장을 구성하는 집단 간의 역관계에 달려 있다. 경제학 교과 안에서, 그러므로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시장은 상이한 생산요소 소유자들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장에는 수많은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노동자보다 강력하고, 건물주는 세입자를 좌지우지하며 재벌은 하청기업을 짓누를 수 있다. 임금, 임대료, 하청단가와 같은 가격은 이런 세력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만일 우리 사회의 약자 집단이 힘을 기른다면 시장에서의 분배는 지금보다 더 평등해질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북유럽에서는 최저임금 제도 자체가 없었고,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영세기업들은 하청단가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가격이 매번의 사투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범위의 규범 안에서 합의된다면 사회는 안정될 테고 이럴 때의 가격이야말로 ‘균형가격’이라는 이름에 값한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노동자, 세입자, 하청기업들의 세력화를 도와야 한다. 노동조합 강화나 적용률 확대,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 제정과 조직화 지원, 공동 하청단가 교섭 등이 그런 제도이다. 루스벨트 뉴딜개혁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요컨대 최저임금 정책의 부담을 줄이려면 사회 집단의 힘을 강화하면 된다.

반면 종부세는 2016년 주택 소유자 1331만명 중 2.1%에만 부과된 세금이다. 위의 얘기들이 유량(flow)의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였다면 종부세는 저량(stock)의 가격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한 정책이다.

한국의 부동산 자산 총액은 2016년 1경713조원이며 2006년에 비해 75.4% 올랐다. 부동산 수익률이 여느 나라처럼 5%라면 여기에서만 500조원의 자산소득이 발생하는 것, 즉 상당부분 누군가의 월급에서 지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2015년 기준 보유세 부담률은 0.15%로 OECD 13개국 평균 0.33%의 절반도 안되며 캐나다의 0.87%와는 너무나 멀다. 즉 우리의 세금제도는 자산불평등을 한껏 부추기고 있다. 돈만 있으면 땅 짚고 헤엄칠 수 있는데 왜 골치 아프고 위험한 혁신에 힘을 쏟으랴. 너도 나도 부동산에 목을 매단다.

그 결과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불평등한(순자산/소득, 피케티의 β에 비춰) 나라가 됐고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 물론 종부세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소득불평등 문제에서 최저임금제도가 그러했듯이 종부세(또는 국토보유세)는 자산 불평등 해소의 첫걸음이다.

지지율 80%의 대통령도 못한다면 지난 20여년간의 이 ‘압축 불평등’ 경향을 역전시킬 수 있는 정권이 어디 또 있으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자산 불평등의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종부세 트라우마’와 같은 역사 해석의 오류, 그리고 재선 가능성과 같은 단기 정치적 이익이 이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를 외면하게 만들고 있는 건 혹시 아닐까?

 

정태인 | 독립연구자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8. 06. 25.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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